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리를 두는 용기

독성 관계에서 벗어나기

by Mia 이미아

나르시시스트 부모와의 관계에서 벗어나려면 마음속의 죄책감과 두려움을 먼저 마주해야 한다. 부모는 자녀에게 끊임없이 죄책감을 심어주며, 기대에 부응하지 않으면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왔다. 이러한 조종 속에서 자녀는 자신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는 인식을 내면화한다. 이로 인해 관계를 단절하거나 거리를 두는 선택이 부모에 대한 배신이자 자신의 책임 방기로 여겨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부모가 만든 왜곡된 프레임일 뿐이다.


진정한 치유를 위해서는 건강한 거리를 확보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이는 자기 돌봄의 첫 단계다. 부모의 지속적인 통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물리적 거리뿐만 아니라 감정적 거리도 설정해야 한다. 관계를 유지하되 감정을 보호할 수 있는 경계를 정하고, 부모의 기대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러한 과정은 단순한 독립이 아니라 정체성을 회복하고 온전한 자아를 확립하는 중요한 단계다.


거리를 둔다는 것은 단순히 연락을 끊거나 가출하는 극단적 방법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건강한 거리를 설정한다는 것은 물리적·심리적 경계를 확립하고, 삶을 온전히 지키는 다양한 방식을 실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평소 잦은 전화나 문자를 제한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 부모의 지나친 간섭이 느껴질 때 "이 문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자" 혹은 "지금은 바쁘니 나중에 연락할게"와 같이 명확한 의사 표현을 통해 스스로의 공간을 확보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러한 작은 실천들은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회복하는 중요한 과정이며, 삶의 영역을 보호하는 시작점이다.


오랜 시간 부모의 기대에 맞춰 행동하는 것이 당연했다면, 허락 없이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 불안하고 두렵게 느껴질 수 있다. 부모의 기대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는 죄책감과 자기 의심을 불러일으키며, '이렇게 해도 될까?'라는 고민을 반복하게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순간이야말로 자아를 찾고 독립적인 삶을 형성하는 중요한 전환점이다. 부모의 기대와 요구를 거부할 때마다 스스로의 가치를 확인하고 자율성을 구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내가 왜 이 결정을 했는가’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는 연습을 통해 자신의 선택이 부모의 기대보다 더 중요한 이유를 깨닫게 된다. 이러한 성찰은 죄책감을 줄이고 자신에 대한 신뢰와 자기 존중감을 키우는 데 중요하다.



나는 가족과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 법적으로 가족관계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었지만, 여러 고비를 거치고 연락을 완전히 차단했다. 앞서 ‘경제적 덫에서 벗어나기’에서 동생과 건강보험공단에 찾아가야 했던 일을 얘기했었다. 아마 이때였던 것 같다. 그나마 붙들고 있던 무언가가 끊어진 것이. 후에 나는 동생 명의를 사용해야 했던 이메일 계정 같은 것들을 일일이 찾아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정리해 동생에게 전해주었다. 인연을 끊더라도 피해는 주지 않으려는 나답고 조용한 이별 준비였다.


연락을 끊고 살아가던 중이었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셨고, 나는 원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의 SNS를 통해 시아버님의 부고를 알게 된 언니가 연락을 해왔다. 그 얼마 후, 내 생부가 위독하다며 찾아오라는 연락이 왔다. 연락처를 바꿔가며 집요하게 병상의 사진과 영상을 보내왔다. 차단을 해도 다른 번호로 다시 연락이 왔다. '부양의무자 불이행 사유서'를 작성한 후에는 가족이 연락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그들은 이를 무시했다. 병원에 당장 오지 않는 나를 비난하는 말이 반복됐다. 혼란스러웠지만, 나는 다시 모든 연락을 차단했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생부는 여전히 멀쩡했다. 이 모든 것이 또 한 번의 어이없는 기만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 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는 걸 확신했다.




거리를 두는 과정에서 가장 많이 떠오르는 감정은 배신감과 미안함이다. "그래도 날 낳아 기른 부모인데, 내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자책이 고개를 든다. 부모가 베푼 물질적 지원이나 헌신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자녀는 부모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쉽다. 나 또한 부모가 최소한의 의식주를 유지하게 해 준 것만으로도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부모가 자녀에게 끼친 상처를 계속 합리화하거나 무조건 감싸야할 의무는 없다. 또한, '굶어 죽지 않을 정도의' 제한된 돌봄은 사실 교묘한 통제이자 경제적 학대인 것을 인지해야 한다. 부모의 행동이 자녀의 정신적, 정서적 건강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건강하지 않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더 큰 고통을 초래할 수 있다. 거리를 두는 것은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스스로를 보호하고 보다 건강한 삶을 위한 필요하고도 정당한 선택임을 인식해야 한다.


