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기쁨을 찾다

상처를 품고 나아가기

by Mia 이미아

학대 안에서 성장한 아이들이 겪는 가장 큰 상실 중 하나는 ‘기쁨을 느끼는 능력’이다. 지속적인 억압과 통제로 인해 자연스러운 웃음과 즐거움이 점차 사라지고, 행복을 느낄 때조차 ‘이래도 되나’라는 불안이 따라붙는다. 부모의 비판적인 시선과 조건부 사랑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자신이 행복을 누릴 자격이 없다는 무의식적인 신념을 가지게 된다. 그 결과 작은 성취나 행복조차 스스로 억누르며, 죄책감에 사로잡혀 기쁨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억압에도 불구하고, 내면 깊숙이에는 여전히 기쁨을 향한 본능이 남아 있다. 마음속에서는 자유롭고 즐거운 순간을 갈망하며, 억눌린 감정들이 작은 계기로 다시 깨어날 준비를 한다. 이 본능은 환경에 따라 잠시 움츠러들 수 있지만,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잃어버린 기쁨을 다시 찾고, 억압의 고리에서 벗어나 스스로에게 행복을 허락하는 용기를 갖는 것이다.


어린 시절, 사소한 것에도 즐거워하던 순간들이 있었다. 누구나 동네 공원에서 친구들과 뛰놀던 기억이나, 좋아하는 만화책을 몰래 보며 깔깔대던 추억이 어딘가에 남아 있을 것이다. 작은 일에도 신이 나고, 사소한 장난에도 웃음을 터뜨리며 순수한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부모가 ‘그걸 왜 하니’라며 무시하거나 '쓸데없는 짓 좀 하지 마'라는 말로 이러한 즐거움을 깎아내릴 때, 그 감정은 점차 죄책감으로 변했다. 즐거움을 느끼려 할 때마다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면 혼날 거야’라는 불안이 스며들어, 점점 기쁨을 회피하고 억누르는 습관이 자리 잡게 되었다.


이런 경험이 반복되면, 기쁨을 느끼기보다 불안과 자기 검열이 앞서고, 스스로 좋아하는 것을 찾는 일조차 어려워진다. ‘기쁨은 사치’라는 잘못된 신념이 내면화되면서 자신의 욕구보다 부모의 기대를 우선시하는 방식으로 성장하게 된다. 이러한 영향은 성인이 되어서도 지속되며, 행복을 느끼는 순간조차 ‘이래도 괜찮을까?’라는 불안이 따라붙어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다. 결국, 기쁨을 누리는 것이 익숙하지 않게 되고, 즐거운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법을 다시 배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잃어버린 기쁨을 되찾는 첫걸음은 ‘작은 즐거움의 재발견’이다. 우연히 들려오는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거나, 어릴 적 즐겨 읽던 동화를 다시 펼쳐보는 식이다. 이러한 활동들은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억눌렸던 감정을 회복하는 중요한 시작점이 된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민망할 수 있다. 즐거움을 찾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거나, 주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작은 시도들이 쌓이면 억눌렸던 감정들이 서서히 떠오르고, ‘나에게도 밝게 웃을 수 있는 면이 있었구나’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중요한 것은 작은 기쁨이라도 꾸준히 이어나가는 것이다. 하루에 몇 분이라도 스스로에게 즐거움을 허락하는 시간이 쌓이면, 점차 ‘나는 행복을 느낄 자격이 있다’는 확신이 자리 잡게 된다. 잃었다고 믿었던 감정이 되살아나는 순간, 삶의 질은 크게 향상되고 내면의 안정감도 점차 회복된다.


나는 어릴 적 부모에게 “네가 그림 그려서 뭐 하겠니, 돈도 안 되는 걸”이라는 말을 반복해서 들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리는 행위 자체를 불필요한 시간 낭비로 여기게 되었고,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예단했으며, 창의적인 표현의 기회를 스스로 차단했다. 부모는 미술 교육을 받는 것조차 사치라고 거절했고, 예술적 열망은 부모의 시선 속에서 점차 희미해졌다.


그러나 어느 날, 잠시나마 머문 런던의 한 학교에서 교양 과목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내가 얼마나 예술 활동을 갈망하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되었다. 미술 선생님의 따뜻한 격려와 진심 어린 칭찬을 받았을 때, 처음으로 무언가를 잘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또 다른 선생님은 '이 작은 머릿속에 뭐가 들어 있는 걸까?'라며 내 재능을 높이 사줬었다. 그 순간, 혼란스러웠다. 칭찬을 받는 것이 어색하게 느껴졌고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를 깎아내리는 부모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동시에 내 안에서 숨죽였던 기쁨이 다시 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즐거움을 찾는 것이 불안하거나 낯설게 느껴질 수 있지만, 이런 감정을 인정하고 차츰 내면에 긍정적인 신호를 보내는 연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하루의 작은 기쁨을 계획하고 실천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예를 들어 하루 10분 동안 좋아하는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는 등의 작은 실천이 즐거움을 허락하는 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내가 이래도 되나'하는 부정적인 생각이 올라올 때마다 “내 감정을 소중히 여기겠다”는 다짐을 반복하며, 자신에게 작은 보상을 주는 방식도 유용하다. 이러한 연습이 쌓이면 점진적으로 기쁨을 받아들이고, 감정을 존중하는 태도가 자리 잡게 된다.




