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도라의 상자에 왜 희망이 들어 있었을까?
더욱이, 그 희망은 판도라가 꺼내주었다.
희망은 다른 불행 요소들과 다르게 스스로 상자를 나서지 않았다.
왜 희망은 상자 속에 안주하고 있었을까?
첫 번째 질문에 대해 이야기를 할 때, 대부분의 청중은 이것을 떠올린다.
희망 고문
이루어지지 않아 마음을 괴롭히는 희망.
이룰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희망.
희망 고문은 불행의 요소이기에 부족함이 없다.
결국, 스스로 상자를 박차고 나온, 야망 가득한 불행 요소들과 다를 바가 없다.
희망은 불행 요소다.
희망의 상상은 달콤하다.
포만감에 팔다리의 힘이 풀린다.
희망의 상상은 지속된다.
희망이 주는 달콤함이 희망의 상상을 지속하는 원동력이다.
삶의 기쁨을 얻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 하나가, 희망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행동 없는 희망은 불행의 요소지만, 행동은 희망을 현실로 만든다.
맞다. 희망은 존재하지 않는 상상이다.
희망을 실현할 행동을 일으키는 힘은 하려는 의지다.
그 의지로 시작된 행동을 지속하는 원동력은 성취감이다.
희망 전체는 아니지만, 희망을 작게 나누어 하나씩 이룰 때 얻는 고양감과 성취감이 행동을 지속하게 하는 원동력이다.
행동이 시작되지 않는 이유, 행동을 시작할 의지가 사그라드는 이유는 희망 전체의 무게에 눌렸기 때문이다.
인간의 희망은 적지 않다. 작지 않다.
'가난하고 싶지 않아' 같은 한 문장도 규모는 엄청나다.
'커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희망이지만, 이제 곧 회의가 시작된다. 마음에 드는 그 카페를 다녀올 시간이 없다.
인간의 희망은 적지 않고 작지 않다.
당장은 이룰 수 없다.
점심시간, 카페에 가서 텀블러에 담아 오는 방법은 어떤가?
단돈 1만 원이라도 통장을 만들어 매달 모으기 시작하면 어떨까?
당장은 이룰 수 없다며 포기하고, 희망의 달콤한 상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다.
시작한다.
당장 이룰 수 없음을 인정하는 마음은 어른의 마음이다. 이것은 인내가 아니다. 어른스러움이다.
스스로 가늠한 희망의 규모에 짓눌리지 않고, 첫 발을 놓을 곳이 웅덩이라 움츠리지 않는다.
삶의 행복이 이렇게 귀찮고 번거로운 과정을 통해서 얻는 것은 아니다.
사회에 속한 우리는 대인 관계에 소홀할 수 있다.
귀찮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 많다. '잘 보여야 하나'라는 생각이 든 손을 내린다.
이야기하려는 바는, 행동이 스스로 하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네 생각이 나서 한 잔 사 왔어"라는 마음이 카페에 갈 시간을 절약케 한다.
"확실한 투자처가 있어. 적게라도 참여할래?"라는 신뢰성 있는 제안이 다가올 기회를 만든다.
마음을 나누고 등을 맡길 친구를 만드는 일은 생을 전부 걸어도 얻을 수 없는 희망일 수 있다.
하지만, 성공한 이들은 이야기한다.
삶에서 가장 필요한 능력은 '분별력'이며, 분별력은 '정보'와 '경험'으로 이루어진 '지식'으로 얻을 수 있다고.
어디에도 찾아보는 방법은 있다.
방법을 알게 되고, 희망이 생겼다면, 아무리 높고 긴 계단이 앞에 놓여 있어도 첫걸음을 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