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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은영 May 09. 2020

58세 퇴직자의 새로운 도전

나, 지금 준비되었다.

나는 베이비부머 세대의 마지막 끝자락, 1963년생이다. “이제는 어른이야!”라고 생각했었던 열아홉 살 소녀는 고등학교 3학년 여름방학이 끝나자마자 은행에 취업했다. 그리고 대한민국의 숱한 소용돌이 속에서 대개는 침묵하고 때로는 항거하며 그렇게 40년을 보냈고, 그토록 꿈에 그리던 자유가 있을 것 같은 퇴직을 2019년 12월 31일에 맞이했다. 

퇴직 전 1년 동안 은행을 나서는 연습을 이래저래 했지만, 마지막 날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 조금 일찍 나갈까? 휴가를 낼까? 우스갯소리로 떠들었듯 야근을 해볼까? 그러나 마지막 날 나는 평소처럼 정시에 퇴근을 했다. 용감하게 가방을 들고 내 방을 나오는데 “그래도 한번만 더”라며 뒤가 돌아다봐졌다. “이제 마지막이군!” 그리고 직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은행 문을 나서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잘 설명은 되지 않는다. 후련도 했으련만. 그러나 지금도 먹먹했던 그때의 가슴은 고스란히 남아 가끔 나를 울린다. 누군가는 말한다. “그 정도 다녔으면 됐지. 지겹지도 않아?” 나는 혼자서 중얼거린다. “아니”라고.     

그렇게 나는 세상으로 나왔다. 세상의 법칙을 하나씩 하나씩 익혀나갔다. 첫째 달은 나름 바빴다. 퇴직금 수령을 비롯한 40년 은행생활 정리와 실업급여, 의료보험 등 새로운 일들은 생소하고 번잡했다. 그리고 둘째 달. 퇴직 전부터 하던 일들이 있었다. 금융에 관한 방송도 했고, 경제 교육을 하러 여기저기 다니기도 했다. 그래서 퇴직 후에도 이 일들로 한가하지는 않을 듯했다. 그런데 코로나가 덮쳤고 교육시장은 얼어붙었다. 모든 것이 정지였다. 모두가 집으로 집으로.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일이 없는 것은 꼭 코로나 때문만은 아닐수도, 그 동안은 직장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토록 원했던 자유가 이런 거였나? 생각지도 않던 자유가 오롯이 주어졌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거듭된 현실에서 겨우 눈을 뜨고, 그동안 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하기 시작했다. 출근을 하듯 아침 7시부터 1시간 운동, 2시간 책 읽기, 2시간 영어공부, 1시간 점심 먹고, 1시간 기타 치고, 3시간 그림을 그렸다. 그러면 어언 오후 6시. 한 달을 쉼 없이 보내니, 나름 하루하루의 시간들이 쌓여가는 것 같긴 했다. 그런데 뭔지 모를 허함과 바쁜 듯 내달리는 창밖의 자동차들은 자꾸 나에게 물음을 던졌다. “너 뭐하니? 행복하니?”라고. “뭐라고? 뭐하냐고? 행복하냐고? 모르겠다. 내가 지금 뭘 하는지도..."  

이렇게 살 순 없기에 나는 나와 마주 앉았다. 진지하게. 

“너는 누구니? 누가 보고 싶니? 무엇을 좋아하니? 하고 싶은 것은? 갖고 싶은 것은? 그리고 떨쳐 버리고 싶은 것들은 무엇이니?..........” 그렇게 날 밤을 새며 정리한 생각들을 행동으로 옮겼다.     

가장 먼저 손녀를 보러 갔다. 이제 태어 난지 11달. 기는 것도, 서는 것도, 물건을 잡는 것도 엉성했다. 한시도 쉬지 않고 땀을 뻘뻘 흘리며 똑같은 동작들을 반복하다가는, 스스로가 대견하기라도 한 듯 자랑스러운 웃음을 보였다. 이 보다 더한 소중함이 어디에 있겠는가! 동작 하나를 배우기 위해 온갖 애를 쓰며 하루를 치열하게 보내는 손녀를 보고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새로운 시작에 엄청난 용기를 낼 수 있었다. 모든 것이 서툰 이 아이가 20살, 30살이 되면, 무엇을 할 수 있는 어떤 어른이 되어 있을까? 잘 커 있겠지? 그때쯤 나는? 그래! 다시 새 인생을 시작해보자. 손녀처럼. 아직 남은 삶이 너무 길지 않은가?  

이력서를 새로 썼다. 강의 주제도 5종류로 분류하여 정리했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제대로 된 강의 주제도 없었다. 다음 주 라디오 방송 내용은 10번은 넘게 수정에 수정을 거듭했다. 봐도 봐도 수정해야 할 것들이 나오는데, 그동안은 어떻게 했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블로그도 재정비해야겠다. 나를 알려야 불러 줄 것 아닌가! 책장을 정리해야겠다. 이제야 보인다. 뒤죽박죽인 책들이. 강의 내용을 만들려면 이 책들이 보물이다. “할 일이 너무 많네. 큰일이다.”  이제 강의 요청이 오면 “이력서와 강의 주제를 보내 드립니다. 다른 내용이 필요하시면 말씀해 주세요”라고 답할 것이다. 프로답게. 느닷없던 코로나가 준비된 시작법을 알려 준 것 같다. 

노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나는, 일로 삶을 채워야 사는 것 같나 보다. 그렇지만 경쟁이 숙명인 것 마냥 전쟁인 듯 뛰어다녔던 그때와는 달리, 이제는 함께 어울리며 쫓기지 않는 삶을 살 것이다. 그동안 배우고 익힌 것을 나눌 것이다. 금융과 경제를 만나기에 사각지대인 곳들도 찾아다닐 것이다. 그렇다. 어릴 때 꿈이 선생님이었지! 그렇게 제2의 꿈을 이루는 거다. “만만하지 않을 텐데!”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좌절을 딛고 일어서는 것쯤은 이골이 났는걸. 그리고 무엇이 두려우랴. 58년을 살아낸 지혜와 용기가 있는데. 나, 지금 준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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