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 이미지: Photo by Antônia Felipe on Unsplash
14시라고도 한다. 디지털이든 아날로그든, 14시 알림은 하루가 시작된 지 14시간이 됐다는 자명(自鳴)이다. 자명종은 '스스로 울리는 쇠북(自 스스로 자; 鳴 울 명; 鐘 쇠북 종)'이다. 쇠북이 의미였다는 것이 이채다. 하루를 시작하고 14시간. 여러 번 생각했지만, 인간에게 하루란 0시부터 자정까지가 아닐지도 모른다. 우리는 농사일을 하지 않는 책상물림이니 새로운 시간 관념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잠들면 하루를 끝나고 잠이 깨면 하루가 시작된다. 자는 동안은 시간이 없다. 그렇다고 앞으로만 나아가는 선형적 존재에서 벗어날 수는 없겠지만.
오후 2시는 머리를 건강하게 할 시간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두뇌를 잠시 쉬게 하자는 말이다. 일상에서 잠시 벗어나 뇌가 평소와 다른 일을 하게 하자는 말이다. 뇌를 건강하게 유지하는 방법으로, 평소와 다른 경로의 출퇴근, 평소와 다른 스타일, 평소와 다른 일을 하라는 권고를 여러번 읽었다. 그렇게 하면 뇌의 긴장도가 올라간다고 한다. 마치, 심장 박동수를 최대치의 80%까지 올리는 운동은 반복했을 때, 심장 및 혈관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과 유사하다 할 수 있다. 뇌의 젊음을 유지하는 권고는 뇌의 긴장도를 높여 활발히 움직일 계기를 만드는 것이다.
오후에 회의가 있어서 정신없다고 미간에 내 천(川)자를 그리지 말자. 좋다는 것은 한번 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또 일을 만드는 느낌이 든다면, 회의 준비를 하고 회의실까지 이동하는 사잇시간을 이용해 보는 것은 어떤가? 결코 일에 일을 더하는 결과는 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엘리베이터 프레젠테이션이란 기법도 있지 않나? 엘리베이터에 타서 내릴 때까지의 시간 안에 상대를 설득한다는 전설의 프레젠테이션. 멋지게 들리지만 쉽지 않다. 하지만 딴생각은 할 수 있다.
요즘 듣는 음악은 어떤 음악인가 생각해 보자. 매일 몇 건씩 올라오는 플레이리스트에 정신은 없겠지만. 요즘 트렌드 아닌가? 최신, 인기 음악을 맨 앞에 보여주는 것에서, 인공지능(AI; Artificial Intelligence)에 기반해 사용자 취향에 맞는 음악을 주제(theme)를 잡고 재생 목록으로 구성해 추천하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Spotify 국내 출시 이후 더 가속화된 느낌이다.
오후에 들어 컨디션은 어떤가? 오전까지 이어지던 숙취는 풀렸나? 러닝 머신 혹은 웨이트 트레이닝으로 뭉친 근육은 좀 풀렸나? 아무래도 지하 약국에 가서 근육 이완제라도 사 먹어야 할까? 운동은 건강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니, 이렇게 아프지 않으면 좋을 텐데. 어떤 방법이 있을까 생각해 보자.
요즘 남편이 내 요리 솜씨에 감동하지 않는다. 이럴 때, ‘사랑이 식은 거 아닐까’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자. 감동이 줄어드는 이유, 즉, 감동 표현이 줄어드는 이유는 조리 솜씨의 하락이라기보다 맞벌이로 서로 바빠 반복된 메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오히려 남편의 요리 솜씨는 어떤가? 좀 나아졌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 뇌는, 느긋한 오후 2시 햇살 아래에서, 익숙한 업무에 침몰되지 않고 생기를 띄게 된다. 지금까지 베스트 셀러 매대나 온라인 서점 추천에서 밀던 주제는 아닐 것이다. 유사 주제의 일부로서 이야기된 적은 있을 것이다.
하필, 오후 2시를 이야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오후 2시, 내 주위를 잠시 살펴보자.
갑자기 깨달았는데, 나 혼자 책상에 앉아 있다. 오전의 일상을 마치고 점심을 먹고 차를 한잔할 때까지는 온라인 수업 받는 아이와 함께 였는데, 오후 일정에 들어가자 ‘혼자다’라는 생각이 든다. 아이는 방에 들어가 줌을 켜고 수업 중이고, 나는 오후 작업을 위해 책상에 앉아 있다. 그동안 알아채지 못한 상황이다. 생각을 떠올려보면, 이 시간은 언제나 혼자였던 것 같다.
