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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경 Jul 18. 2024

취준생의 악몽.

잔인한 꿈을 꿨습니다.

다소 폭력적인 부분이 묘사되어 있으니 원치 않으시는 분들은 읽지 않으시는 것을 권장드립니다.












한 쪽 귀가 먹히는 꿈을 꿨다.


그 세계에서는 한 쪽 귀를 없애는 것이 관행이었고 특정 시기가 되면 어떤 방으로 저절로 불려갔다. 나 또한 이 순간이 올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리고 꿈 속에서 떨리는 마음으로 수술실 같은 곳에 앉았다. 의사선생님처럼 보이는 젊은 남자가 내 뒤에 서 있었고, 나는 미용실에 앉아있듯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다만 내 귀가 계속 두 개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모두가 귀 한 쪽으로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지만 이 고통을 굳이 겪어나가야 할까 고민이 되기도 했다. 선생님께 계속 너무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리니 선생님은 시간을 가지라고 하셨다. 천천히 마음을 정리해보라고. 눈물이 울멍울멍 올라왔다. 목구멍에 무언가 계속 차오를 정도로 가슴이 답답하고 아려왔다. '아니야. 모두가 다 겪어나간건데 나라고 못할 리 없지.' 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계속 다잡으려고 했다. 나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귀가 찢어져나가는 고통은 그 한 순간일뿐. 딱 눈감고 한 순간만 참으면 되는건데 왜 그걸 못하는 건지. 내 스스로가 참 나약하게 느껴졌다. 쿵쾅쿵쾅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방안의 모두가 나와 내 결정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려주는 그들을 뒤로하고 수술실 밖으로 뛰쳐나가야하나, 혹시 수술을 받다가 내가 비명을 지르면 어떻게 되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선생님께 마취를 해주실 수 있냐고 묻자, 이 세계에 그런 것은 없단다. 차라리 고통을 멈추고 결론만 낼 수 있다면 좋을텐데. 그리고는 모르는 척 선생님께 마취가 가능한지 한 번 더 물었었다. 두번에서 세번까지 물었다. 하지만 대답은 계속 같았다. 마취없이 인간의 이빨로 귀를 뜯겨야 한다고.


결국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선생님, 저 할게요.'


그러자 의사선생님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고 나는 곧장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눈에 힘을 많이 줘서 핏줄이 다 느껴질 정도로. 절대 눈을 뜨고 보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눈꺼풀에 온 힘을 실었다. 뒤에서 부시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결전의 시간이 다가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제발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온 몸의 감각이 깨어나는 듯했다. 눈을 감고 있어서 그런지 소리도 더 크게 들렸다. 곧 사라질 왼쪽 귀에서 특히 어떤 소리가 크게 들렸다. 한순간 고요해진 방 안에서는 아주 작은 소리마저도 크게 들리기 마련이다. 그렇게 고요한 와중에 의사선생님의 몸짓만이 부시럭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리고 일순간, 무언가 아주 큰 것이 입을 벌리는 듯 웅웅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쩌어어어억. 하는 소리가 났다. 등 뒤에서 아주 커다랗게 구멍이 난 무언가가 나를 향해 오고 있었다. 내 귀를 향해 천천히 다가오고 있었다. 내 왼쪽 귀에 그것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침 소리 같은 것도 들린다. 쩌어어억 벌어지면서 침이 위에서 아래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고였다가 움직이는 쩝쩝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한 순간 들리는 아그작 하고 무언가 깨무는 듯한 소리. 내 귀인가. 과자처럼 바사삭하고 떨어져나간 것이 계속해서 씹히고 있었다. 아그작 아그작. 부스스슷. 부스러기 같은 것이 떨어지는 소리도 들렸다. 드디어 끝났나보다. 드디어. 내 왼쪽 귀가 떨어졌나보다.


수술이 끝나고나서는 후련한 마음이 들 줄 알았는데 너무나도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나도 이제 다른 사람들과 같아졌는데, 오히려 나를 영영 잃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눈물이 얕게 고여 온 세상이 흐리게 보였다. 참으로 뒤숭숭한 꿈을 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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