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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a Kim Oct 24. 2021

본격 직장 비교 (1) : 회사가 좋은 점

학교 가보니 이런 건 회사가 좋았다.

* 이제부터의 비교는 개인적 경험에 의한 주관적 비교이다.



회사 다닐 때는 방광염을 달고 살았다.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빴다. 교사가 되고는 화장실은 잘 간다. 강제 쉬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두 일이 묘하게 다르다. 회사와 학교의 업무 강도와 밀도를 보자면 둘의 크기는 의외로 비등비등하다. 나는 교사가 열 배는 편할 줄 알았다.



회사 생활은 걸어서 14시간을 간다 치면, 학교 생활은 100m 달리기로 8시간 동안 질주해서 가는 것 같다. 회사 다닐 때도 무척 바빴지만 회의 시간을 빼고는 업무 시간과 강도가 완급조절이 가능했다. 집중해서 업무를 할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학교는 뭔가 굉장히 숨이 차다. 한 시간 내내 큰 목소리로 수업을 한다는 건 엄청난 에너지 소모였다. 정말로 한 시간 내내 강의한다. 숨 돌릴 틈이 없다.



게다가 모든 학급마다 지독하게 말 안 듣고 혈압을 올리는 녀석들이 꼭 있어서 기가 쪽쪽 빨려 나간다. 수업이 끝나면 교무실로 돌아와 업무를 한다. 업무에 집중하다 보면 한 시간이 금세 지나간다. 일이 조금 된다 싶으면 또다시 수업을 들어가야 한다. 수업에 다녀와서는 다음 주 수업을 준비한다. 한 숨 돌리려고 하면 담임 반 아이들이 수시로 찾아와서 조퇴, 외출, 부상, 상담 등을 요구한다. 8시간 동안 쉼 없이 질주하는 기분이다. 점심시간도 업무시간이다. 업무 집중도가 상당히 낮고 하루의 에너지 소모가 무척 크다.



회사 다닐 때는 결코 몰랐던 상황이었다. 말을 한다는 게, 그냥 말이 아니라 관심 없는 녀석들도 끌고 가야 하는 학교 수업에서의 말이라는 것이 이렇게 고된 일일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회사에서의 스트레스

능력은 없는데 사람은 좋은 팀장을 만났을 때,

능력은 있으나 위선적인 선배를 만났을 때,

업체가 납기일을 맞추지 못할 때,

시제품이 잘못 나왔을 때,

단가가 안 맞아 내 디자인 퀄리티를 낮춰야 할 때,

연봉협상 때 같은 팀 동료가 장난을 칠 때,

품평회 날짜에 임박해 샘플이 안 나왔을 때,

디자인 조율에서 뜻을 굽히지 않는 후배를 설득할 때,

팀장 앞에서는 자기가 일을 다 하는 것처럼 공치사하고

실제 팀 업무에서는 가장 일을 안 하고 못 할 때 정도였다.

즉 누군가에게 크게 상처를 받거나

치명상을 입을 정도로 모욕을 당할 일은 좀처럼 없다.



이 말은 학교는 정반대라는 뜻이다. 

학교는 폭탄이 터지듯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치명상의 모욕을 당한다. 한 번 당해보면 엄청난 충격인데 두 번 당해도 또 만신창이가 된다. 전혀 익숙해지지 않는다. 섬뜩하게 누적된다.


실제 내 디자인 제작사양서. 드라마처럼 물감으로 예술하듯 그리는 경우는 아예 없다. 도식화로 정확히 설명하는 그림이어야 한다.


학교는 군대처럼 불특정 다수가 모인 모집단이다.

이 가운데 어떤 특수한 사람이 숨어 있을지 전혀 모른다. 가장 흔하게는 감정의 분화가 덜 됐거나 예의를 모르는 경우, 고맙고 미안한 걸 느끼지 못하는 경계선 인격장애, ADHD, 분노조절장애, 무례와 무식 그 어디쯤의 경우 등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 속 터지게 하고 괴롭힐지 모르는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매년 나타난다. 매번 다양하게 출몰한다. "교사들 똥은 개도 안 먹는다."라는 말을 절감한다.



