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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Kim Sep 25. 2021

죽음을 기다리는 나이

삶의 존엄 앞에서

2주 전이었다.

퇴근하자마자 피로가 몰려와 침대에 몸을 던지자마자 초인종이 울렸다. 택배인 줄 알고 눈을 감고 있는데 누가 문을 두드렸다.

“옆집이에요.”

문을 여니 옆집 할머니가 멋쩍은 미소로 만 원짜리를 꼬깃꼬깃 접어들고 서 계셨다.

“나 물 좀 사다 줘.”




 


옆집이 이사 오던 날 먼저 인사를 드렸었다.

80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할머니 혼자 사신다고 해서 걱정도 되고 마음이 많이 쓰였다. 재활용 쓰레기를 버리는 날에 할머니 집 앞에 쓰레기가 나와 있으면 내 것을 버리면서 같이 버려 드렸었다.

“할머니, 재활용 버릴 것 있으시면 그냥 복도에 놓아두세요. 제가 같이 버릴게요.”

할머니는 고마워하셨지만 내가 몇 번 버려드린 이후로는 미안하셨는지 쓰레기 더미를 밖에 두지 않으셨다.



그러던 어느 날, 앰뷸런스 소리가 가까이 들렸고 옆집 할머니가 번뜩 스쳐서 바로 뛰쳐나갔다. 다행히 할머니 집이 아니었다. 그 길로 계속 마음이 쓰여 할머니에게 전화번호를 알려드렸다.

“할머니, 혹시 새벽에라도 편찮으시거나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바로 전화하세요.”


    

재활용을 버리는 화요일 저녁마다 할머니를 자주 마주쳤고, 그때마다 할머니는 그동안 못하신 말씀을 다 하셨다.

“우리 아들이, 미국 실리콘밸리 알어? 거기서 IT업계 일인자여. 일인자!”

“우리 아들도 서초동 살아. 50평에 사는데 며느리도 오라는데 내가 안 가는 거여.”

“내가 올해 90이 넘었어, 90이!”

“나도 교사였어. 콤퓨타도 막 내가 가리키고 그랬지.”

“신문이랑 티브이가 내 유일한 친구고 낙이여.”


그때 깨달았다.

내가 할머니에게 마음이 쓰이는 이유는 ‘연로(年老)’가 아니라 마지막 말씀에 녹아있는 ‘고독’ 때문이라는 걸.






 “지난번에 보니까 처자 집 앞에 물이 막 쌓여 있대? 그건 어디서 갖다 준겨?”

 “아! 할머니, 그거 제가 인터넷으로 주문한 거예요. 할머니, 생수 필요하세요? 사드릴까요?”

 “아녀, 아녀! 다음에 혹시 물 살 때 나도 같이 좀 사줘.”

 할머니는 물이 다 떨어져 가서 그때 나눴던 대화를 떠올려 벨을 누르신 거였다.


 “네! 염려 마세요! 몇 병 필요하세요?”

 “아, 그냥 거기 사는 만큼 나도 사다 줘.”

 “저 30병 정도 사는데 괜찮으세요?”

 “40병 사다 줘. 또 부탁하기 미안허니께. 여기 이 돈이면 될까?”

 “할머니, 물값은 물 도착하면 주세요. 제가 초저가로 검색해서 살게요.”


    

그래서 물을 주문했다.

12병 세트로 3건씩. 할머니와 나 각각 36병씩.

그런데 물이 며칠이 지나도 오지 않길래 쇼핑몰에 확인해 보니 주문 폭주로 배송이 지연된다고 했다.

그래서 또 기다렸는데 열흘이 지나도 안 와서 이상해서 전화해 보니 배송이 완료됐다고 했다.

나는 분명 못 받았다고 했고, 쇼핑몰에선 확인을 해보더니 다시 보내주겠다고 했다.



나는 곧바로 메모를 썼다.

할머니가 알아보기 편하시게 큼직한 글씨로 이 사실과 함께 며칠만 더 기다려 주시라고 써서 할머니 집 현관문에 붙여 두었다.


    




며칠 뒤 퇴근해 오니 현관문 앞에 물 72병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생수 업체로부터 배송 확인차 전화가 왔길래, 주문을 많이 해서 무거우셨을 텐데 죄송하다고 했다. 직원 말은 그곳이 생수 직영 업체여서 생수만 전담 배송하기 때문에 많이 시켜달라고 했다.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할머니 집 초인종을 눌렀다.

