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이야기 : 일본을 가다

D+16

by 코드아키택트

어쩌다 보니 과거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문득 내가 여기까지 온 과정을 설명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기왕 옛날 얘기 한 김에 계속해보자. 요 녀석. 이리 와서 좀 앉아봐라. 나 때는 말이야


한국에 기회는 적다

흔히들 클리셰처럼 한국의 내수가 일본보다 작다는 둥 한국은 좁다는 둥 이야기를 많이 한다. 영어에서는 비교급을 통해 "더 크다", "더 작다"라는 표현을 많이 한다. 사실 우리가 쓰는 좁다, 작다 등은 이미 그 말속에 비교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은 일본에 비해 시장 규모가 작다. 긴자 거리에 으리으리한 루이뷔통 매장이 3개는 넘고, 에르메스 매장도 한국 것의 두 배는 된다. 더군다나 애플샵은 3개는 된다. 지금은 한국도 많이 생겼지만 그만큼 격차가 존재한다. 파라다이스시티 프로젝트가 끝난 후 솔직히 회사에 괜찮은 프로젝트가 없었다. 그리고 넌지시 일본행을 제안받게 되었다. 프로젝트도 없었고, 그로 인해 성장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일본행을 결정하게 되었다.


사람을 한 명 한 명 만나다

어딘가를 길게 떠난다는 것은 마음 한편이 아려오는 일이기도 하다. 그 가까운 일본이라 하지만 이제는 지인들과 자유롭게 만날 수 없다는 것은 동일하다. 비행기야 두 시간이라지만 마음먹지 않으면 이동하기 그리 쉽지는 않기 때문이다. 어쩌면 현실적으로 비용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지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만났다. 떠나는 사람과 떠나보내는 사람의 마음은 다른가보다. 나는 친구들을 이제 자주 못 본다는 아쉬움이 있었지만 친구들은 하나같이 "너 있는 동안 놀러 가면 되겠다"라며 기쁜 모습을 보였다. 나 혼자 지나친 감성이었다.


일본에서 행정절차를 진행하다

행정적인 일들도 제대로 해야 했지만 그런 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나는 대충 처리하고 나갔다. 처리라고 해봐야 국민연금 납부 정지 정도였던 것이다. 사실 그보다 중요했던 것은 인감 등등 일본의 아날로그 프로세스에 맞는 문서들을 꾸려 가는 것이었다. 관광비자가 아닌 외노자 비자를 받았어야 했으니 다양한 문서들을 꾸려야 했다. 일본 측에는 일본 변호사가 알아서 일을 진행해 줬다. 그중 충격은 내 졸업 증명서가 빠꾸 먹은 일이었다. 졸업 증명서엔 분명 영어로 모든 게 되어있었지만 졸업장을 가져오라 그랬다. 참으로... 대단한 일이었다.


집은 일단 회사가 구해준 곳으로

처음에 회사에서 약 3달간 집을 구해줬다. 일본엔 B2B 집 렌트 시장이 이미 잘 발달해 있었다. 내 기억엔 먼쓸리 맨션이라는 그런 서비스였다. 회사는 업체를 통해 집을 구해서 나에게 제공해 줬다. 사실 3달 안에 네가 집을 알아서 구해라 라는 말이기도 하다. 약 6평 정도의 집에 구조는 정말 오밀조밀 모든 것이 잘 들어가 있는 모양이었다. 그걸 보며 일본 놈들이 꽤나 무섭구나 싶기도 했다. 우리의 자유분방한 평면과는 정말 다른 느낌이었다. 경제적이면서도 그래도 있을 건 다 있는.

총 2번 집을 제공해 줬다. 첫 장소는 닌교초라는 번화가 여서 좋았다. 사람 사는 맛도 나고, 주말이나 퇴근하고 길을 걷는 맛도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구해준 집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주말에 개미새끼 한 마리도 없을 것 같은 그런 동네였다. 이름은 료고쿠. 대충 동쪽의 요코즈나의 구역이라 그랬다. 그런 게 나에게 무슨 소용인가. 정말 고독사 하는 것 아닌가 하는 깊은 걱정을 하던 때였다.


내가 구한 집은 공유하우스

일단 집얘기 중심으로 하다 보니 마저 해보려 한다. 어쨌든 일을 하며 3달간 나는 집을 구해야 했다. 일본인이 속이 검다지만 나도 만만치 않기 때문에 호락호락당할 순 없었다. 여기가 내가 뉘일 곳인지 판단해 보기 위해 1년짜리 집을 구할 수 있을지 열심히 찾아보았다. 사실 일본어도 안되었고, 내심 공유하우스에 로망도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언어교환과 영어를 하는 관리인이 하는 시설인 공유하우스를 택했다. 물론 다 개꿈이었지만. 인터넷으로 연락을 하고, 또 외노자라고 믿을 수 없다며 회사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돈을 냄으로서 집에 입성하게 되었다. 아마 이것에 대한 글은 옛날에 썼는데 너무 힘줘 쓰다가 제대로 뭘 쓰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입신고까지 마무리하고 정말 일본에 살게 되었다

일본에서 전입신고를 했을 때 정말 인상 깊었다. 첫째로 프로세스가 어마어마하게 느리며, 둘째로 안내해 주는 외국인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실 첫 번째야 그러려니 했다. 유럽에 가면 공무원을 만날 수 없다고 그러니. 하지만 두 번째, 즉 외국인이 있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일본문화를 좋아하는 외국인이 꽤나 있다는 것은 들었지만, 구청에서 안내 알바를 하는 푸른 눈의 외국인. "이게 뭐지 내가 정말 우물에 있던 건가?"라는 생각이 내 뇌리를 강타했다.

사실 여기서만 푸른 눈의 외국인을 봤던 것은 아니었기에 더더욱 충격이었다. 긴자에 있는 6층짜리 유니클로의 계산대에도 푸른 눈의 외국인이 일본어를 하며 일을 하고 있었다. 유럽에 가면 무시당하기 일쑤인 동양인의 나라에 푸른 눈의 외국인이 일을 하고 있다니. 일본 놈들이 기고만장한덴 이유가 있었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전입신고 얘기하다 이야기가 딴 데로 갔다. 전입신고는 외국인 어드벤티지로 아둔한 척을 하며 하라는 대로만 최대한 하면 큰 무리는 없었다. 재류카드를 주고, 그 뒤에 주소를 등록하고 그런 과정의 연속이었으니까.

아무것도 모르는 한국인은 사람이 급한 일본 대표와 그의 의지로 일본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keyword
이전 16화과거 이야기 파라다이스 시티 - 3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