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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Sep 11. 2023

맨발로 걷기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언제나처럼 오전 내내 비실 거렸다. 잠은 일찍 깼으나 밖으로 나가서 활동하고 싶은 의욕이 샘 솟아오르지 않는다. 느릿느릿 게으르게 산책이라도 나갈 채비를 해보지만 몸이 선뜻 일으켜지질 않았다.      


마냥 게으른 생활은 또 참지 못하니 집을 나서기로 결심했다. 맨발로 걷는 게 피로 해소에 좋다는데 한번 시도해 볼 참이다. 하지만 혹시나 돌부리 같은 것에 걸려서 발을 다치지 않을까, 흙이 묻으면 어떻게 닦아 낼 것인가 등등 귀찮음이 한편으로 몰려온다.      


평소 짐 보따리를 들고 다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 운동을 하러 갈 때는 작은 가방에 핸드폰 정도 넣고 나가는 게 전부인데 더러워진 발을 닦아야 하니 물티슈와 양말과 쓰레기를 담을 비닐봉지 등등을 챙겼다.      


공원에 가서 지난번 한 청년이 맨발로 걷기를 하던 장소를 탐색해 봤다. 아뿔싸. 같은 청년인지 오늘은 연회색 모자를 푹 눌러쓰고 역시나 맨발로 당차게 걷기를 하고 있다. 공원 한편에 한 오십 미터 정도 좁은 흙길이 있고 그 길을 무한히 왔다 갔다 하면서 걷고 있었다.      


‘어째서 부지런하게 일찍 나오지 않고 점심때가 다 돼서야 나왔는지.’ 이렇게 속으로 남 말하고 있다.      


청년을 힐끔거리면서 공원의 길을 따라서 한 바퀴를 걸었다. 얼른 청년이 떠나서 길을 내주기를 바라면서. 하지만 두 번째 마주했을 때도 큰 키에 마른 체형을 가진 청년은 여전히 팔을 휘휘 돌리며 걷고 있었다. 푹 눌러쓴 모자 때문에 얼굴은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괜스레 청년이 원망스러워졌다. 세 번째 마주쳤을 때는 옆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서 청년이 떠나기를 기다렸다. 앞 뒤로 흔들흔들하면서 계속 몰래 청년을 주시했다. 년이 모자를  벗는다. ‘아, 이제 가려나?’ 싶었지만 더위를 식혔을 뿐 마치 그네처럼 똑같은 길을 반복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청년이 점령한 길은 포기다. 다른 호젓한 흙길을 알아봐야겠다. 공원을 떠나서 근처의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 위까지 가면 작은 공터 같은 장소가 있으니 거기서 맨발 걷기를 다시 도전해 볼 것이다.   

   

한낮의 날씨는 아직 덥다. 끈길기게 따라붙으며 진저리 나는 윙~소리를 내는 모기를 손을 휘저어서 쫓아내면서 산을 올랐다. 산 위의 공터에는 아무도 없다. 흙길도 평평해 보이고 과히 위험한 것 같지는 않다. 조심스럽게 신발을 벗고 맨발로 땅을 살짝 밟아봤다.      


땅은 차가운 기운이 있고 작은 돌 때문에 따끔따끔한 느낌이 든다. 점점 대담하게 땅 위로 뻗은 나무뿌리도 밟아보고 여기저기 지경을 넓혀본다. 하지만 가끔씩 마주치는 등산객들을 보니 민망해졌다. 좀 피로감이 심할 뿐 정신은 아주 멀쩡합니다. 발 하나 벗었을 뿐인데 왜 이리 헐벗은 것 같지?      


이 평온한 오후에 산 위에서 맨발로 걷고 있는 여자를 본다면 살짝 정신을 놓았나?라는 생각이 스칠 것 같다. 나도 맨발로 걷는 다른 사람을 볼 때 순간적으로 비슷한 의심을 했으므로. 신발 하나 안 신었는데 혼자 원시의 미개인이 된 것 같기도 하다.        


맨발로 걸어보니 산과 나무와 흙과 맨살을 부비며 한층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인간도 역시 자연의 일부이고 결국에는 자연으로 돌아갈 존재라면 가끔 맨발로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마치 자연과 하나 되어 산속을 헤매고 다니는 자유로운 아메리카 인디언이 된 것 같은 느낌이 잠시 들었다.


나무야, 우리는 하나다.

나무야, 우리는 자연의 일부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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