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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Jan 22. 2024

연애의 조건

올겨울 유난히도 눈과 비가 자주 내린다. 신비한 세계가 펼쳐지는 눈 세상도 가끔이라야 감탄을 자아내지 일주일이 멀다고 내리니 감흥이 떨어진다. 인간이란 익숙한 것에는 흥미가 반감되기 마련이니까.      


바닥에 쌓인 눈에 비가 와서 녹아내리는 날이었다. W는 아들이 펜션에 놀러 가서 홀로 저녁을 드시고 싶지 않다며 S의 집 근처로 왔다.


S는 수업이 늦게 끝나는 날이라 썩 내키지 않았으나 W가 선뜻 두 번째 데이트를 제안한 것이니 거절하고 싶지 않았다.      


9시가 다 되어서야 집 근처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 W와 만났다. 시간이 늦어서 새벽까지 운영하는 근처의 대패 삼겹살집에 갔다.      


W는 변함없이 얇은 고기를 불판에 올려 척척 구워냈다. 예전에 캠핑을 자주 다니셔서 고기 굽기에는 달인이 된 것 같았다.    

 

“캠핑이라니 저희는 취향이 맞지 않네요. 저는 호텔 놔두고 왜 길에서 자는지 모르겠어요 ㅎㅎ” S는 상상만 해도 장비를 들고 메고 날라서 텐트를 치고 하는데 진저리가 쳐졌다.     

 

“지금은 장비도 정리했고 힘들어서 못 하지. 예전에 아이들 어릴 때 가족들이랑 다닌 거니까.” W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추억을 떠올렸다.      


S는 이른 저녁을 먹었는데 고기를 마주하니 다시 식욕이 넘쳤다. 깔깔한 깻잎에 향긋한 당귀잎을 얹어서 고기를 싸 먹으니 멈출 수가 없었다. 결국, 배부르다고 했으면서 고기를 야금야금 다 먹고 볶음밥까지 바닥까지 싹싹 긁어서 먹고 말았다.


눌어붙어서 바삭해진 밥알 한 톨 남기지 않고. 알뜰살뜰하게 밥을 먹으며 정이 쌓여가는 건가 보다.     


W는 이혼 스토리를 심각하게 자세히 풀어놓았다. 소송 이혼이란 상처만 더 깊게 남긴다. 결혼은 한쪽이 돌아서면 무슨 수를 쓴다 해도 다시 붙잡을 수가 없는데. 팽팽하게 힘을 쓰며 줄다리기를 하는 중에 맞은편 사람이 줄을 놓아버린 꼴이다. 끝까지 줄을 잡고 있는 사람은 혼자 용을 쓰다가 반작용으로 바닥에 구르게 되고 만다.      


판사는 유책배우자가 아내 편이라고 해도 다시 돌아와서 정상적인 부부로 살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재산의 45%를 내어주라 판결했다고 한다. 이십 년이 넘는 결혼생활을 했으니 정당한 것 같기도 하지만 배우자의 배신을 받아들여야 하고 하루아침에 재산의 절반을 잃게 되는 심정은 어떠하겠는가?     


협의 이혼을 하는 편이 낫다고 본다. 한 푼이라도 더 받겠다고 으르렁거리면서 서로의 귀책을 찾고 부풀리고 사실을 각색하고 물고 뜯다 보면 오만 정이 다 떨어질 것이다.


평생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하고 사랑해 마지않아 결혼이란 걸 했는데 결국은 남보다 못한 사이로 헤어지는 건 얼마나 마음 아픈 일인가? 소송에 들어가는 비용이며 수년 동안 쏟아붓는 시간이며 상상만 해도 못 할 짓이다.      


이혼에 관한 주된 입법례로는 유책주의와 파탄주의가 있다. 유책주의란 잘못을 한 배우자(유책배우자)는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없고, 오로지 피해를 본 배우자만 이혼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제도이다.


1965년부터 현재까지 유책주의가 유지되는 가장 큰 이유는 보통의 경우 경제주도권을 쥔 남성이 여성을 쫓아내는 수단으로 악용됨을 막기 위함이었다.


파탄주의란 혼인 생활이 객관적으로 파탄에 이르렀을 경우 유책배우자도 파탄이 났다는 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이혼 청구를 할 수 있는 제도이다. 잘못을 누가 했건 간에 결혼생활을 더는 유지하는 것이 무의미하여 부부라고 부를 수가 없는데, 이 둘을 법으로 강제로 묶어놓는 유책주의와 대척점에 서 있는 제도이다.     


한국은 원칙적으로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으므로, 재판상 이혼은 유책배우자의 상대방만 제기할 수 있다. 당신이 이혼하고 싶어서 일부러 저 위에 쓰여 있는 짓을 한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성인군자라 그것들을 다 용서해 주면 당신이 도망갈 길은 없다는 뜻이다.


성인군자가 아니더라도 재산이나 사회적 지위 등의 이유로 눈감는 경우도 많다.     


, 혼인 파탄에 실체적인 책임이 있는 유책배우자라고 하더라도 예외적으로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조건이 있는데.


상대 배우자가 유책배우자와의 이혼할 생각이 있으면서도, 오기로서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

유책배우자가 상대 배우자와 자녀에 관한 충분한 보호와 배려를 제공한 경우


쌍방 간의 혼인 관계가 파탄이 난 지 오래되어 상대 배우자의 정신적 고통이 상쇄되었다고 판단되는 경우     


다만, 이혼 사유가 없거나 그 증거가 없더라도 이혼 소송에서 당사자 쌍방이 이혼을 원하면 이혼할 수 있다(이혼 화해 또는 이혼 조정). 위키백과     


S는 세 시간 연속으로 수업을 하고 와서 피곤했으나 W의 비통한 이야기를 자정이 가까울 때까지 들어줬다. 끊어질 듯 이어지는 드라마보다 더 냉혹한 이야기.     


W는 이혼으로 재산의 반가량을 잃었고 전세로 살고 있었다. 음, S는 물질이라는 현실의 벽에 부딪혀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W는 아직 경제 활동을 활발하게 하고 있고 대학을 다니는 이 십 대 자녀까지 부양하는 중이다.


다만 그 자녀들도 이제 현실을 직시하고 독립하여 제 갈 길을 가주었으면 싶다.

     

S는 무거워지려는 마음을 다독이며 배부른 상태로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괜찮아. 다 잘될 거야.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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