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의 나의 첫 업무분장은 방송이었다. 중간고사, 기말고사 같은 정기고사와 학력평가,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의 일괄방송, 방학식과 개학식, 학교에서 진로 특강 등 행사가 있는 날, 학교 음악회, 축제, 교직원 회의, 교직원 연수, 시상식, 퇴임식 등 마이크와 방송이 필요한 모든 행사를 담당하는 일이었다. 따라서 비담임교사이고 시험 방송 진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험감독도 없었다.
임용시험 감독관 요청 공문이 왔다.내 인생 첫 시험감독 일이었다. 정확히 1년 전 내가 임용시험을 치렀던 12월 첫째 주 토요일에 이번에는 수험생이 아닌 감독관으로 그 자리에 갔다. 새벽부터 시험본부에는 엄청나게 많은 감독 교사들, 진행요원들이 모여 있었다. 하나의 시험에 그렇게 많은 인원이 동원되는지도 처음 알았다.
갑질 폭언 학부모를 처음 겪은 뒤, 이 직업에 대한 굉장한 회의감이 해일처럼 덮쳤었다. 어렵고 힘들게 교육 공무원 자리를 가졌다고 하기에 이 직업은 주로 좌절감과 열패감을 안겨 주었다. 그 일 이후로 한동안은 매일 교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누가 시켜주지도 않는데) 박물관 에듀케이터를 해볼까?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닌데) 미술관 큐레이터가 되어 볼까?아니면 도슨트라도 먼저 시작해 볼까?문화재 해설사는 어떨까? (더 김칫국을 마셔서) 문화재청 공무원 시험을 볼까? 국가 일반행정직 시험을 보는 거야!
이런 상상으로 잠시 행복했던 꿈은 어떤 작은 것 하나를 보고 난 뒤 완전히 깨져버리고 말았다. 첫 시험 감독으로 왔던 임용시험장에서 수험생의 신분증을 대조하던 순간 보게 된 것은 바로 '문화재청 공무원증'이었다.
'아니,문화재청 공무원이 중등임용경쟁시험에는 대체 왜?' 라는 생각이 들며, '저기도 보통이 아닌 곳인가 보다.' 싶어 무색한 웃음이 났다.
초중고, 대학교, 대학원까지 19년 간 시험을 치렀다.
시험은 회차가 늘어도 전혀 익숙해지지가 않았고 치를 때마다 긴장이 된다. 감독관은 내가 부정행위를 하나 안 하나 매의 눈으로 색출해 내는 무시무시한 사람이었고, 잘못 걸리면 시험이 무효가 될 수 있으니 최대한 거슬리는 행위를 하지 말고 공손한 어필을 해야 했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왔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시험 감독관이 되어 보니 그 마음과는 정반대였다. 빼곡히 앉아 있는 학생들, 수험생들에게 동질감을 느꼈고, 이들이 얼마나 고군분투하며 이 자리에 앉게 되었을지를 너무나 잘 알아서 어쨌거나 수험생들이 마음 편히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모든 행동을 조심하게 됐다.
짧게는 1년에서 길게는 10년 이상도 도전하는 시험이다. 고사실에 입장할 때도 살금살금 들어갔고, 미소로 눈인사를 했다. 유의사항 안내도 최대한 부드러운 목소리로 존칭 했다. 나는 여러분들의 심부름꾼으로 왔다는 걸 온몸으로 어필했다.
중, 고등학교 때 내가 제일 싫어했던 선생님이 있었다. 수업도 학생들이 듣거나 말거나 My Way 하셨던 중년의 남자 국어 선생님이었는데 수업의 절반이 농담이었다. 중요한 것과 가볍게 짚고 넘어갈 것의 구분이 없었고 어조 또한 높낮이나 강약 없이수업을 하셨는데, 심지어 이게 수업내용인지 농담인지조차 분간이 어려웠다.
그 선생님이 시험감독이셨을 때는 특히 더 신경이 쓰였다.시작 종이 칠 때까지 계속 말을 걸었다. 시험 중간에도 산만하게 슬리퍼를 끌며 돌아다녔고, 내 서술형 답안을 옆에 서서 상체를 숙이고 읽기도 했다. 시험 종료까지 10분 남은 시간, 대부분이 엎드려 자고 있을 때부터는 편하게 농담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시간이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마지막 한 문제를 파고들며 가장 집중해야 하는 시간이었다.
교탁에 서서 교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이 교실 안에서 1등을 해도 합격은 희미하다.
다양한 연령이 보였다.안내사항을 한번 더 강조했다. 바로 작년에 같은 시험을 치렀던 입장으로 수험생들이 가장 유의해야 하는 사항과 궁금해하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갓 대학을 졸업한 사람부터 50대 중반까지. 수험생들의 볼펜이 닿는 탁탁 경쾌한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는 다듬이질 소리 같았다. 시간에 쫓겨 글씨가 날아가는 사람 사이로 글씨가 정갈한 사람의 답안지가 빛이 났고, 볼펜을 여러 자루 예비해 온 사람들 틈 속에서 시험 중간에 볼펜이 안 나온다고 빌려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임용시험에서의 볼펜은 정말로 매우 중요하다. 자신의 손에 최고로 익은 애착 볼펜이 있기 마련이다. 볼펜대와 볼펜심 모두 중요하다. 새 볼펜심은 안 된다. 잉크를 30% 정도 사용한 후, 70% 정도 남은 볼펜이 가장 최상이다.
학교에서 학생들의 시험감독을 할 때도 같은 마음이다. 평소에 예의 없게 굴던 녀석들도 시험문제에 코를 박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짠한 마음이 든다. 저 아이가 저렇게 작았었나 싶게 웅크린 아이들이 안쓰럽게 마음이 쓰인다. 돕고 싶고 편안하게 해주고 싶고 괜찮다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선생'은 말 그대로 먼저 난 사람이 맞나 보다.
많이 아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경험을 한 사람이다.
시험기간 맨숭맨숭한 얼굴로 애를 쓰고 있는 아이들을 볼 때마다 그동안 힘들었던 마음은 사라지고 용기를 심어줄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시험은 치르는 이나 지켜보는 이나 서로를 애틋하게 만든다.
임용시험 감독/ 한국사능혁검정시험 감독/ 수능시험 감독/ 서울과학고 입학시험 감독 등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