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 제대로 된 1인분의 사람이 아니다

프란시스 하/노아 바움백 감독

‘프란시스 하’라는 제목을 처음 봤을 때, 그리고 영화 사이트 ‘왓챠’에서 이 영화에 ‘보고 싶어요’를 클릭할 때만 해도 난, 검색창을 찾았다. ‘프란시스 상’을 찾기 위해. 그런데 그것이 자기 집을 갖게 됐을 때 메모지에 적어 그것을 작게 잘라 우체통에 끼우려 했지만 Full name이 다 보이지 않아 너비에 맞게 접은 후 남은 글자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더구나, 이 영화를 보게 된 계기가 ‘나는 아직 제대로 된 1인분의 사람이 아니다(I’m not a real person yet)”라는 문구 때문이다. ㅆㅣㄴㅔ21(예전 표기대로 써 봤다) 김혜리 기자가 교보문고 사이트에서 보여준 ‘그녀가 사랑한 네 편의 영화들’에 쓰여 있던 대사였다.

배우 그레타 거윅의 ‘매기스 플랜’을 보고 이 영화를 본 것은, 여배우를 따라 나선 모양새는 아니었다. 난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에게 반하지 않는다. 연기에 반하고 반하면 더 보고 싶을 뿐이다. ‘매기스 플랜’에서도 난 배우 그레타에게 매료되지 않았다. 그녀의, 열연이 아닌 연기에 매료됐을 뿐이다.

프란시스 하를 보며, 요사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화두 중 하나가 매칭 된다 느꼈다. 최근 홍보되고 있는 서적들 중, 직장을 그만둔 사람들의 이야기가 보인다. 아마도 나를 포함하여 많은 회사원들은 현재 다니고 있는 직장, 혹은 그 속에서의 일에 만족을 못하고 있을 것이다. 왜 그렇게 추측하냐 하면, 매일 쏟아지는 일 장마, 야근, 철야, 이도 아니면 얼큰하게 취해 있는 사람은, 일을 통한 만족은 다락방에 던져두고 아침이니 출근하고 일 끝나니 퇴근하기 때문이다.

어릴 적부터 무용을 해 온 프란시스의 꿈은 정식 단원으로 무대에 오르는 것이다. 친구와 함께 살며 무대에 오를 날만 기다리는 프란시스. 그녀의 꿈은, 의사결정권자 혹은 의사결정자들의 기준에 맞지 않았는지 여러 번 좌절된다. 덕분에, 정식 단원이 되어 ‘제대로 된’ 급여를 받으면 하겠다던 모든 약속도 함께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그녀는 점점 더 가난해진다. 친구들, 아는 사람들, 혹은 우연한 기회를 빌어 이집 저집을 전전한다. 꿈을 잃은 마음은 날이 갈수록 무너져 내리고, 지갑은 더 비어 간다. 세금 정산을 받아 생긴 목돈이 있어도 카드가 정지되어, 돈이 생긴 날 한 턱 쏘기로 했던, 잠시 동안의 호기도 쓸쓸히 안갯 속으로 사라진다.

