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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시간에 맞춰 사는 법

내부의 시계

by Mia 이미아

오늘은 오전 10시 30분, 어제는 9시, 또 어떤 날은 오후 1시. 알람 없이 깨어나는 시간은 매일 다르다. 누군가에겐 불규칙한 생활처럼 보이겠지만, 내 몸에는 나름의 시계가 있다. 그 시계는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몸이 허락하는 만큼만 작동한다.


억지로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무너지고, 무너진 하루는 며칠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그 시계를 거슬러 잠을 참거나 억지로 깨어 있으면, 후폭풍이 몰아닥친다. 그래서 나는 내 몸의 시간을 먼저 읽는다. 통증과 회복, 피로의 파도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내 몸의 시간을 먼저 읽어야 한다. 그건 일상을 설계하는 일이고, 삶을 견뎌내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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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계획대로 살기’가 목표였다. 달력에 일정이 빼곡했고, 하루를 분 단위로 나눴다. 계획을 지키지 못하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나를 사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압박했고, 자주 무너지는 몸 때문에 일을 할 수 있을 때 남들보다 몇 배 더 몰아서 해내려 애썼다. 그러다 이제는 몸이 완전히 파업을 해버린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내 몸에 맞춰 살기’가 기준이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먼저 몸을 살핀다. 오늘은 괜찮은지, 어디가 무거운지, 어제의 여파가 남아 있는지. 그에 따라 움직임을 정한다. 지금 일어날지, 더 누워 있을지, 외출이 가능한지, 사람을 만날 수 있는지. 매일 다르고, 그래서 매일 나를 새로 조정한다. 예측 불가능한 몸의 시계를 따라가며 삶을 정돈하는 게 지금 나의 가장 큰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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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내 몸의 상태를 부정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도 시간이 오래 걸렸다. 고통과 통증조차 부정하고 참아내며, 내가 전처럼 자유롭게 걷지 못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1년이 걸렸다.


내 상태는 내가 눈치채기 힘들게 수년, 혹은 십수 년에 걸쳐 서서히 나빠졌다.


언젠가부터 걸음이 느려졌고,
언젠가부터 잠이 많아졌고,
언젠가부터 설거지를 하면 허리가 너무 아파서 식기세척기를 샀고,
언젠가부터 양치와 세수 중에도 서 있기가 힘들어서 욕실에 스툴을 들여놓았다.
그리고 지금은 외출할 때 휠체어가 필요하다.




작년 봄, 허리와 다리 통증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가 짧은 거리를 걷고도 극심한 통증으로 주저앉았다. 그날의 고통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부터 통증은 일상이 되었지만, 그로부터 수개월이 지나서야 신경외과를 찾았다. 병원 문턱을 넘기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렸고, 휠체어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사실은 걷는 게 너무 힘들어 휠체어를 검색해보기도 했었다. 하지만 병명이 없었고, 병원에서는 큰 이상은 없다고 했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사회적 시선이 내 고통을 덮었고, 나 스스로도 내 고통을 의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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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에는 남편과 함께 상암에서 열린 TV토론 현장에 다녀왔다. 이번엔 보건소에서 대여한 휠체어가 있었다. 그래서 걷지 않아도 됐고, 나의 외출은 훨씬 가벼웠다. 다음날 다리가 붓지도 않았고, 평소 주로 병원 진료를 위해 다녀오는 외출 후와 비교하면 피로감도 훨씬 적었다.


가끔은 욕심이 앞선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고 움직였다가 며칠을 앓기도 한다. 여전히 내 몸의 시계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이제는 최소한 무시하지는 않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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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시간은 세상의 시계와 다르게 흐른다. 세상의 속도가 나를 재촉해도, 나는 내 속도로 하루를 맞이한다.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나를 지켜야 하기 때문이다.


내가 사는 하루는 타인의 기준으로 보면 유예된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분명히 살아낸 시간이다. 나만의 시계를 조율하며 살아가는 이 감각은, 어쩌면 단지 아픈 사람만의 것이 아니라 창작을 하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삶의 기술일지도 모른다.


내가 쓰는 이 문장들도, 바로 그 시계 속에서 나온다. 몸이 허락한 시간, 정신이 잠깐씩 깨어 있는 틈, 감정이 정돈되는 흐름을 따라. 어느 날은 다 썼다가도 저장을 못 하고 꺼버리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한 문장을 쓰고 며칠을 묵히기도 한다. 기록할 힘이 없어 머릿속에서만 맴돌다가 사라지는 문장들도 있다. 그렇게 천천히, 조각조각 나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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