만약 생각나는 취미가 없다면 쓸데없고 유치한 일들을 해보는 것도 좋다. 나는 런던이 그래서 좋았다. 런던에서 지내던 시절, 친구들은 하우스 파티를 자주 열었다. 각자 마실 것과 가끔은 음식을 싸와서 별다른 계획 없이 모여 앉아, 음악을 틀어놓고,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나누며 밤을 지새우는 일이 흔했다. 맥주나 와인잔을 기울이며, 오늘은 어떤 엉뚱한 이야기가 나올지 기대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였다.


그날도 그랬다. 친구들과 소파에 둘러앉아 웃고 떠들다, 자연스럽게 친구의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영국인인 그는 사소한 일에도 흥미를 갖고 깊이 파고드는 성향이었다. 우리는 잘 맞았고 대화는 점점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밀폐 용기 뚜껑 열기 힘들지 않아?”


손 힘이 약한 내가 물었다.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가끔 너무 꽉 닫힌 뚜껑을 열다가 손이 다치거나, 힘을 주다 내용물을 쏟아버린 적도 있었다.


“맞아. 특히 잼이나 소스병 뚜껑 같은 건 더 그래. 열다가 손에 묻거나 주변으로 튀면 꽤 불편해.”

“공기 때문에 압력이 생겨서 그런 거겠지?”


우리는 즉석에서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했다. 손에 잡히는 종이를 찾아가며 그림을 그렸다. 밀폐 용기 뚜껑 한쪽에 작은 공기구멍을 만들고, 필요할 때만 열고 닫을 수 있는 구조라면 어떨까? 뚜껑을 열기 전, 작은 구멍을 먼저 열어 압력을 빼면 훨씬 쉽게 열리지 않을까?


“온오프가 가능하면 내용물이 새지 않겠지?”

“그래, 버튼처럼 눌러서 여닫을 수 있도록 하면 돼.”


사소한 아이디어였지만, 우리는 한참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그리고 그 대화는 와인과 함께 흩어졌다. 다음 날이면 또 다른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쌓여가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우연히 광고에서 락앤락 제품을 보게 됐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우리가 그날 밤 떠들던 그 아이디어와 똑같은 기능이 적용된 밀폐 용기가 진열되어 있었다. 뚜껑 한쪽에 작은 공기 조절 버튼이 달린 제품이었다. “이거…” 순간 그날 밤 하우스 파티에서의 대화가 떠올랐다. 어쩌면 우리가 이야기한 아이디어와는 전혀 무관할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치 우리가 세상에 작은 흔적을 남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쓸데없는 대화라고 생각했던 것들 속에도, 반짝이는 순간들이 있었다. 이러한 작지만 구체적인 경험들은 잃어버린 기쁨을 되찾는 데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처음에는 두려움과 불안이 앞설 수 있지만, 작은 용기가 큰 변화를 가져온다.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인정하고, 그것을 표현하고 실천에 옮기는 과정에서 자존감이 회복되고, 삶의 주도권을 되찾을 수 있다.




사실, 하루를 온전히 쉬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이 많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안하게 느껴지고, 쉼이 곧 게으름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머릿속은 해야 할 일들로 가득하고, 잠시 멈추는 순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스스로에게 익숙해져 있다.


하지만 진짜 쉰다는 것은 단순한 휴식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그것은 나를 돌보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이다. 어떤 일이든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나를 위한 시간을 의식적으로 가져보는 것이 이 여정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바쁜 일상 속에서 하루의 작은 조각이라도 온전히 나 자신을 위한 순간으로 남겨두는 것, 그것이야말로 자기 돌봄의 첫걸음이다. 스스로에게 행복을 허락하는 용기는 이렇게 점차적으로 길러진다. 작은 즐거움을 누리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행복을 느낄 자격이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이는 부모의 조종과 통제로부터 벗어나 자신의 욕구와 감정을 존중하는 첫걸음이다.



잃어버린 기쁨이 돌아오면 삶은 다채로워진다. 삶은 여전히 녹록지 않고 슬픔이나 분노가 완전히 사라지진 않지만, 그 틈마다 작은 행복을 발견할 여유가 생긴다. 새로운 취미를 찾고, 잊고 지냈던 꿈을 다시 떠올리면서 삶의 다양한 색채가 채워지기 시작한다. 무의미하다고 여겼던 사소한 순간들이 특별하게 다가오고, 작은 성취와 기쁨이 쌓이며 점차 자존감이 회복된다.


이처럼 ‘기쁨’은 상처받은 내면이 스스로 회복하는 데 중요한 자원이다. 기쁨은 그저 감정적 반응이 아니라, 자신을 인정하고 사랑하는 힘의 원천이며, 삶을 지속하는 에너지를 제공한다. 소소한 즐거움을 경험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기쁨을 느끼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쌓이면, 그 감정은 순간적 만족을 넘어 삶을 지탱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는 억눌려 있던 내면의 욕구를 해방시키고,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계기가 된다. 기쁨은 고통을 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와 공존하는 법을 배우고 삶을 더 풍요롭게 만들 수 있도록 돕는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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