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울증이라고?

"선생님, 저는 슬프지 않은데요?"

by Mia 이미아

처음 중증 우울장애와 트라우마 진단을 받았을 때, 나는 관성처럼 내가 열심히만 하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관성이 내 우울증에 큰 지분을 갖고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나는 오랫동안 몸을 가누지 못하고 시도 때도 없이 잠을 잤다. 누군가와 만나서 이야기하는 중에도 잠이 쏟아졌다. 기면증은 아니었지만 셧다운 되는듯한 몸으로 간신히 버티기만 했다. 해야 할 일들이 많은데, 마치 누군가 손을 묶어 놓은 것처럼 움직여지지 않아서 뭐라도 하려면 기를 쓰고 해야만 했다. 2021년 여름, ‘이대로는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라는 위기감에 시에서 운영하는 정신건강센터를 찾아갔다. 어디서 들어본 ‘번아웃’ 같은 거겠지. 상담만 조금 받으면 다시 일에 매진할 수 있겠지 싶었다.

그러나 센터에서 한 시간 넘게 문진과 상담을 하며 상담 선생님은 내가 우울증이라고 했다. ‘선생님, 저는 슬프지 않은데요?’라고 말하고는, 정작 내게 전문의의 도움이 시급하다고 했을 때는 펑펑 울어버렸다. 내가 그 고약한 사람들과 닮았을까 봐 겁이 났다. 그들과 같은 인간이 되고 싶지 않아서 더 열심히 살았는데. 사실 우울증이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당시엔 내가 최악의 상황이라 인지능력도 크게 떨어져 있었다. 원래도 잘 우는 편은 아니었는데, 그 후론 울고 싶어도 눈물이 나지 않는다.


생모가 실제로 우울증 진단을 받은 적은 없었지만, 함께 지낸 나는 그녀에게 분명히 무언가 잘못된 부분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악성 나르시시스트였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내 삶과 완전히 분리된 사람이라 과거 시제로 표현한다.)




내 몸은 약에 극도로 예민해서 거의 모든 약에 부작용이 있다. 그래서 수개월 동안 매주 병원을 오가며 여러 약을 테스트해보고, 가장 부작용이 적은 약을 최소 용량으로 복용 중이다. 심리 상담은 비용 부담이 컸다. 대신 시에서 운영하는 센터와 지원 프로그램을 최대한 활용했다. 의사와 상담사의 권유대로 매일 햇빛을 보고 가벼운 산책을 하려 했지만, 2주도 채 못 되어 몸이 더 이상 버티지 못했다. 이후 몇 달은 거의 누워 지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내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나는 참 부단히 ‘노오력’ 했었다. 한없이 무기력해져 ‘나는 아무 가치도 없고, 잠만 자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생각이 떠오르는 걸 극복하려고 매일 일지를 썼다. (이것도 결국 체력이 바닥나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지만) 다시 들춰본 그 일지에는 아침 8시부터 새벽 1~2시까지 빼곡한 메모가 남아 있다. 어떤 강의를 들었는지, 무엇을 배웠는지, ‘2021년 11월 월간 다이어리’ 한 구석에는 아주 야무진 실행 리스트도 적혀 있었다.


-무기력증, 우울증 이겨내기-

8~9시간 규칙적인 수면으로 개운한 아침 맞기

규칙적인 루틴 지키기

좋아하는 것, 위시리스트 작성하기 = 행복 배터리 충전

엔진이 꺼지지 않을 만큼이라도 조금씩 충전해 주기

무조건 성공할 수밖에 없는 작은 목표부터 시작해 작은 성취감 누리기

인간의 뇌는 ‘크기’보다 ‘빈도’를 기억한다



나는 내 삶 전반을 통해, ‘무조건 열심히만 한다고 모든 게 해결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반복해서 깨닫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의 기록과 노력들이 언젠가는 조금 더 나아진 나로 이어질 거라는 희망을 여전히 품고 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겐, 지키고 싶은 ‘진짜 가족’이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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