 “할머니, 오래 기다리셨죠? 물이 도착했어요.”


    

문을 벌컥 연 할머니는 처음 보는 표정으로 격앙돼 계셨다.

“아니 뭐 하는 거여 시방?! 물 지난번에 줬잖여?!”

“네……? 할머니, 제가요? 저 물 아직 안 드렸는데……”

“아니! 아휴 참! 이리 들어와 봐! 물이 여기 이렇게 많잖여?!”

할머니는 얼굴이 벌게져서 계속 소리를 지르고 계셨다.



“할머니, 그럼 물이 도착을 했었던 거예요?

그럼 저한테 말씀을 하셨어야 제가 알죠.

저는 배송이 안된 줄 알고 업체한테 전화해서 이만큼이나 물이 또 왔어요.” 

“아! 긍게 그게 뭐 나 때문이란 말이여?!”

“저랑 같이 물을 사기로 하셨는데 할머니가 저한테 말씀을 안 하시고 물을 다 가져가 버리시면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그리고 물값도 안 주셨는데......”


    

할머니는 들고 있던 수건을 던지며

“아! 무슨 소리여?! 우리 아들이 요 앞에서 요래 요래 돈 세서 거기 줬잖여?!”

“할머니, 저는 할머니 아드님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이 사람이 늙은이 잡네! 우리 아들이! 돈을 요래! 요래! 하나하나 세서 여기서 이렇게 줬잖여?!”


    

그때 ‘아차’ 싶었다.

할머니가 어쩌면 기억력에 문제가 있으신 게 아닐까. 왜곡된 기억을 선별하시는 게 아닐까……

“할머니, 아드님에게 전화하셔서 저 좀 바꿔주시겠어요?”

 “허, 참! 거 못 믿어? 아, 젊은 사람이 왜 그랴? 기다려봐!”

    


이상했다.

아들 전화번호는 핸드폰에 저장을 해두셨을 텐데 큰 수첩을 하나 들고 오시더니 한 장 한 장 넘기며 전화번호를 찾으시고는 하나하나 번호를 누르셨다.

“잉! 나여! 너 그때 물값 옆집 처자 줬지?

이? 안 줬어? 아, 안 준 거여? 안 줬다 그 말이제?”


    

한 번도 본 적 없는 할머니 아들이었다.

“안 줬다네. 허허허!”

할머니는 멋쩍게 웃으시더니 “내가 줄게, 내가!” 하시며 작은 가방을 뒤지셨다. 그런데 갑자기

“그니까 그때 우리 아들이 돈을 요래 요래 하나하나 세갖고 거기한티 돈 줬잖여! 기억 안 나?!”


    

이 상황을 현관문 앞에서 지켜본 나는 갑자기 마음이 아려왔다.

“네, 할머니. 제가 받았네요. 이제 생각 났어요. 무슨 일 생기시면 저한테 전화하세요. 저 갈게요, 할머니!”


    

집으로 돌아와서 생수업체에 전화를 했다.

대충 이유를 설명하고 오늘 배송 온 생수값을 송금했다. 몹시 피곤이 밀려왔고 허탈했고 슬펐다. 일단은 할머니 건강 상태가 몹시 걱정이 됐고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의 이 해프닝이 처음으로 ‘늙는다는 것’에 대한 생각을 하게 했다.





    

아흔 노인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할머니는 아직도 곱고 곧고 정정하셨다.

육체의 기력 안에서 정신의 기력을 먼저 잃어가고 계시는 할머니. 아니 모든 인간, 모든 숙명에 대한 생각이 갑작스레 몰려왔다.


30대까지는 한 번도 해본 적 없던 ‘건강’에 대한 염려가 요즘 문득 들긴 했어도, 나도 '늙음'을 맞이할 것이라는 건 구체적으로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본 적 없었던 ‘죽음’과 ‘노년의 쇠락과 외로움’에 대한 상념들이 물 밑 진흙이 파헤쳐진 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탁한 두려움으로 내 마음속을 꽉 채웠다.


    

아흔이 넘은 노인이 이 작은 아파트에서 하루 온종일 티브이를 멍하게 바라보고, 어두운 눈으로 신문을 읽는다. 한때는 학생들을 가르쳤고, 사회적 존경을 받았고, 최신 컴퓨터 자격증도 받았던 젊은 생기의 기억은 점점 무색해진다. 가족과도 교류가 줄어들고 혼자 긴긴 하루 해를 넘기며 어둠을 맞는다. 저 어둠의 끝을 따라 시선을 따라가면 귀가 먹어 들어가듯 온 세상이 칠흑일지도 모른다.


