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닐까"
어릴 때부터 잘 먹지 않았다. 아니, 먹을 수 없었다. 나는 감각이 예민한 아이라 냄새, 모양, 식감 하나에도 민감했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반찬 투정을 했다는 건가? 아니다. 반찬 투정은 내게 돌아오는 것 없이 리스크만 큰 사치였다. 사소한 불만이라도 입 밖으로 꺼내는 날엔 돌아올 비난과 폭언을 감당할 수 없었다. 부모가 전부인 아이에게 부모의 비난은 온 우주를 흔드는 일이었다. ‘혹시 내가 버려지진 않을까, 또 무슨 잘못을 한 걸까, 내가 더 잘하면 사랑받을 수 있을까’하는 생각들이 머리를 가득 채웠다. 매 순간 부모의 얼굴을 살피며 눈치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니 반찬 투정 같은 건 시도는커녕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얀 쌀밥 위에 얹힌 검붉은 강낭콩들은 나를 늘 괴롭혔다. 벌레처럼 보이는 그 모양새와 미끈한 식감이 싫었다. 서툰 젓가락질로 콩을 피해 밥만 떠내려고 애썼지만, 콩들은 밥알 속에 교묘히 숨어 있었다. 억지로 삼키려다 결국 숨이 막혔고, 엄마가 보기라도 하면 곧 전쟁터가 되었다.
"남들은 없어서 못 먹는데, 넌 왜 이렇게 유난이야!" 엄마의 말은 날카로웠다. 밥을 거부한 건 그저 내가 잘못됐다는 증거가 됐다. 나를 보는 엄마의 시선에는 짜증과 실망이 얽혀 있었다. 나는 무언가를 잘못한 것 같았지만,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어쩌면 나라는 존재 자체가 잘못된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식탁 위에 내려앉았다.
몸도 유난하게 약했다. 자주 아팠고, 소화도 잘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마저도 꾀병으로 취급받았다. “나는 멀쩡하게 낳았는데.” 는 생모가 나에게 가장 자주 했던 말 중 하나이다.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은 내 몸을 이해한다. 선천적인 자가면역질환일 수도 있고, 어린 시절 극심한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다. 분명한 건 내 몸은 이미 그때부터 진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20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번 돈으로 제대로 된 치과를 갔고, 그곳에서 치아 교정을 권유받았다. “그동안 밥을 어떻게 먹었어요? 어금니가 하나도 맞물리지 않아서 씹지를 못했을 텐데.” 그 말을 듣는 순간, 내가 왜 고기를 먹지 못하고 빵이나 우동 같은 부드러운 음식만 찾았는지 이해됐다.
과일 중에선 멜론을 좋아했다. 부드럽고 달콤하면서 시원했다. 생모는 내가 좋아하는 멜론을 거의 사주지 않았다. “비싸다”는 이유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비싸다는 이유로 멜론을 사주지 않던 생모가 본인이나 다른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들은 거리낌 없이 잔뜩 사 오곤 했다는 것이다. 나에겐 제한되었던 그 선택권이 다른 가족에게는 아낌없이 열려 있었다. 어쩌다 멜론을 사와도 겨우 몇 조각 나눠주고 생색을 내고는 했다. 부엌에 쌓인 과일 상자들 속에 멜론이 있을 때조차도 그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어른이 되어서 돈을 벌면 멜론을 잔뜩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마음껏 먹으면서 어린 시절의 억울함을 달래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다지 찾아서 먹고 싶지 않다. 오히려 상상만으로도 멜론의 단맛이 쓰게 느껴진다. 상상 속 그 맛 속에는 내가 어릴 적 이해할 수 없었던 서운함과 외로움이 여전히 남아 있는 것 같다.
음식은 나에게 단순히 먹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기억이었고, 상처였으며, 때로는 생존이었다. 어린 시절 내게 음식은 두려움과 불안을 동반한 존재였다. 내가 그토록 강낭콩을 골라내고, 고기를 먹지 못하고, 우동 한 그릇에 안도했던 이유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것은 단순한 음식 취향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가 나를 지키기 위해 할 수 있었던 작은 저항이었다.
내 이야기를 꺼내는 일이 여전히 쉽지는 않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내가 경험했던 것들이 나만의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애써 묻어둔 과거를 마주하는 것은 때로 고통스럽지만, 그 시간 속에서 지금의 나를 이해하는 열쇠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이야기를 조금씩 풀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