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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돌본다

아무도 대신 살아줄 수 없는 몸, 이어지지 않는 진료

by Mia 이미아

이름 없는 질환과의 고단한 공존 속에서 가장 먼저 깨닫는 사실은, 결국 아무도 내 몸을 대신 살아줄 수 없다는 것이다. 가까운 사람이라도 내 통증을 대신 느끼거나 피로를 나눠 가질 수는 없다.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지만, 회복과 생존의 중심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그래서 나는 내가 나를 돌보는 법을 배워야 했다.


나를 돌본다는 건 거창한 일이 아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오늘의 컨디션을 스스로 점검하고, 피로가 쌓여 있을 때 일정 하나를 덜어내는 용기를 내는 일이다. 약을 챙겨 먹고, 충분히 쉬며, 무리하지 않기 위한 멈춤을 선택하는 것. 몸을 쉬게 하고, 감정을 받아들이며, 스스로를 비난하지 않는 태도.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 않다. 특히 외부의 지지가 부족한 사람에게 ‘자기 비난을 멈추는 일’은 가장 어려운 돌봄이다.


무리해서 외출을 감행한 날, 반나절은 괜찮았지만 이후 며칠간은 일어나지 못했다. 아프지 않은 척, 괜찮은 척했던 시간이 지나고 나면 더 깊은 통증과 피로가 밀려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선택은 나를 위한 것이었는가?" 그렇다, 나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 그러나 그 뒤로 며칠을 고통 속에서 보내고 나면, 나는 다시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과연 이 선택은 나에게 책임감 있는 행동이었는가. 그렇게 자책의 고리는 반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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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부터 시작된 불명열과 통증, 기절하듯 잠드는 피로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어릴 적부터 몸이 약했던 나는 대부분의 증상을 신경성으로 단정 짓는 진료 속에서 자라며, 거의 모든 통증을 혼자 견디는 법을 배워야 했다. 실망이 쌓인 끝에 14년 가까이 병원에 가지 않았고, 다시 병원을 찾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2023년 말부터 각종 검사와 CT, MRI 촬영을 했지만 진료는 이어지지 않았다. 설명은 점점 단정적으로 변했고, 결국 1년 전 받은 진단마저 “그럴 리 없다”는 말로 부정당했다. 몸은 그대로인데, 의사의 말만 바뀌었다. 결국 나는 증상을 기록하고 정리하며 내 몸의 이야기를 직접 읽어가기 시작했다.


걷기 힘든 통증, 배뇨 장애와 자율신경계 이상, S1 낭종의 해부학적 연관성 — 그 모든 단서들을 스스로 이어 붙였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사실은 명확했다. 누군가의 판단 보다 내 몸의 말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다. 나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 자신이었다.


그리고 1년 넘게 병원을 전전하며 절감한 건, 의사의 진단이 결코 절대적일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떤 의사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기보다 감당하기 어려운 환자를 조용히 외면한다. 환자의 임상 증상보다 자신의 판단을 더 신뢰하고, 설명되지 않는 증상 앞에서는 시선을 돌린다. 그럴 때 환자는 의학의 한계와 무관심 사이에서, 설명되지 않는 고통을 끌어안은 채 홀로 남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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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점은, 최근 AI 기술의 발전으로 의료 기록을 분석하고 의학 정보를 교차 검증하는 일이 점점 쉬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의사의 모순된 설명을 들은 후, 나는 병원에서 받은 진료 기록 사본을 기반으로 AI 도구의 도움을 받아 내 몸의 변화를 다시 분석했다.


최근 가장 큰 쟁점은 S1 부위의 척수 낭종이 자율신경계 증상과 배뇨 기능 장애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의사들은 이 둘을 별개의 문제로 보려 하지만, 내 MRI 영상과 임상 증상은 분명한 연관성을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여러 AI 툴을 통해 최신 의학 논문과 임상 사례를 교차 검증하고, 증상 발생 시점의 검사 결과와 영상 소견을 비교했다. 그렇게 다양한 데이터를 종합해 살펴본 결과, 척수낭종의 위치와 자율신경계 증상이 구조적으로 무관하지 않다는 합리적 근거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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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하루가 아니라 ‘시간 단위’로 살아간다. 앉아 있을 수 있는 시간, 외출 후 필요한 회복일, 감당 가능한 약속의 양을 세심하게 나누며 하루를 구성한다. 운이 좋으면 하루에 두 시간 정도 일할 수 있다. 누군가의 기준으로는 부족한 삶일 수 있지만, 내게는 충분히 치열하고 값진 하루다.


그렇기에 나는 우리 사회에 제안하고 싶다. 기능에 따른 보장 제도, 즉 기능기반 보장제도가 필요하다. 하루에 얼마나 앉아 있을 수 있는지, 얼마나 자주 쉬어야 하는지, 정기적인 스케줄을 유지할 수 있는지, 시간 제약 없는 일을 선택한 것이 자율인지 생계 때문인지, 그리고 실제 일상 속 고통이 어느 정도인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사회적 안전망이 절실하다. 제도는 통계가 아니라, 사람의 존재를 기준으로 설계되어야 한다.


나는 현재 외출할 때 휠체어가 반드시 필요하지만, 내 증상을 이해하고 진료를 이어갈 의사가 없기에 보장구 처방조차 받지 못하고 있다. 병원과 병원 사이를 떠돌며, 마치 폭탄 돌리기의 마지막에 남은 사람처럼 느껴진다.


의사의 말이 절대적 판단으로 작동하는 현실 속에서, 어떤 의사는 감당하지 못하는 환자를 조용히 밀어내고 외면한다. 환자의 고통보다 자신의 진단이 옳다는 확신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그럴 때 환자는 증명의 책임을 떠안은 채, 고통과 혼란 속에 남겨진다.


나는 병명이 없지만 내 몸은 아프다. 수치는 정상이지만 고통은 실재한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존재한다. 사회가 그 존재를 인정하지 않더라도, 나를 스스로 돌보는 일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조건이다. 결국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보장구 처방전'은 장애인이나 신체 기능이 저하된 환자가 휠체어나 보조기기 등 보장구를 건강보험 또는 의료급여를 통해 지원받기 위해 전문의로부터 발급받는 공식 문서입니다. 이 처방전은 환자의 상태에 맞는 보장구의 필요성을 의학적으로 확인하고, 해당 보장구의 구입 및 급여 신청을 위한 필수 서류입니다.

[주요 보장구 처방전 발급 대상 및 품목]
-대상: 장애인복지법에 따라 등록된 장애인, 건강보험 가입자 또는 피부양자, 의료급여 수급자 등
-주요 품목: 전동/수동 휠체어, 전동스쿠터, 이동식 전동리프트, 욕창 매트리스, 자세보조용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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