    

“내가 빨리 가야 하는디……” 옆집 할머니와 마주칠 때마다 할머니가 습관처럼 하셨던 말씀이다.

그 말은 생을 정리하는 나이 속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두려움'에 대한 반어일지도 모른다.



90여 년의 시간들 속에서 나는 내 인생의 어느 장면이 가장 아련해질까.

저 노인은 저 큐브 안에서 어떤 시절을 놓지 않으려 안간힘으로 기억을 끌어올리고 있을까.

언제 끝날지 모를 죽음의 시간을 대비하며 매일 조금씩 육체의 힘이 휘발되고 정신의 총기가 흐려지는 긴 호흡을 아흔의 나는 어떻게 잇고 있어야 할까.


    


갓난아기는 배로 숨을 쉬고, 성인은 가슴으로 숨을 쉬고, 노인은 목으로 숨을 쉰다. 

배를 올라 가슴으로. 더 올라가 목으로, 가장 막바지에 이르는 숨 자리가 목이다.

‘목의 숨’이 다 하면 우리는 흙이 된다.


    

“내가 빨리 가야 하는디 왜 이리 오래 사누.”

"티브이와 신문이 내 유일한 친구여, 친구!”



인간 삶의 마지막 길목에서 노인들은 자주 같은 마음이다.

그 시간들이 죽음보다 두려워하는 건 어제와 다르지 않은, 내일도 그러할 외로움이다.

한 세기를 끈질기게 살아낸 위대한 인생.

탄생은 누구에게나 공평해도 죽음은 누구에게도 공평하지 않다.

열일곱에 몸을 하늘로 날린 내 친구처럼 죽음은 너무나도 불공평하다.

살아 있지만 기면 상태와도 같은 가(假) 죽음 상태. 노년을 너무 신파로 몰입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지만 할머니의 저 두 말씀이 그렇게 마음을 엔다.


    

“좋은 이웃이 이사 가서 어떡해…… 아유, 이렇게 좋은 이웃이 이사 가서 어떡해……”

    


이사를 앞둔 나를 마주칠 때마다 할머니는 발까지 동동 구르며 눈물을 보이셨다.

교류도 없이 그저 오고 가며 몇 번 마주쳤던 옆집 사람.

시간 한 번을 함께 한 적 없었던 그저 타인.

그 얕디얕은 인간관계 하나가 뭐라고 그 이웃이 이사 가는 것조차 아흔 노인에겐 큰 박탈이고 상실이다.

할머니는 노년기에 접어든 언젠가부터 그렇게 하나, 또 하나를 잃어가고 잊어야 했을 것이다.


    

날짜도, 시간도 흐르지 않는 것 같은

진공관 같은 시간들과 그 안에서의 막연한 두려움,

그리고 근원적 고독이

한 인간이 찬란하게 한 생애를 살아낸 뒤

삶을 정리하는 종착역에서 엄습되는 감정이라 한다면

인생은 너무도 잔인한 것이다.






사람은 살면서 가까운 내 미래와 아주 먼 미래까지 온갖 나이의 무수한 삶을 간접 경험할 수 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내게 닥칠 일이라 인지하며 살지 못한다. 내가 그 나이가 될 거란 생각을 못 하고 안 한다.


    

윤여정 배우의 “넌 안 늙어 봤지만 난 늙어 봤어.” 그 짧은 한 마디에 우리의 우주가 담겨 있다.

프리다 칼로가 죽음의 문턱에서 그린 마지막 그림, 그녀 답지 않은 정물 그림에 써넣은 ‘Viva la Vida!’처럼 나의 마지막도 ‘인생이여, 만세!’라고 외칠 수 있기를 생각한다. 그래서 내 모든 아이디는 ‘great_viva’, ‘위대한 만세’다.


    

한 달 남은 이 집에서의 날들 안에 할머니의 아들과 꼭 한 번 통화를 해봐야겠다. 경비실에 내려가 할머니를 틈틈이 살펴봐 달라는 당부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다. 이사를 앞두고 작은방에 쌓여있는 72병의 산 같은 물은 경비실과 노인 가구에 모두 드리고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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