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차 국제회의기획자의 조금 긴 자기소개서
"PCO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직업인가요?"
12년째 이 일을 하며 수없이 받아온 질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국제회의를 기획하고 운영합니다" 또는
"코엑스나 킨텍스에서 많이 하는 행사를 기획하고 운영해요."
라고 답하지만, 늘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 직업의 본질은 단순히 '기획'과 '운영'이라는
단어에 다 담기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부터 몇 편에 걸쳐,
12년차의 PCO이자 7년차의 기획사 대표라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쓴
'국제회의기획자 안내서'를 연재해보려 합니다.
단순히 PCO가 무엇인지 정의하는 것을 넘어,
이 일이 시대의 흐름 속에서 어떻게 변모해야 하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비전으로 미래를 만들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저의 오랜 고민과 현재의 답(그리고 그 과정)을 담아낼 예정입니다.
그 첫 번째 이야기로,
제가 어떻게 수많은 점들을 이어 이 길을 걷게 되었고,
이 직업의 어떤 매력과 무게에 마음을 빼앗겼는지에 대한
조금 긴 자기소개를 시작합니다.
이 이야기는 그동안 쌓아온 생각들을
앞으로 함께 적어낼 여정 전체를 관통하는
저의 관점이자 작은 출발입니다.
방송, 문화예술계를 꿈꿨지만,
최종 면접에서 돌아오는 말은 늘 비슷했습니다.
"정치외교학 전공이시네요.
보이는 것보다 훨씬 힘들고 고된 일이에요. 알아요?
우리랑은 좀 안 맞을 것 같은데."
번번이 고배를 마시며 자존감은 바닥을 쳤습니다.
오히려 바닥부터 시작하는 거, 그거 나 잘할 수 있는데 싶었지만
현실은 기회조차 얻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시작한 '리에종' 통역 아르바이트에서
처음 PCO라는 직업을 목격했습니다.
복잡한 상황을 조율하고 현장을 지휘하는 모습에서
막연한 동경과 함께 '내가 가진 역량을 잘 활용할 수 있겠다'는 직감이 들었습니다.
특히 해외 연사와 영어로 소통하며 일하는 환경은
강렬한 동인이 되었습니다.
이후 '2012 서울 핵안보정상회의' 미디어센터 운영요원으로
참여하며 이 직감은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작은 역할이었지만, 하나의 행사가 국가적, 사회적으로
미치는 영향력을 체감하며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신기하게도 PCO 회사 면접에서는
그간 제 발목을 잡던 이력들이 오히려 강점이 되었습니다.
정치외교학 전공은 국제 감각으로,
미디어학 복수전공과 영어방송국 경험은
글로벌 커뮤니케이션 역량으로 재해석되었습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PCO란,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전문가라기보다,
다양한 배경과 경험이라는 흩어진 점들을 연결해
하나의 큰 그림(행사)을 완성해내는 '연결자(Connector)'의 역할에 가깝다는 것을요.
왠지 모를 위로와 함께, 내 지난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가슴이 벅찼습니다.
그리고 이 깨달음은 훗날 '닷플래너'의 이름을 짓으며 담은 철학의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인턴으로 투입된 첫 프로젝트는 국내 최대 학술대회였던
'2014 서울세계수학자대회'였습니다.
그곳에서 지금의 공동창업자이자 첫 사수였던 Diana를 통해
PCO의 진짜 모습을 배웠습니다.
어느 정신없는 오후가 생생히 기억납니다.
오전에는 국내 최초 필즈상 시상식 개최에 대한
격식 있는 국영문 보도자료를 작성해 전 세계 언론에 배포했고,
오후에는 개발팀이 너무 바쁘다는 말에 초등학교 때 배웠던
HTML 지식을 총동원해 홈페이지의 깨진 링크를 수정하고 있었습니다.
하나의 행사를 위해 PCO가 얼마나 다채로운 역할을
해야 하는지는 다음 글에서 더 자세히 다루겠지만,
당시 저는 보도자료를 쓰는 홍보 담당자였다가,
홈페이지를 수정하는 웹 관리자였고,
또 수많은 미디어를 응대하는 커뮤니케이터이기도 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어렴풋이 깨달았죠.
PCO는 우아한 기획자가 아니라,
때로는 마케터, 때로는 위기관리 전문가,
때로는 IT 해결사의 역할까지 수행해야 하는 '총체적 전문가'라는 것을요.
물론 그 과정은 혹독했습니다.
인턴의 역량을 넘어서는 책임이 주어졌고,
에볼라 바이러스 확산 우려부터
각종 돌발 상황까지 매일이 위기였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의 무게에 짓눌려
현장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매일 울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현장에 도착하면 조직위원회 선생님들과
사무국 분들의 따뜻한 격려, 수많은 협력사분들의 묵묵한 도움,
그리고 사수였던 Diana의 믿음 속에서
어떻게든 해내고 있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이때의 경험은 '최고의 복지는 동료'라는 믿음을 갖게 했고,
훗날 저희 팀의 조직 문화를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원칙이 되었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기자회견 중 한 외신 기자가 살아있는 닭을 들고나와
여성 수상자를 위협하려는 돌발 상황을 막아내고 행사를 무사히 마쳤을 때,
여러 국내외 미디어들의 인터뷰 요청을 연사들의 입장에서 잘 정리해서
치밀하게 관리하고 연결했을 때,
저명한 석학들이 건네던 감사의 인사는 단순한 보람을 넘어
이 직업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또한 화려한 막이 내린 후, 수만 건의 영수증과 씨름하며 밤을 새웠던
원가 정산의 시간은 '성공적인 행사는 완벽한 마무리에서 완성된다'는
프로의 기본기를 제 몸에 새겨주었습니다.
