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잘 지내니?
아버지가 요즘 많이 바쁘구나, 학기 중에는 항상 그렇지만 이 번 학기는 더더욱 그렇네.
가끔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해 봐.
"과연 나는 리더인가?"
다시 말하면 과연 아버지는 우리 공동체의 열매를 위해 움직이고 있는가?
혹은 나 자신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가?
물론 인간인지라 공동체의 열매를 위해 움직인다 해도 아버지 자신을 위한 일이 되겠지만 말이다.
리더가 된다는 것은 스스로 서는 것이 아니라 세워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네가 어렸을 때는 유독 리더적 성향을 보였지.
친구들을 잘 아우르고, 항상 전체에 마음을 쓰곤 하는 아이였단다.
15세기 중엽 서양의 르네상스를 일으키는 결정적 역할을 한 피렌체의 메디치가문이 있단다.
그는 자신의 재산을 내놓고 각 분야의 사람들을 모아서 서로가 자신의 역량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그로 인해 르네상스가 꽃을 핀 것이지. 각 분야에서 모인 예술가, 학자들이
1) 스스로 주인이 되어 자신의 역량을 충분히 들어낼 수 있도록 돕고
2) 그들이 협업할 수 있도록 교량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
러나 그 가문에게 돌아간 것은 거의 없는 거지.
그런데 말이다 아들.
협업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팀을 이루어 뭔가를 한다는 것이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여기에 진정 세워주고 교량 역할을 하는 리더가 없으면 서로에게 짐이 되고, 책임을 전가하고, 역량을 분산시키는 반감효과만 가져올 수 있다.
즉 백지장이 되려 찢어질 수도 있다.
이것을 링겔만 효과라고 한다.
링겔만이란 옛 날 프랑스 심리학자가 어떤 프로젝트를 놓고 책임성과 개인 역량의 극대화를 실험했단다.
그랬더니 두 사람이 하면 역량 100중 93%를, 세 명이 하면 85%, 여덟 명일 때는 겨우 40%밖에 역량 발휘를 안 했다더구나.
즉 수가 늘어날수록 무임승차하려는 사람이 늘어나고, 군중 속에 숨어버리려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지.
마치 온동회 때 줄다리기를 할 때를 상상하면 된다.
왜냐하면 스스로의 역량으로 자신만의 빛을 보고 싶은데 굳이 나의 노력을 누군가와 나누기 싫은 거지.
게다가 내가 안 해도 누군가가 할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이지.
그러기에 리더는 스스로를 낮추고, 자신에 의해 누군가를 세워주는 자여야 한다.
스스로가 서려하지 않고 세워주려는 리더는 일을 중심에 놓는다.
스스로 서려는 사람들은 일의 열매를 상상하지만, 리더는 그 열매의 쓰임새에 마음이 있지.
스스로가 주인 되게, 그리고 그들의 교량이 되거라.
그렇게 살다 보면 억울함이 들 때가 있을 것이야.
아버지가 살아 보니 그래.
좋은 마음으로 그런 리더십 철학을 가지고 살다가도 어느 날엔가는 손해 본 느낌?
속상함? 나도 한 번 떠봐? 뭐 이런 것으로 아버지 자신을 들볶기도 해.
그런데 말이다 결국 그 열매가 쓰이는 순간 그걸 바라보며 느끼는 희열이란 아버지만을 위해 일했던 그 이상이란다.
사랑한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아들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