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이야기 : 일본 명품관 파사드

D+18

by 코드아키택트

"근데 본인은 비정형 건축을 주로 하시나 보네요?"

얼마 전 누군가 나에게 이런 질문을 했다. 나는 여기에 "아니요, 사실 저는 미스 반대로에 같은 건축을 좋아합니다"라고 답한 적이 있다. 내가 비정형쟁이로 보이게 된 사연은 일본에서 한 여러 파사드 프로젝트에 기인한다


오사카 명품관 파사드

파사드 회사들을 보면 대략 비슷한 패턴이 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한 번에 한 명이 2~3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한다는 것이다. 어찌 보면 입면이라고 하는 별도의 부분만 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가능하다고 볼 수도 있고, 현실적으로 수행하는 업체가 많기 때문에 편중돼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나도 약 2~3개 프로젝트를 동시에 하며 오사카 명품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해당 프로젝트는 비정형이었고, 계약상 정확히 어떤 건지 밝히면 안 돼서 아주 뭉개서 얘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어쨌든 건축가의 화려한 언변으로 스토리 텔링이 잘 되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해당 명품관의 디자인으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막상 디자인이라는 것과 실제 시공 가능성이라는 것은 상당한 괴리가 있다. 아무리 돈이 많은 건축주를 만난다 해도, 시공가능한 예산으로 줄여야 하는 것은 숙명이기 때문이다. 이때 기술력이 있는 업체를 만난다면 건축가의 디자인 의도를 유지하면서 저렴하게(싸구려라는 뜻은 아니다) 시공을 진행할 수 있다.


최적화 기법을 도입해 보다

파사드를 최적화한다는 뜻은 여러 가지를 담고 있다. 최대 제작 가능한 사이즈 아래로 떨어지게 한다든지, 단위 재료의 로스를 최소화하는 방향이라던지, 평판으로 만든다든지 하는 등등의 이슈를 담고 있다. 대부분 이 세 가지를 수행해 내면 최적화라고 볼 수 있다. 평판으로 하면 가격이 엄청나게 저렴하지만 또한 싸구려처럼 보일 가능성도 쉽다. 그래서 보통 원통이나 좀 더 비싸면 구의 일부를 차지하는 형상으로 하고 싶어 한다. 해당프로젝트는 각 패널을 원통의 일부로 바꾸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초반의 스크립트는 내가 짠 것은 아니지만 프로젝트 수행과정에서 여러 요구조건이 바뀌고 원 담당자가 지원을 해줄 수 없어 결국엔 내가 바꿔서 진행을 해야 했다. 안 써본 프로그램인 카티아를 통해서 해야 했기 때문에 살 떨리는 작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파라다이스의 21억을 떠올리며 이 정도는 할 수 있지라며 한편으론 자신감도 있었다. 스크립트를 하나하나 뜯어보며 개선해야 하는 부분들을 찾고 프로젝트의 요구사항에 맞게 변환시켰다. 그래도 카티아가 좋았던 것은 여러 개의 최적화 스크립트를 동시에 돌리는 기능이 있었다는 점이다. 물론 추후에 같은 스크립트를 라이노에서도 구현했을 때, 라이노에서도 되는 것을 확인했다.


늘어나는 요구사항은 결국 유연한 도구로 전환이 필요했다

프로젝트의 키 플레이어는 결국 더 많은 정보를 정확하게 다루는 사람이 맡게 된다. 그때의 우리가 그랬다. 맨 처음에 전개도만 뽑아주면 된다고 그랬는데, 나중에 각 패널에 일종의 프린팅 작업을 위해 우리에게 추가로 작업을 요구했다. 이쯤 되니 카티아로 더 이상 작업하는 것은 무리였다. 상당히 많은 이슈가 있었지만, 지금 기억나는 것은 전개도의 끝부분이 터져서 나오는 문제가 있어 우리의 작업 방식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때당시에 클라우드 플랫폼이지만 속도가 너무 느린 것도 흠이었다.

패널이 최적화된 후에 모든 작업은 라이노로 진행했다. 전개도를 단순히 생성하는 것뿐만 아니라 각 패널에 번호를 매기고, 필요한 정보를 눌러 담는 작업들이 필요했다. 그래야 공장 작업자들이 해당 패널에 이름을 제대로 표시하고 현장에선 이를 바탕으로 작업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은 많았지만 그래도 추후엔 비슷비슷한 요구사항 내에서 바꾸는 것들이라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3D가 실제가 되는 것을 못 본 아쉬움

이전 글에서도 언급했듯, 자신의 3D 모델과 데이터가 실제 형상을 만들어질 때 그 성취감과 성장은 이로 말할 수 없다. 아쉽게도 해당 프로젝트에선 현장을 보지 못했다. 왜냐면 오피스는 도쿄에 있었고 현장은 오사카에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추후에 나올 나의 거취문제도 한몫했지만.

그래도 업무가 전체적으로 돌아가는 방향을 볼 수 있던 것은 재밌었다. 한국은 으다다하게 중소기업이 발 벗고 뛰는 안타까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프로젝트는 그래도 겉으로는 우아한 모습을 띄고 있었다. 어느 정도 틀이 잡혀있다 느낀 것은 일본에서 데이터를 전달해 중국에서 생산한 후 다시 일본에서 조립하는 그런 과정이 그들에게 꽤나 익숙해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소 의아한 것은 일본이 가지는 기술력이라는 것 중 이제는 제조는 중국으로 넘어간 것이 좀 더 선명히 보였다. 그럼 사실상 일본은 중개무역 업자인가. 알 수 없다.


우여곡절은 정말 많았지만

끝으로 말하면 우여곡절은 정말 많았다. 아마 그 얘기가 더 재밌겠지만 업계가 너무 좁아 글로는 적지 못한다. 그저 간단히 할 수 있는 말은 위기가 닥쳤을 때 비로소 사람의 본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업계가 만만치 않게 만드는 것은 꽤나 많은 부분 사람의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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