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이야기로 바꾸다

Narrative Therapy, 서사화

by Mia 이미아

어릴 적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나르시시스트 부모나 가족 관계에서 받은 상처는 의지만으로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이러한 아픔은 오랜 시간 내면 깊숙이 자리 잡아, 의식하지 않아도 삶 곳곳에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나 그 고통을 혼자 간직하기보다 글쓰기, 예술, 혹은 신뢰할 수 있는 이들과의 대화를 통해 풀어내면 예상치 못한 위로와 해방감을 얻을 수 있다. 표현하는 순간, 상처는 더 이상 나를 가두는 굴레가 아니라, 치유와 성장의 과정으로 전환될 수 있다.


고통을 표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것이 겉으로 드러난 과거의 상처나 아픔이 아니라, 의미를 지닌 이야기로 변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경험을 외부에 드러내는 것은 스스로 그 상흔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재해석할 기회를 제공한다. "이것은 내가 살아온 이야기다"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고통은 더 이상 숨겨야 할 것이 아니라, 치유와 성장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우리는 과거의 상처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그것을 성장과 회복의 이야기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게 된다.




서사화는 자신의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 정리하는 과정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내러티브 테라피(Narrative Therapy)'라고 하며, 개인이 자신의 삶을 더욱 주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강력한 도구로 작용한다. 과거에 겪었던 혼란스러운 감정단편적인 기억들이 서사화 과정을 거치면서 보다 일관된 흐름을 갖게 되고, 그 안에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단순히 아픈 경험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배운 점을 찾아 성장과 극복의 이야기로 전환할 수 있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는 자신의 경험을 스스로 정의하고 이해하는 힘을 키울 수 있다. 과거의 아픔을 되짚으며 반복되는 패턴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배운 점을 정리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구체적으로 설정하게 된다. 이제는 흩어진 고통의 조각들이 모여 하나의 의미 있는 성장 서사가 된다. 이는 자기 이해를 심화시키고, 상처로 인해 분리되었던 자아의 조각들을 하나로 연결하여 온전한 나를 형성하는 과정이 된다.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다. 글쓰기, 개인적인 일기, 동영상, 그림과 같은 창작 활동뿐만 아니라, 간단한 메모나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의 대화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반드시 전문적인 글쓰기를 할 필요는 없으며, 중요한 것은 "이것이 내가 겪은 일이며, 나는 이렇게 느꼈다"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표현하기 시작하면, 막연하고 혼란스러웠던 기억들이 점차 구체적인 형태를 띠며 정리된다. 이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경험을 의미 있는 이야기로 전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특히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과의 연결은 치유 과정에서 강력한 동기가 된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피드백을 듣거나, 누군가가 "네 이야기에서 큰 위로를 받았다"라고 말할 때, 그동안 혼자 짊어졌다고 느꼈던 상처가 더 이상 나만의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공감의 경험은 아픔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자신의 이야기가 타인에게 힘이 되고, 다른 이들의 경험을 통해 위안을 받을 때, 상처는 단순한 아픔이 아니라 성장의 자양분이 될 수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내 고통이 남에게 힘이 될 수도 있구나"라는 깨달음은 자신의 경험을 가치 있게 재정립할 기회를 제공하며, 이를 통해 '피해자'를 넘어 '생존자', 나아가 '치유자'로서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서사화 작업은 스스로에게도 치유의 기회를 제공한다.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무의식에 깊이 묻혀 있던 감정과 기억들이 서서히 떠오르고, 잊고 지내려 했던 순간들이 다시 재구성된다. 과거의 아픔을 글로 풀어내는 과정에서 당시의 경험을 보다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힘이 생기며, 그때 느꼈던 감정들이 억압되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렇듯 자신의 경험을 표현하는 것은 단순히 감정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 내면의 상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스스로 다룰 수 있도록 돕는 과정이다. 고통에 언어를 부여하는 순간, 그 경험은 단순한 피해자의 상흔이나 과거의 무게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치유와 성장을 위한 중요한 동력이 된다. 표현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점차 자신의 이야기를 이해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의미와 방향을 찾을 기회를 얻게 된다.




상처를 이야기로 풀어낼 때 처음에는 죄책감두려움이 밀려올 수 있다. "부모가 알게 되면 어떻게 하지?" "주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같은 고민들이 머릿속을 맴돈다. 특히 가족의 반응에 대한 두려움은 아픔을 숨기려는 경향을 더욱 강화시킨다. 그러나 이는 누구에게나 자연스러운 우려이며, 이러한 감정을 인정하는 것이 첫 번째 단계다. 나 역시 이 이야기의 프롤로그 초안을 2년 전에 썼다. 그러니 결국 이 이야기를 세상에 꺼내놓기까지 2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셈이다. 무엇이 나를 망설이게 했을까?


2023년 봄, 어느 날 아침, 눈을 뜨는 동시에 머릿속에 글감이 떠올랐다. 나는 곧바로 책상 앞에 앉아 한 시간가량 글을 써 내려갔다. 프롤로그는 그렇게 꿈결처럼 순식간에 작성이 끝났다.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일인데, 글을 쓰는 동안 마음 한편이 조금 가벼워지는 듯했고, 자연스럽게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어졌다. 그러나 원가족의 그림자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비난의 목소리는 머릿속에서 반복되었고,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익숙한 불안이 따라왔다.