때로는 가족이나 주변인이 "부모한테 그러면 안 된다"거나 "왜 유난을 떠느냐"며 거리를 두려는 시도를 방해하기도 한다. 이러한 반응은 부모와의 관계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 장애가 될 수 있으며, 자녀는 다시 부모의 기대와 사회적 압박 속으로 빠져들 위험이 크다. 그러나 관계 안의 고통은 당사자가 가장 잘 안다. 주변 사람들이 가볍게 조언할지라도, 부모와의 상호 작용이 지속적으로 부정적 영향을 미쳐왔다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남의 말에 흔들려 행동을 바꾸다 보면, 부모가 만든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부모의 의견보다 자신의 감정을 신뢰하고, 관계의 질을 점검하는 것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



나와 같이 관계 단절을 고민하는 이들도 있다. 부모나 가족의 지속적인 감정적, 신체적 학대나 조종이 심각한 경우, 단절은 건강한 삶을 되찾기 위한 최후의 선택이 될 수 있다. 단절을 고민하고 있다면 전문가의 조언을 구하고, 신뢰할 수 있는 주변의 지지를 확보한 상태에서 신중하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계를 완전히 끊기 전에 감정적, 현실적 준비를 철저히 하고, 단절 이후의 삶을 계획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불필요한 죄책감에 휩싸이지 않고 자신을 위한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있다.


내 경우, 모든 전문가들은 즉각적이고 완전한 단절을 권했다. 하지만 법적으로 이를 실행할 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아, 현실적인 방법을 고민해야 했다. 어떻게 하면 안전하게 단절하고, 이후의 삶을 보다 안정적으로 구축할 수 있을지를 신중히 따져보았다.


부모와 완전히 단절하지 않더라도, 특정 상황에서 피하거나 거부할 수 있는 선택을 통해 부분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가족 모임에 부모가 '꼭 참석해야 한다'라고 압박할 때, "이번에는 다른 약속이 있습니다""제 건강과 일정도 고려해야 합니다"처럼 명확히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단순한 회피가 아니라, 자신의 생활 패턴을 지키고 부모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결정을 하는 과정이다.


주변에서 “주말/명절마다 부모가 집에 오라고 강요해서 괴롭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자녀가 개인 일정이 있어도 부모는 ‘이기적으로 굴지 말고 당장 오라’고 강요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부모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느껴진다면 단호하게 입장을 전하는 것이 필요하다. 부모의 요구에 항상 응답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번 주말에는 계획이 있어서 힘들어요" 혹은 "제게 필요한 시간이에요"와 같은 명확한 의사 표현을 연습해야 한다.


부모와 부분적으로 거리를 두는 데는 꾸준한 연습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불편할 수 있지만, 점차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표현하면서 자율성을 키울 수 있다. 이를 위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부모의 요구에 즉각 반응하기보다 일정한 기준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부모의 잦은 연락에 대해 "주중에는 바쁘니 주말에 연락드리겠습니다"처럼 규칙을 설정하고 일관되게 실천하는 것이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



결국 거리를 두는 용기란 더 이상 학대와 통제의 굴레 속에서 살지 않겠다는 선언이자, 자신의 삶을 온전히 되찾으려는 의지의 표현이다. 이는 부모에 대한 배신이 아니라, 오랫동안 억눌려 왔던 감정과 관계의 틀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 보호의 선택이다. 부모의 기대와 조종에서 자신을 분리하는 과정은 혼란스럽고 감정적으로 힘들 수 있지만, 정체성을 확립하고 진정한 독립을 이루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다.


부모와의 관계를 조정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감정이 교차한다. 미안함과 배신감, 두려움과 해방감이 뒤섞이며, 때로는 후회와 불안이 엄습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감정들은 더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하는 신호다. 스스로에게 "나는 내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되새기는 것이 필요하다. 아무리 부모나 가족이라도 심각한 독성 관계라면 단절을 결단하고, 가능하다면 '건강한 거리 두기'를 실천하면서 관계를 조정하고 자신의 행복과 안정을 우선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세상에 당신 자신을 잃을 정도로 중요한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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