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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Jan 18. 2024

용감한 고백

...

S는 W를 밴드 모임에서 총 세 번 만났다. 첫 모임에서 W와 동갑인 밴드의 리더분이 장난처럼 S의 핸드폰을 들어서 W에게 전화를 걸었다.


S는 다른 연하남을 꾀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느라 W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있는데. W는 그저 회사 어디에서나 볼 만한 칙칙한 빛깔의 감색 저지 셔츠에 검정 양복바지를 입으신 뱃살 넉넉하신 부장님 스타일이었다.      


연하남이 약속이 있다며 훌쩍 떠나가고 S는 W가 은근히 호감을 보였다고 마음대로 믿었다. 게다가 함께하신 분들이 괜찮은 분이라고 계속 어필을 하셔서 새삼 관심을 두게 됐다. 모든 공은 이분들에게 돌려야 함이 마땅하다.      


W는 세 번의 모임이 끝나고 나서도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고 다음 주에 있는 모임에 왜 오지 않는지 문자를 보내셨다. 아니, 대관절 따로 만나면 되는 데 왜 단체로 만나자는 건지? S는 속이 터졌다.      


W: 이번 주는 벙 안 나오나?

    출석도 안 하는 거 같길래 물어봐유~~     


S: 네 이번 주는 약속이 있어요^^

   (네가 데이트 신청을 하지 않아서 다른 모임에 남자를 찾으러 간다. 오빠고 뭐고 반말하고 싶다)     

   출석은 원래 잘 안 해요. 왜 하는지 모르겠다는...^^     


W: 리더가 걱정하더라구.

    지난번 오이도 벙 때 삐진 건 아닌지? ㅎ

    3주 나오다가 조용하니 걱정이 됐나 보더라구.     


S: (너는 걱정이 안 되더냐?)

   제가 밴드 여기저기 가입하고 모임도 나가니까요 ^^     


W: 그렇겠군~ 늦은 시간에 톡 해서 미안~      


S: 전 남자 친구를 찾으려 합니다 ㅎㅎ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좀 만나주면 안 되겠니?)     


W: 지금 과외 수업 중이라고 했지. 수고하셔~     


S: (벌써 포기냐?) 언제 한번 맛있는 걸 사주세요!^^ (마지막으로 매달려보자)     


W: 그려. 언제 시간 나는지 알려줘.


이렇게 가까스로 눈치코치가 없는 W의 멱살을 잡아끌어 드디어 데이트가 성사되었다. W는 신중하기가 이를 데 없으신 분으로 본인이 만나자고 하여 일요일 낮 카페에 마주 앉아서도 ‘자기 마음을 잘 모르겠으며 준비가 되지 않는 것 같다’라고 하면서 또 뱀처럼 스르륵 빠져나가려 했다.      


S는 사람은 직접 만나보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지금 이 상황에서 저도 한눈에 반한 것도 아니고 만남을 시작하기가 모호하다. 등등 설득을 시도해 봤다.      


카페에서 다섯 시간가량 전쟁 같은 이혼 이야기부터 각종 밴드 야설을 거쳐서 ‘대체 사랑이란 무엇인가’에 이르기까지 대화는 이어졌다.


동네에서 유명한 브런치 카페여서 단체로 오신 분들이 자리마다 꽉 차고 대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그 소리가 차차 잠잠해지며 주위가 고요해질 저녁 무렵까지 S와 W는 열띤 대화를 나눴다.  

    

W는 힘든 이혼 소송을 끝낸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만남을 시작할 여력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사랑은 타이밍이 아니던가. S는 올해는 기필코 남자 친구를 만나리라 동네방네 노래를 부르는 상황이라 지금 어긋난다면 인연을 이어갈 수 없음이 분명했다.    

  

S의 온갖 억지 주장과 설득과 농담과 궤변을 들으며 W의 얼굴에는 차차 웃음이 번져나갔다. 데이트 룩이라 신경을 쓰신 건지 초록색 반소매 셔츠에 밝은 베이지색 V넥 니트를 받쳐 입고 나왔다. 한결 얼굴이 밝아 보였다.


자주 만나게 되어 점점 익숙해지고 정이 들어가는가 건가. 가끔 빙그레 미소를 띨 때는 소년으로 빙의한 듯 꽤 귀엽기까지 했다. 무표정한 산적같이 생긴 얼굴에 한 줄기 햇살처럼 번져나가는 미소라니.      


저녁으로 W의 꼼꼼한 검색을 거쳐서 생 갈빗살을 먹으러 갔다. W는 언제나 마치 주인아저씨인 것처럼 고기를 이리저리 뒤집으며 성실하게 구워주셨다. 도톰하고 울퉁불퉁한 갈빗살은 이렇게 계속 뒤적여줘야 한단다.


W는 정말 고기를 알맞게 잘 구우시고 먹는 것에 일가견이 있으시다. 배우신 분답다.      


고고한 안방마님의 부름을 받은 조선 시대 머슴 같다고나 할까? 투박하나 정감 있는 매력이 한층 더 올라갔다. 게다가 노릇노릇 구워진 갈빗살이 얼마나 쫄깃하고 나던지 비빔냉면에 싸서 먹으니 꿀맛이었다. 좋구나! 좋아.      


첫 데이트가 끝나고 W는 그 노무 미적거리는 마음의 준비가 끝난 건지 다음 날 아침부터 다정한 아침 문자를 보내기 시작하셨다. 암, 그래야지!    

  

함께 먹으며 쌓여가는 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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