회사에서는 민원이 없다.

민원이라고 해봐야 고객의 클레임이 대부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못 길들여진 것이 있다.

목소리가 큰 사람이 이기고, 우기면 다 해준다는 마인드다. 이건 백화점에서 가장 많은 행태다. 회사 일에서는 내가 직접 클레임을 받을 일이 없다. 백화점에서 1차적으로 클레임을 받고, 본사 영업팀에게 연결이 된다. 어지간한 것은 영업팀에서 환불이나 교환 등으로 해결 가능하고 추후 같은 문제의 여지가 있다면 상품기획팀으로 연결된다. 이때는 제품의 수정, 보완에 대한 연결이지 '진상'을 직접 상대해서 해결하는 일이 아니다.



학교는 민원 천국이다. 어쩌다 공교육이 민원받이가 되었는지, 목소리가 큰 학부모는 가장 위협적인 대상이다. 논리도 없고 이성도 없기 때문이다. 백화점 고객센터에게 항의하듯 폭언하고 우기는 안하무인 학부모의 민원은 담임교사가 온전히 다 '당한다'. 자식 앞에서 이성을 잃은 학부모는 많은 교사들의 사기를 꺾고 모멸감을 안긴다. 굉장히 괴롭고 참담한 이런 일은 생각보다 꽤 자주 일어난다. 이건 회사처럼 환불이나 교환 등 돈으로 해결되는 일이 아니다.


 

회사에서는 점심시간 때 숨을 돌렸다. 구내식당에서 절반, 반짝거리는 빌딩 숲 사이 맛집에서 절반을 먹었다. 12시에 회사를 벗어나면 우리 같은 근처 직장인들과 마주친다. 왠지 모르게 동질감과 안도감이 들었다. 사람 다 이렇게 살고 있구나 싶은. 식사를 하고 회사로 돌아와 커피를 마시고 동료들과 잠시 담소를 나눈다. 별을 보고 출근해서 별을 보고 퇴근하는 애환의 직장인들이 가장 사람다운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다. 



(산더미 같은 업무와 대면한 저녁식사는 거의 도시락을 시켜먹거나 샌드위치로 책상에서 때운다. 10분이라도 일찍 집에 가고 싶어서 반 넋이 나간 채 일을 하며 먹는다. 그래도 밤 9시 전에 퇴근하기는 힘들다.)



학교는 점심시간도 근무시간이다. 점심시간 1시간 동안 밥을 먹고 쉴 수가 없다. 입에 밥 한 숟가락 넣자마자 '조퇴시켜 달라, 우리 반 누구가 축구하다 다쳤다, 싸움이 났다, 급식이 맛이 없는 날이라 외출하겠다, 머리가 아프다' 등 학급 아이들은 빈번하게 사안을 가지고 온다. 그들은 자신 한 명의 일이지만 담임은 매일 30명 가까운 아이들을 살펴야 한다. 점심시간에 급식지도 당번이 걸릴 수도 있고, 수업 때문에 한 번에 모일 수가 없으니 담임 회의, 부서별 회의, 교과 회의, 학업성적관리위원회 회의, 학부모 상담, 학생 상담 등이 주로 점심시간에 이루어진다.



회사는 업무와 사생활이 분리된다. 직장인들도 카톡 업무 전달이 많겠지만 야근이 많은 회사일 경우는 집에서 잠만 자고 출근하기 때문에 카톡 업무가 별로 없는 경우가 많다. 교사는 물리적 퇴근을 해도 정신적 업무의 연장이다. 학생들은 하교를 해도 학교생활이 끝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학생들과 학부모들로부터 심야시간, 새벽시간에도 문의 연락이 온다. 답을 내일 출근시간으로 미루거나 전화를 안 받으면 책임감 없고 이기적인 교사로 매도당한다. 요즘은 각 반마다 학부모 단체 카톡방이 있어서 말들이 꼭 나온다. 어디든 선동하는 사람이 있다. 부정적 선동은 파장이 훨씬 크다. 마치 첫 댓글로 악플이 달릴 경우 아래로 달리는 댓글들이 혹평으로 가득 차게 되는 심리와도 같다.