그녀가 댄서로 나오는 장면은 내가 보기엔 어울려 보이지 않았다. 겅중하게 큰 키에 넓은 어깨. 전혀 무용수들의 갈고 다듬어진 몸매가 아니었다. 친구들이 춤 한 번 추어 보라는 장면에서 보인 그녀의 춤은 왜 의사결정자들이 그녀를 무대의 일원으로 선택하지 않았는지 납득하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친절한 의사 결정자는, 일하던 직원의 출산 휴가 중 빈 자리를 그녀에게 권한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의 오래된 꿈의 자락을 힘겹게 잡고 있는 그녀에게는 받아들일 수 없는 제안이다. 사실, 잡아도 되는 제안 아닌가? 의사결정자의 설득대로, 사무직 일을 하면서 꿈을 이어나가도 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프란시스는 마치 사무직을 받아들이는 순간, 순백의 자신의 꿈에 원치 않던 잉크 한 방울이 떨어져 자신의 꿈이라 할 수 없다 판단하고는 제안을 거절하고 만다. 그리고 없는 살림에 파리 여행을 떠난다. 만나기로 한 사람은 연락이 되질 않고, 그녀는 하릴없이 파리를 걸어 다닌다. 파리의 고풍스러운 도시 정경에 한 번쯤은 눈이 가고 무너지고 바스러진 마음 한구석이 조금은 치유되길 바랐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 나이 27살에 다시 다니던 대학에서 임시직을 전전한다. 학생과 같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서서 행사 안내를 맡고, 서빙을 하고, 학교 최대 기부자의 뒤를 따르며 잔이 비면 와인을 따라주는 일을 한다. 그리고 행복하기만 하겠다 생각한 절친은 유산 후 후유증인지 약혼자와 공개적으로 대판 싸우고, 좁은 그녀의 기숙사 침대에 같이 누워 자신을 이야기한다, 상처가 더 클 것 같은 프란시스 앞에서. 사실 절친은 프란시스를 좋아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이 얼마나 엉망인지는 알지 못한다. 프란시스도 엉망이 되어 버린 친구에게 마냥 좋다고만 한다. 이런 암울함을 뒤로 하고 장면은 전환되어, 어느새 사무직 일을 하고 있는 그녀가 있다. 그리고 안무를 한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그녀의 모습이 나오고, 그녀가 집을 마련하는 장면이 나온다. 예의 이름이 다 표시되지도 않는 우체통 앞에서 자신의 집인 것을 표시하는 그녀가 보인다. 프란시스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용단 사무직이었고, 안무였다. 그것이 그녀의 빈곤을 해결을 했을 뿐만 아니라 그녀 이름의 집도 마련하게 했다.

꿈을 좇는 일은 세상 모든 사람이 가고자 하는 길일 것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냉철히 살펴보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이진 않다. 자신이 하고자 하는, 하고 싶어 하는 일이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완결과 완성을 통해 그 결과에 영향을 받는 이들과 결과를 낸 자신에게 좋은 일이진 않다. 이런 단정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멍하니 먼 산 바라보듯 자신의 꿈을 결정하는 이들에게 작은 종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이다. 자신이 잘 하는 일이 무엇인지, 자신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일이 과연 그것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을 충족하여 일에 대한 대가를 받을 수 있는 일인지 따져 보지 않는 이들에게 다시 생각해 보라 이야기하고 싶어서이다.

언젠가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긴 적이 있다. 사람은 거울처럼 자신을 비춰줄 반사판이 없으면, 남이 해서 잘 된 일을 자신이 해도 잘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람의 눈이 보지 못하는 것은 바로 자신뿐이다. 사람의 눈은 앞을 보게 만들어져 있지 자신을 바라보게 만들어져 있지 않다. 자신의 의지로 태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의지 없이 자신의 인생을 갖게 되고, 인생 위에 던져진다. 이런 태생의 비밀을 인지하지도 못하고 현실에 쫓겨 힘들게 산다. 그래서 행복하게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모두 바람을 이루진 못한다. 방향성이 잘못 되기도 하고 선택을 잘못 하기도 한다. 눈을 반개하고 앉아 발 앞의 땅을 보거나 눈을 감고 자신을 돌아보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을 알지 못하고 타인의 성공 사례에 홀랑 넘어가 버린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으니 항상 불편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텐가?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 그 일은 타인의 니즈를 충족하는 일이다. 사회에서 좋은 역할을 할 수 있는 일이다. 좋아하는 일은 아닐 수 있지만, 내가 낸 결과로 사회가 돌아가고 남들이 즐거워한다면 그것이 나의 일이다. 집중하여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는 일이라면 더욱 좋겠다.

요즘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 내가 허황된 생각으로 보내온 시간들, 그 돌이킬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해 반성하고 있다. 그리고 찾고 있다. 나와 타인의 니즈를 충족할 수 있는 일들 중, 내가 잘 하는 일은 무엇일까 하고. 내가 숙련되어 있든, 전문적인 교육은 받지 않았든,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하고 있다. 이것이 작은 시작이 되어, 얼마나 남았을진 모르지만, 남은 인생길은 꽃길이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