이야기를 시작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작게는 인터넷 익명 커뮤니티에 사연을 쓰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감정을 털어놓는 과정일 수 있지만, 이를 통해 비슷한 경험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연대를 형성할 수 있다. "너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피드백을 받는 것만으로도 아픔이 조금씩 가벼워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나중에는 좀 더 공개적인 플랫폼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거나, 가까운 지인들에게 직접 털어놓을 용기를 얻을 수도 있다.


나는 우울증과 트라우마 치료를 받으며, 지인들과 지지 그룹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조금씩 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어렵고 두려웠지만, 꾸준한 노력주변의 따뜻한 지지는 과거의 상처를 마주할 용기를 주었고, 결국 내 경험을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서사화는 상처받은 자아를 치유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전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던 감정들이 점차 수면 위로 올라오면서, '그때 나는 정말 힘들었구나', '그 상황에서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감당하기 어려웠구나'라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할 수 있게 된다. 자기 연민은 나약함이 아니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돌보는 데 필수적인 과정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스스로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을 공감하고 보듬으며, 한층 더 단단한 자아를 형성할 수 있다. 과거의 경험을 정리하고 받아들이면서, 그것이 단순한 고통이 아니라 현재의 나를 만들어 준 중요한 요소임을 깨닫게 된다. 이 과정은 스스로를 이해하고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삶의 방향을 보다 명확하게 설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살아오면서 가족을 떠올리며 그리워하거나 눈물을 흘린 적이 없다. 나에게 가족은 언제나 불안의 대상이었고, TV 드라마 속 화목한 가족들을 보면 그저 꾸며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여겼다. 그런데 지난 9월, 어떤 드라마 속 엄마의 모습을 보며 서럽게 울었다. '아, 나도 저런 사랑을 주는 엄마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순간, 나는 오랫동안 꼭꼭 숨겨져 있던 내면아이를 마주했다. 단지 부모의 사랑이 필요했던 작은 아이를.


몇 번 언급했지만, 나는 눈물이 잘 나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날은 너무 서럽게 울어서, 혹시 내가 자기 연민에 빠진 것은 아닐까 걱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눈물은 다시 말라버렸다.



글이 아니더라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무궁무진하다. 그림, 음악, 영상, 심지어 요리나 운동과 같은 창의적인 활동을 통해서도 내면을 드러내고 치유의 과정을 이어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표현의 형식이 아니라, '이 상처를 밖으로 꺼내 보겠다'결심'스스로를 치유하겠다'의지다. 아픔을 밖으로 표현하는 순간, 더 이상 그것이 나를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을 바라보고 조율할 수 있는 주체가 된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편, 상처를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은 부모나 가족을 비난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부모의 행동과 그로 인한 영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삶을 되찾기 위한 자기 탐구의 일부일 뿐이다. 아픔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데서 중요한 것은 과거의 고통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건강하게 소화하고 성장의 기회로 삼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과거의 가해자에 대한 복수나 조롱이 아니라, 자기 돌봄과 치유를 위한 중요한 수단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를 이해하고 치유하는 과정에서 억울함과 분노가 올라올 수 있지만, 그것에 휩쓸리기보다는 삶을 주체적으로 바라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내가 받은 상처를 어떻게 해석하고 성장의 기회로 삼을 것인가'이다. 이를 통해 과거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그 경험을 바탕으로 더욱 건강하고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 가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가 되어야 한다.




과거를 성찰하면서 내가 견뎌온 모든 과정을 인정하게 된다. 이는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련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된다. 서사화를 통해 얻은 새로운 시각은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데 도움을 주며, ‘이제는 다르게 살 수 있다’희망의 씨앗이 된다. 이러한 깨달음은 자기 확신을 강화하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결국 상처를 이야기로 바꾸는 과정은 나르시시스트 부모에게 빼앗겼던 목소리를 되찾고,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여정이다. 과거에는 침묵하며 참기만 했던 내가 이제는 삶의 주체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이 과정은 단순히 고통을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픔 속에서 성장의 의미를 찾아가는 길이다. 나는 지금 매일 글을 발행하면서 여러분과 함께 그 여정을 걷고 있다.


글작가라고 하기엔 부족한 사람이 매일 연재를 결심한 이유는, 이 과정이 아프고 어려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고통은 짧게, 결과는 빨리 내는 것이 나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매일 한 편의 에피소드를 토해내듯이 글로 쏟아내고 있다. 마음 깊은 곳에 쌓여 있던 감정들이 문장을 통해 터져 나오고,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감정들이 순간순간 보이는 것 같다.



우리는 지금까지 상처를 품은 채 어떻게 삶을 지속할 수 있는지, 독성 관계와 거리를 두고, 나의 기쁨을 되찾고, 자기 돌봄을 실천하는 방법을 살펴보았다. 이제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정의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계획을 세우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 이어지는 이야기에서는 이러한 여정의 다음 단계, 즉 과거를 넘어 현실의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는 방법과 새로운 시작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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