회사는 회장님 보고가 있으면 그야말로 초비상이다. 회장님이 한 번 뜨기라도 하면 부서 전체가 들썩인다. 갑자기 던져진 회장님의 질문에 트렌드 분석, 매출 보고, 사업계획 보고, 동향 분석, 영업 이익 등 여기저기서 자료를 찾느라 혼이 나간다. 그러나 사업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은 큰 기회가 될 수 있다. 오너의 마음에 드는 프레젠테이션을 했다면 새로운 사업을 추진해 볼 수도 있고 그 자리에서 신규 브랜드에 대한 아이디어가 계획될 수도 있다. 출장 기회, 특진 기회, 성과급 등 능력에 따라 다양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일을 만들어내는 사람, 창의적 아이디어를 전개하는 사람, 그걸 사업으로 모델링하는 사람 등 각자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다.


이번 시즌 내가 맡은 브랜드의 무드 계획 중(가장 초기의 메모)
밀라노 출장보고서. 물론 디자인 일이 가장 재미있었지만 기획, 분석과 보고서 작성하는 일도 좋아했다.


그런데 학교교육청 공문이나 내부 기안 등 대부분의 일은 절차에 따라 체계적으로 움직이고 형식화가 되어 있다. 그러나 형식적 사업, 예산을 소진하기 위한 '공문을 위한 공문' 또한 많다. 많은 공문은 담임교사의 업무로 떨어진다. 교사들은 기본적으로 성실하고 협조적이기 때문에 다 한다. 뭐 이런 것까지 기안을 올리나 싶어도 나중에 보면 이것들이 모두 업무의 근거로 남게 되어 매우 투명하기도, 불필요한 업무 과중이 되기도 한다. 그만큼 모든 근거에 대해 세세하게 내부결재를 득한다.



물론 해당 업무의 정당성에 대해 합리적으로 저항하는 진취적인 교사들도 많다. 부장교사가 이런 유형일 때가 가장 감사하다. 부당하고 불필요한 일이 부서로 떨어지면 직접 나서서 막아주어 부원들의 업무과중을 줄여주는 이런 교사 유형은 회사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유형이다. 회사에서의 팀장은 승진을 위해 상사에게 잘 보이려고 온갖 사업을 다 받아와서 팀원들을 힘들게 했다. 팀원의 방패가 된 팀장은 불행히도 본 적이 없다.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 교사는 안전할 수 있다. 수업이나 출결 확인도 꼼꼼하게 하지 않고 학생들에게 예의나 교칙도 훈계하지 않는 교사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학생들과의 관계도 나쁠 일이 없다. 학교에서는 누가 일을 잘하고, 누가 일을 대충 하는지 훤히 다 보인다. 그러나 후자의 교사는 동료들의 평가에 개의치 않고 My Way를 간다. '회사였다면 진작에 책상이 없어졌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학교는 회사와 달리 특이한 분위기가 있다. 수업이나 학급 아이들과의 활동에서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이슈를 만드는 만드는 교사는 양가의 반응을 을 수 있다. 열정적이고 참신해서 좋은 모델이 되거나, 학년 전체가 움직여야 하는 통일성이 필요한 경우라면 '굳이 혼자만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경우와 함께 균형을 맞춰야 하는 경우가 다른데 분위기를 못 맞추는 경우를 종종 본다. 혼자 튀는 건 유난으로 여겨질 수 있다. 과녁이 크면, 더 많은 화살을 맞게 되는 것과도 같다. 대부분 후자가 될 가능성이 훨씬 크다.



학교에서는 튀면 주목 된다.

회사에 튀어야 주목 받는다. 

두 사회의 뉘앙스는 많이 다르다.



* 이 모든 비교는 개인의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임을 밝힌다.



1년에 6번 치르는 품평회- 내 디자인 파트. 내 디자인들이 드디어 실물로 평가와 수주를 받는 무시무시한 날이면서 설레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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