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루션 아키텍트
다사다난한 새로운 회사 적응기를 지나고 있다.
공식적으로 문서화된 적응기와 나 자신이 이 회사에 적응하는 기간은 영 다른 모양이다. 새로운 직무를 맡아서 해보았으나 아무래도 난 이 직무에서 뜻을 찾는 데는 실패했다. 아마 사농공상이라는 뿌리 깊은 프레임 속에서 나는 완전한 공상을 맡게 되며 현실을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른 듯하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란 말처럼 나는 절을 자주 떠나는 일을 반복한다. 누군가는 버티는 게 좋다고 하지만 나의 반항아적 마인드는 "그렇게 말하는 본인은 삶에 만족하시는가"라는 괘씸한 마음이 어디 한구석에 작용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난 또다시 좋은 기회를 찾아 다니고 있다. 아마 이런 방향이 있으면 향해 방향이 없으면 방황은 어느 특정 조건이 만족될 때까지 지속될 것이다. 그 만족이란 아주 높은 확률로 일하지 않아도 먹고살 수 있는 그런 상태일 것이다.
솔루션 아키텍트
대학을 졸업하면서부터 프로그래밍에 대한 관심은 항상 높았다. 기존 수작업 방식을 개선해야겠다던 선의는 어느새 수작업 방식으로 하면 구시대라는 선민의식으로 와전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나의 프로그래밍 수준은 일반적인 건축을 전공한 사람보다는 높을 것이고 프로그래밍을 전공한 사람보다는 낮을 것이다. 좋게 말하면 하이브리드 나쁘게 말하면 애매한 위치에서 내 삶을 꾸려나가고 있다. 주 업무는 프로그래밍이 아니다 보니 알고리즘, 프레임워크 사용등은 내가 시간을 따로 내서 공부하지 않으면 정체되어 있는 날이 대부분이다. 또한 지금 회사에서는 일이 바쁜 것보다 업무적 스트레스로 다른 것들을 힘내서 하기가 힘들었다.
그러던 와중에 솔루션 아키텍트라는 직무에 대해 보게 되었고 해당 내용을 위해 준비 중에 있다. 각 회사별로 솔루션 아키텍트를 조금씩 다르게 정의한다. 그래도 내가 아는 선에서 정리하자면, 고객을 만나며 비즈니스적 요구사항을 듣고 이를 직접 프로그래밍하거나 또는 프로그래밍할 수 있도록 개발자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한다. 나는 태생이 비겁하여 남들을 앞에 세우고 나는 뒤에서 프로그래밍을 하길 원하지만, 한국 같은 작은 시장에서 그러기란 힘들고 또한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고객을 만나는 일도 병행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라는 생각이 부쩍 든다.
탈건이라는 목표에 한걸음 더
지금까지 나의 커리어를 살펴보면 건축을 떠날까 말까 하는 경계선에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떠나는 건 떠난다 치는데 그러면 어디로 가야 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너는 xx 업계로 가야 해"라고 열심히 바람 넣거나, 내가 마땅히 따라갈만한 롤모델이 다른 업계에 있었다면 분명히 따라갔을 텐데, 그런 것들을 찾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이유였지 않았을까 싶다.
나도 누군가에게 항상 "하고 싶은 일이 뭡니까"라고 물어봤지만 역설적으로 나도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른다. 그냥 돈이 알아서 굴러와서 황건적 교주처럼 하고 싶은 얘기나 하고 살고 싶은 게 모두의 큰 욕망이 아닐까 라며 그 뒤에 숨어본다. 그런 고로 만약 성공적으로 솔루션 아키텍트가 된다면 그 역할에 충실해 보려 한다. 무엇이든 충실하면 기회는 오니까. 만약 안된다면? 그건 그다음에 생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