PCO는 흔히 '무대 뒤의 보이지 않는 손'에 비유됩니다.
하지만 만 1년 경력에 'ISO(국제표준화기구) 서울총회'의
PM 대행을 맡게 된 경험은 그 생각에 거대한 균열을 냈습니다.
사수의 갑작스러운 부재로 막중한 책임감을 안고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했습니다.
두려움과 압박감 속에서 유일한 돌파구는
해외 본부의 카운터파트너와 매주 5시간이 넘는
전화회의를 하며 직접 소통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저는 단순한 실행자가 아닌,
프로젝트의 목표와 방향을 함께 설정하는 '전략적 파트너'로서
기획자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행사의 마지막 날, 본부 담당자는 제게 잊을 수 없는 제안을 했습니다.
"Michelle, 당신의 노고에 모두가 박수를 보낼 수 있도록,
내일 폐막식 무대 위로 올라와 주면 좋겠어요."
PCO가 무대 위에 나서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절,
그 제안은 충격이었습니다.
당시 팀장님께서 정중히 사양하여 주최측만 무대 위에서 박수를 받았지만
어린 마음에 괜히 서운하고 억울했습니다.
나의, 우리의 노고가 숨겨져야 하는 것인지,
모두 앞에서 인정 받을 수 없는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행사가 끝나고
사무총장이 직접 제 이름을 명시한 감사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그리고 이 경험은 제 직업관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PCO가 단순한 용역 대행사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걸고 기획의 중심에 서는 파트너가 될 때
클라이언트와 프로젝트 전체에 더 큰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신.
이는 훗날 닷플래너를 창업하게 된 가장 중요한 철학적 기반이 되었습니다.
이후 유치 제안, 해외 홍보 등 업무 영역을 넓히며 성장했지만,
업계의 구조적인 한계와 소모적인 업무 방식에 지쳐
잠시 현장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다시는 이 일을 하지 않겠다" 다짐하며
통번역을 공부했고, 한국은행에서 인하우스 기획자로 일하며
클라이언트의 시각을 경험하는 귀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죠.
그렇게 돌아온 길 위에서 다시 Diana를 만났고,
우리는 한 클라이언트가 던져준 'Munk Debate'라는
토론쇼 링크 하나에 완전히 매료되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행사가 아니었습니다.
지적인 담론과 완벽한 기획이 어우러져
하나의 강력한 콘텐츠가 되는,
우리가 꿈꾸던 기획의 본질 그 자체였습니다.
심장이 뛰었습니다.
"이런걸 만들 수 있다면,
그리고 이게 우리가 앞으로 마주할 미래라면,
꼭 제 손으로 가지고 오고 싶어요.
같이 만들어보지 않을래요?"
이 질문이 제 PCO 인생 2막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짜릿한 행사를 직접 보고 싶다는 열망 하나로,
저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Diana와 함께
캐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제가 찾던 답이 그곳에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의 이야기는 이처럼 '연결자'에서 시작해
'총체적 전문가'를 거쳐, '전략적 파트너'라는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길 위에서 저는 제 직업을 정의하게 되었고,
저의 업을 통해 더 나은 미래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직접 만들어보고자 마침내 '닷플래너'라는 방식을
조금씩 구축해가며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이어질 글들을 통해
국제회의기획의 세계를 함께 탐험해보고자 합니다.
Part 1. 국제회의기획, 세상을 연결하는 보이지 않는 손길
먼저, PCO라는 직업의 본질과 현실을 깊이 있게 들여다봅니다.
제가 그랬던 것처럼, 막연한 환상을 넘어 이 직업의 구체적인 업무와
치열한 현실, 그리고 그 속의 가치를 이야기할 것입니다.
Part 2. 닷플래너의 비전, 단순한 행사를 넘어 '경험'을 기획하다
다음으로, 저와 닷플래너가 추구하는 차별화된 비전과 철학을 공유합니다.
기술과 지속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통해 MICE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그려나가고 있는지 보여드리겠습니다.
Part 3. 비전을 현실로, 닷플래너의 현재와 미래
마지막으로, 그 비전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저희의 현재와 미래를 나눕니다.
함께 성장하는 팀 문화부터 글로벌 프로젝트, 그리고 미래 세대를 위한 이야기까지
진솔하게 담아낼 예정입니다.
아직은 우리만의 방식을 테스트하고 쌓아가며
성장해내가고 있는 곳인 만큼 오히려 그 과정에서 고민하던 것들과
진솔한 성장의 과정을 함께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그럼, 다음 편에서 국제회의기획자가 하는 일에 대해 좀 더 소개하며
첫 번째 파트의 다음 여정을 이어가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