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부터 자기 소개란의 취미, 특기란을 보면 무어라고 적어야 할 지 망설여졌다. 취미라 하면 스쿠버다이빙이나암벽등반 정도는 되는 멋진 단어가 들어가야 할 것 같은 데 그런 자랑할만한 취미는 없기 때문이다. 운동쪽에는 매우 소질이 없으며 다른 예체능에도 재능은 없다고 본다. 그래서 독서라든가 영화감상 같은 무난한 단어를 적어넣고는 남몰래 실망스럽기도 했다.어떤 분은 "독서는 취미가 아니고 날마다 해야 하는 일이다." 라며 꾸짖었던 것 같기도 하고.
독서는 매우 좋아하는 활동 중에 하나이다. 무료한 주말이나 방학 때 도서관에 들러서 책을 읽는 시간은 너무나 행복한 시간이었다. 서고마다 돌아다니며 책을 드려다보고 책 제목을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고제목을 보면 마치 속삭이며 말을 거는 듯 끌리는 책들이있다. 수필, 여행기를 특히나 좋아하고 만화나 시나 소설도 마음가는 대로 집어서 여러 권의 책을 놓고 조금씩 읽는 즐거움도 있다. 추운 겨울날에도 햇살이 가득 들어오는 도서관에서 고양이처럼 한가롭게 책을 읽는다.
그리고 식상하지만 영화감상도 좋아한다. 요즘 넷플릭스 구독하여 보시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한동안은 '로스트' '히어로즈 '등등 흥미로운 미드에 빠져서 하루 여덟 시간을 보기도 했었다. 정신이 복잡할 때는 가끔 생각을 멈추고 멍을 때리거나 다른 즐거운 일에 마음을 쏟을 필요도 있다. 중독이 될 수도 있지만 영화 감상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삶을 보고 인생을 돌아보게 하는 값지고진지한 경험을 할 수도 있다.
그리고 글쓰기도 나름의 취미 생활이다. 인간은 항상 무언가 열중할 일이 필요하다. 집중할 일이 없으면 마음이 공허해지고 우울해지기 쉽다. 마음이 괴롭거나 일상이 무료할 때 혹은 누군가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가득차오를 때 말을 하듯이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생각이 차차 정리되고 스스로를 토닥토닥 위로할 때도 있다. 파도가 치는 감정적인 마음 상태를진정시키고 이성적으로 상황을 바라보고자 하는 노력 중 하나이다.
취미란 참 별거 아닐 수 있다. 내가 좋아하고 일상의 고단함을 잊고 몰두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소소한 취미라 해도 더없이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의미있는 활동인 것이다.
한동안은 등산을 좋아하는 분들과 어울려 등산에 끌려(?) 다니기도 했다. 어느 여름날 밤 저질 체력으로 다른 사람들의 빠른 등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지리산에서 낙오자가 되었다.
나 참~지리산을 머리도 제대로 못 감고 이박 삼일이나 종주하다니 지금이라면 꿈도 꾸지 않았을 일이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조난을 당했을 때 6.25 당시에 빨치산들이 왜 지리산으로 도망갔는지 이해가 되었다. 왠만해서는 추적하기가 어려운 무시무시한 산골짝 길이다. 혼자 야심한 밤에 천 오백미터 정도 되는 높이의 지리산에 덜렁 남겨졌다.
문득 눈에 들어온 구조 전화번호 말뚝를 보고 잠시 망설였다. 헬기로 구조를 당하고 뉴스에 나와야 할까 말아야 할까. 인생은 역시 '독고다이'(혼자 죽음?)다. 말이 없는 무서운 바위 그림자를 보며 '하나님, 이번 한번만 살려주시면 다시는 이런 무모한 행동을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간절히 기도를 했다.물론 그 후에도 끝없이 대책 없는 일들을 벌였지만.
그날 밤 겨우겨우 산장에 도착하여 살아남았지만 다른 사람들과 등산을 하며 도무지 따라갈 수 없을 때마다 누구나 자기의 속도, 페이스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일이든 과연 내가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가 고민해보아야 한다. 다른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이라 하여 나에게도 맞는 건 아니다. 모두가 'yes' 할 때 'no'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은 그 지리산 종주의 마지막 날에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혼자 산을 내려오기로 결정했다.
이 또한 하나밖에 없는목숨을 거는 일이었지만 (로프에 하나에 의지하여 계곡을 타고 내려오며 다시 수없이 한 번만 살려 달라는 기도가 절로 나오는) 등산은 이미 충분히 했고 더 이상 그 유명한 천왕봉을 가보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이 모든 좌충우돌의 경험을 통해 'no'해야 하는 상황 자체에 들어가지 않고 슬그머니 피해서 나만의 고요하고 평화로운 오솔길을 걸어가고 있다.
등산도 한 두시간 정도의 가벼운 산책 정도를 좋아한다. 등산보다는 공원의 평탄한 길을 걷는 것을 더 선호하고. 이처럼 세상 소소한 취미 생활이라도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누구를 위한 삶도 아니고 타인에게 멋있어보이고자 하는 강박감도 없다. 에베레스트에 오르지 않은들 어떠하리. 동네 뒷산이 만만하고 올라가기 딱 좋은데. 내가 좋아하고 빠져들 수 있는 취미 생활이라면 지극히 평범할지라도 마음껏 즐겨보자. 지리산은 다시는안 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