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것이 힘? 모르는 게 약?

담임이 되다

by 사각사각

우여곡절 끝에 올해 담임이 되었다. 3월부터 맡게 될 반 아이들의 명단이 나왔다. 두근두근 기대감을 가지고 쭉 훑어 보았는데 난데없이 뒤통수를 한대 맞은 듯한 걱정과 두려움이 몰려왔다. 이 사실을 아직은 생소한 우리 반 아이들이 모르기를 바라지만 심히 심난한 마음이었다고 해야겠다. 친한 선생님을 찾아가 명단을 보여 드리며 한 시간 동안 하소연을 하였다. 아무리 평소와 같이 부처님과 같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위로를 해주셔도 그날만큼은 귀에 잘 들리지도 않았다.


문득 이런 속담이 떠올랐다. 아는 것이 힘인가? 아니면 모르는 게 약인가? 이 모순된 속담이 한꺼번에 생각나는 것은 도대체 둘 중 하나를 후회 없이 고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작년에 일년 동안 지지고 볶으며 한 해를 보냈던 아이들이라 39명중 절반 정도는 아주 잘 아는 아이들이었다. 일주일에 4시간, 하루만 제외하고 매일을 만난 아이들이다. 게다가 수준별 수업이라 10~15명 정도의 아이들이 옹기종기 앉아있었기 때문에 대화를 할 시간이 많았고 머리 속에 정확히 각인되어 있다. 이 ‘각인’이라는 것이 영화 ‘투와이라잇’에서 제이콥이 벨라에게 가지는 절대적인 사랑이었더라면 좋았겠지만 다소 부정적인 각인이었다.


담임이 발표되기 전에는 작년에 미운 정 고운 정 많이 들었던 아이들이어서 다시 일년을 더 만나게 되길 은근히 바랬었다. 그러나 실제 마주하고 보니 오히려 기쁘기 보다는 걱정이 앞서는 것이다. 참으로 사람의 마음이라는 변덕스러운 녀석은 도무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다. ‘대체 어떻게 해주어야 만족할 것이냐’ 하고 단도직입적으로 한번 물어보고 싶어진다.


우선 반 아이들 중에는 이런 저런 꽤 심각한 육체적 혹은 정신적 질병이 있는 아이들이 몇 명 있었다. 건강 문제도 걱정이고 이 아이들은 대부분 교우관계가 활발하지 않아서 혼자 다니는 경우가 많다. 일단 항상 혼자인 아이들이 많으면 개별적으로 조금 더 신경을 쓰지 않을 수가 없다.


특히나 작년에 무려 60일을 결석을 하면서 가끔 출석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속을 확 뒤집어 놓곤 하던 아이가 있었다. 수업 시간에도 마음이 내키는 대로 화장을 하거나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주의를 주면 마음대로 하시라고 따박따박 말대답을 하는 강적이다. 하도 기가 차고 뒷목이 뻣뻣해지도록 혈압이 올라서 아예 못들은 척 무시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전교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가장 되바라진 태도를 가지고 있는 아이였다. 마음이 내킬 때만 간혹 매우 얌전하게 행동하고 친근하게 구는 데 이럴 때면 다중인격을 가진 ‘지킬 앤 하이드’씨 같기도 하다. 작년에도 결코 만만치 않은 담임 선생님에게 욕 한마디와 함께 자퇴를 하겠다며 뛰쳐나간 일화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 터미네이터처럼 다시 돌아왔나보다.


차라리 모르는 것이 좋았겠지만 이미 경험하여 아주 잘 알고 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고 이제는 아는 것이 힘이 되도록 만들 수 밖에 없다. 다만 이 아이들이 고등학교에서 한 해를 살아오며 어느 정도는 성숙한 아이가 되었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이 또래의 아이들은 해마다 꽤 빨리 육체적, 정신적으로 쑥쑥 성장을 해나가므로.


그리고 담임이다. 마치 ‘우리 가족’처럼 ‘우리 반’이라 이라는 정감이 듬뿍 담긴 단어의 주체인 것이다. 매일 조회, 종례 시간에 만나고 수업시간에 꼬박꼬박 한 시간씩 보고 아이들의 각종 민원 서비스도 처리해주게 된다. 함께 힘을 모아 합창대회, 체육대회등을 준비하면서 울고 웃으며 매일을 보낼 것이다. 다른 반의 아이들보다 한층 끈끈한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게 되고 부모 된 심정으로 잘못을 감싸주지 않을 수 없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고 개인적인 가정사와 성향을 속속들이 잘 알게 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나의 마음가짐 먼저 달리 해야겠다. 잠시 가출하신 무한 긍정의 신을 다시 불러와야 한다. 나에게는 매일 복용해야 하는 긍정의 약을 처방하겠다. 플라시보 효과를 노려보기 위해서이다. 플라시보 효과란 약효가 전혀 없는 거짓 약을 진짜 약으로 가장하여 환자에게 복용토록 했을 때 환자의 병세가 호전되는 효과를 말한다. 긍정이란 실제로는 약효가 상당히 커서 날마다 부딛치는 힘든 상황을 거뜬히 이겨내게 해줄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피그말리온 효과를 기대해 보겠다. 피그말리온 효과란 타인의 기대나 관심으로 인하여 능률이 오르거나 결과가 좋아지는 현상이라고 한다. 모두가 공부를 잘하기 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다만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한 해를 잘 살아가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사이 좋고 즐겁게 학창시절을 보내기를 바랄 뿐이다. 먼 미래에 흐뭇하게 웃으며 추억할 수 있는 ‘응답하라 2016’이라는 아름다운 리얼 드라마를 만들어 가기를 바라며…


그래도 이 아이들이 어떤 성격과 행동 패턴을 가지고 있는지 미리 숙지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도 이미 여러 번 경험을 해보아 노하우가 생기면 한결 익숙하게 해결할 수 있는 법이다. 하루 동안 뒤치락거리며 불면의 밤을 보내고 나서 나 자신을 다독이며 내리는 결론이다. 갑자기 날벼락을 맞는 것보다야 미리 간간히 약한 전기충격을 받아 보면 벼락의 충격도 견딜만 할까?


아는 것이 힘?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다. 다이나믹한 인생에 정답이란 없다!
정답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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