오전 아이 수업 중에도 거실에는 나 혼자였는데. 그때는 혼자라고 느끼지 못했다. 잠자리를 정리하고, 식탁과 조리대를 닦고 정전기 포로 거실을 닦는다. 아침 식사 준비를 하고, 아이와 아침 식사를 한다. 설거지를 하는 것까진 매일 같다. 아이가 수업에 들어가고 건조대의 마른 빨래를 정리한다.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요즘, 건조해진 날씨에 하룻밤 사이 잘 말라 있다. 빨래가 아니라면 오전 작업에 들어간다. 오전에 택배가 오는 경우도 있다.
12:40쯤 아이의 점심시간이니 12시부터는 점심을 준비한다. 오전 작업은 1~2 시간 정도 집중했다. 이런 패턴이니, 오전에는 거실에 혼자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 모양이다.
오후 2시의 햇살을 가만히 본 적이 있나? 묘하게 나른하다. 유리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는 여름의 뜨거움도 가을의 선선함도 겨울의 매서움도 봄의 따스함도 묻어 있지 않다. 다만 여름엔 실내의 온도를 높이고 봄, 가을, 겨울엔 실내를 보다 따스하게 한다. 정오 직사광선이 끝나고 2시간 후의 햇살. 이를 나른함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묘하게 느긋하고 묘하게 풀어진 햇살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따스한 차를 피부로 마시는 것 같다.
오후의 손가락을 보자. 하루 시작의 의욕과 계획은 어느새 사라졌다. 아침 시작의 손가락에는 힘이 잔뜩 들어간다. 마치 키보드 버튼을 뚫기라고 할 것처럼 빠르고 힘차다. 점심을 먹고 오후 1시(13시). 포만감이 남아 있는 지금은 손가락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칼로리를 보충했는데 힘이 나질 않는다. 포만감은 섭식을 에너지로 바꾸고 있다는 신호 아닐까? 마우스로 자료를 넘기고 신문을 넘기고 검색 결과를 넘긴다. 마우스를 클릭하고 휠을 돌리는 정도가 딱 적당하다. 포만감이 서서히 사라지고 오전에 이어, 혹은 오후에 시작할 작업을 개시한다. 느긋한 햇살 탓인가? 허리의 힘이 빠지고 엉덩이는 의자 앞으로 나선다. 팔은 좀 더 펴진다. 오전엔 팔을 직각에 가깝게 당겨 키보드를 쳤는데, 오후엔 기댄 등 때문인지 많이 펴졌다. 초보운전에서 1년 경력의 운전자가 된 기분. 손목 혹은 그 위 부위를 지지점으로 해서 손가락이 움직인다. 마치, 고속도로를 계속 달리면 이성은 잦아들고 눈과 손과 발은 자동으로 움직이며 도로를 달리는 상태와 유사하다.
이렇게 익숙함에 침잠하는 정신을 깨우자는 말이다. 이대로 졸면 혼자 있더라도 없어 보인다. 분명히 일은 하고 있지만 진지함이 줄어들어 충실하지 않다. 차라리, 뇌를 쉬게 하는 것이 능률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되는 햇살의 느긋함을 명분으로 삼는다.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어제도, 오늘도 재미있지 않다. 매일 똑같은 일상에 뇌가 잠들고 있다. 이제 서른이라 철야 후 여파가 오래간다고 핑계를 댄다. 경력이 쌓이니 신입 때의 긴장감은 남아 있지 않다. 여유로워진 것이 아니라 심심해졌다.
오후 2시부터 4시, 새로운 재미를 찾는 시도로 철야, 야근을 피할 막판 도약을 노려야 하지 않을까? 내 얼굴에, 볼에 한가득 생기를 불어넣어야 하지 않을까? 잠들려는 뇌를 깨우고 자신을 돌아보고 더 나은 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타인의 부를 늘려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일을 잘하기 위해. 누군가에게 성과를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을 보람으로 충족하기 위해. 그래도 과실은 타인이 가져간다고 스스로 힘을 빼지 말자. 내가 선택한 일을 내가 하는 것뿐이다. 그 이상으로 의미를 확대하지 말자.
왜 이 회사를 선택했나? 왜 이 직업을 선택했나 하는 진지한 생각도 좋다.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새로운 힘을 내게 하지 않을까? 피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무작정 부딪히는 것만도 능사는 아니다. 일이 필요하다면 휴식도 필요하다. 긴장이 필요하다면 느긋함도 필요하다. 일과 귀가 후 일상 외에도 생각할 바가 많다. 그렇게 생각하자. 오후 2시의 느긋한 햇살을 명분으로 내세워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나를 새롭게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