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날이 갈수록 넓어진다. 하지만 가끔, 아니 그보다 자주, 좁다.
Internet 윗넓이는 무한하다. 게임 위를 달려보면 알 수 있다.
Server 대수, Media의 Page 수로 보면 넓어 보이지 않다.
자주 세상이 좁아지는 이유는 매일 같은 것을 보기 때문이다. 알고리즘이 무엇을 제시하든 내 Click의 수가 늘지 않고 매번 유사한 범위 내에서 보기 때문이다.
이해는 理解로 구성되고, '사리를 분별하여 해석', '깨달아 앎', '잘 알아서 받아들임', '남의 사정을 잘 헤아려 너그러이 받아들임', '문화를 마음의 표현이라는 각도에서 그 뜻을 파악함'의 의미를 갖는다.
이해를 못 하면, 理解가 利害(이익과 손해를 아울러 이르는 말)나 貽害(남에게 해를 끼침)가 된다. 물론, 이해로 끝나면 그럴 리 없지만, 이해하고 행동을 한 순간, 理解, 利害, 貽害로 갈린다.
신화는 왜 그 모양일까?
신화가 발생했을 때 세상의 모든 원인을 '신' 혹은 '하늘' 혹은 '우월한 존재의 행동'으로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까? 당시 지구 인간의 판단 기준 점유율은 신이 100%였다. 표현 역시 당시의 문화다. 그걸 지금의 문화나 기준으로 판단하면 신화는 판타지가 된다. 신화 속 일은 있었던 일이다. 단지, 그것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곰과 범이 쑥과 마늘로 사람이 됐다는 것은 문장 그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당시 우월한 존재의 역량이 그걸 가능하게 했을 수 있지만, 그것을 사실로 인정하기에 근거가 없다.
과학과 수학이 발달하면서, 판단에 근거가 필요해졌다. 과학의 근거는 여러 명이 동일한 현상을 모두 본 경우다. 수학은 자(ruler)가 근거다. 정확히 거리의 도량형이 생기면서 수학의 근거는 자다.
이로써, 인간 판단 기준 점유율은 신과 과학/수학으로 나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정치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과학/수학의 점유율은 늘었다. 하지만, 과학/수학으로 판단할 수 없는 현상은 아직까지 신의 영역이다.
표현은 정련되고 섬세해졌다. 단어도 많아지고, 단어에 과학적 수학적 이성적 용어가 늘어났다. 이제 쑥과 마늘을 먹으며 자외선이 닿지 않는 곳에 일정 기간 거주하면, 곰과 범이 인간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다. 과학적으로 입증한 적도, 입증된 적도 없다.
내 판단 기준 점유율은 신이 몇 %, 과학/수학이 몇 % 인가? 사칙연산 외에 관심이 없더라도 말이다.
신의 %가 높다고 난 아직 부족 사회에 사는 것이 아니다.
과학/수학의 %가 높다고 미래 사회에 사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를 이해시킬 때 신을 혹은 과학/수학을 내세웠기 때문에 개인 안에서 어떤 점유율이 높은지 의미는 크지 않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넓어진다. 자주 좁다.
세상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동성연애를 죄악시하는 존재는 자연이 아니라 문화다.
백인 남성이 리더층의 다수를 차지하는 서구 사회는 그동안의 역사다. 축적의 결과이다.
앞으로 무엇을 축적해 나갈 것인가, 어떤 문화를 만들어갈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개인의 선택이다.
문화는 다수의 판단이다. 내가 문화에 주도권을 주지 않는 한 날 제어할 존재는 자신이다.
문화를 멀리한다고 피해가 있지 않다. 문화를 멀리하는 행동을 표현했을 때 문화의 잠을 깨운다.
이해 범위가 넓은 만큼 유연성은 비례적으로 증가한다.
세상은 날이 갈수록 넓어지고, 자주 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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