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원래부터 가끔씩 혼자 영화를 보러 다닌다. 홀로 영화를 보는 장점은 언제든 약속 없이도 마음이 내킬 때 보고 싶은 시간에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영화도 취향대로 고를 수 있다. 대화 상대가 없으니 영화에는 더 집중이 된다. 진짜 마음에 와 닿는 영화를 만나면 그날은 마음이 뿌듯하고 좋은 친구를 만난 듯 한층 더 즐거워진다. 그저 그랬어도 무료한 시간을 채운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남아 도는 시간에 영화를 본다는 것은 새로움이 주는 은근한 기대감으로 마음이 차오르는 일.
영화도 미리 예매하지 않는다. 어느 날 시간이 있고 영화가 땡기면 그대로 영화관으로 향한다. 다분히 충동적인 성향이 있는 편. 영화 '미나리'는 이미 영화 자체와 윤여정 님이 각종 상을 수상하여 방송에 인터뷰가 많이 나왔고 차분한 드라마적인 분위기가 끌리는 점이 있었다.
과외와 과외 사이에 하나 날아간 과외 시간에 영화를 보러 갔다. 기분도 영 꿀꿀한데 잘 됐다. 시간도 두 수업 사이에 끼워 맞춘 듯 딱 맞는 게 있어서 기분이 짜릿하니 좋았다. 예매는 안했지만 시간은 미리 확인해 봤다. 이만해도 매우 부지런한 편인 날. 우리 동네에 있는 작은 영화관은 거의 언제나 자리가 있다. 마치 영화관을 전세 낸 것 같은 기분으로 영화를 볼 수 있는 것이다. 아파트만 밀집된 주택가에 있는 작은 몰에 있어서 찾는 사람이 적기 때문에. 가끔 혼자 영화를 보러 가는 아날로그 인간이며 예매조차 안하는 귀차니스트로서 동네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참 고맙다.
영화관에 들어갔는 데 진짜 관객이 한명도 없었다. '정말 혼자 영화를 보게 되는가?' 하며 약간 당황스러워지는데 상영 시간이 가까워오자 한 두명씩 들어온다. 총 7~8명 정도가 넓디 넓은 관객석을 띄엄띄엄 채웠다. 이렇게 한산한 영화관이라니 왠지 집안에 개인 영화관을 소유한 부자가 된 것 같고 행복하다. (ㅎㅎ)
화제의 영화 미나리를 보았다. 기대했던 만큼 엄청 재미있었던 건 아니지만 중간 중간에 소소한 유머가 있고 가족의 끈끈한 애정을 느낄 수 있는 영화였다. 울고 웃고 싸우고 화해하면서 아무리 힘들어도 함께 부대끼며 삶을 살아내는 가족. 영화의 내용은 전반적으로 우울했으나 무언가 정확하게는 알 수 없는 희망으로 끝이 났다. 모든 것을 다 잃는다 해도 가족이 있기에 다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이 이야기가 미국 이민자 기족에서 자란 정이삭 감독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고 하던데 마지막 클라이맥스 외에는 특별히 극적인 요소는 없는 참으로 단조로운 현실 같은 영화였다. 자잘한 에피소드만 나열되어 있고 클라이맥스까지 몰아가는 위기가 약하다. 독립영화여서 돈을 덜 투자해서 그런 지도 모른다.
(중간에 조금 지루...)
비어 있는 시간을 영화로 채울 수 있어서 좋았다. 그리고 윤여정 배우님은 평소에도 직설적인 화법과 시원한 유머가 참 공감 간다고 생각했는데 단연코 이 영화를 살려주는 캐릭터였다. 조연이라기엔 빠질 수 없는 주연 같고 이 분이 없었다면 아마 이 영화는 더욱 더 지루했으리라. 전형적이지 않은 다소 엉뚱한 할머니 캐릭터로 등장하여 중간에 찐웃음이 나오는 장면들이 여러 번 있었다. 할머니의 손자가 중간에 몇 번 '할머니는 할머니 같지가 않아요.' 하는 대사가 나오는 데 할머니 같지 않다는 건 아이에게는 다른 전형적인 할머니처럼얌전하게 쿠키도 구워주지 않는 할머니에 대한비난의 말이지만 듣는 할머니는 전혀 개의치 않는다. 개인적으로도 할머니라 하여 할머니 처럼 살면 안 된다고 본다. 할머니라 해도 한 명의 나이든 여인일 뿐 마음은 아직 어린 아이 같아야 동안 유지하며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천진난만하고 사고가 자유롭고 흥미로운 인물이라는 것.
윤여정 배우님이 지금 73세라고 하는 데 어느 인터뷰에서 보니 아직도 유머와 재치와 활기가 넘치신다. 실제로도 이 분에게는 할머니라는 단어는 어울리지가 않는다. 나도 나이가 들어도 항상 매력적인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외모는 나날이 쇠퇴해도 자신감 있고 솔직하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늙어갔으면 한다. 자기만의 세상에 살고 잔소리만 늘어놓는 꼰대가 되어서는 젊은이들에게 왕따가 될 뿐이다! 게다가 말년으로 갈수록 더욱 빛나는 사람이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사주에 말년복은 있다 하였으니. 나아~참! 어디 한번 믿어보자.)
미나리는 어디서든 뿌리를 잘 내리고 자라는 식물이라고 한다. 바질이나 깻잎 같은 것도 키워보면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잘 자라는 걸 볼 수 있다. 게다가 향도 좋고 맛도 좋다. 미나리를 매개로 하여 척박한 이민 생활을 꿋꿋하게 살며 이겨내는 모습을 비유했다고 하는 데 인생의 희노애락과 각종 험난한 파도를 겪어내는 우리 모두의 삶도 이와 비슷하리라. 윤여정 배우님도 한 인터뷰에서 '인생은 버티는 것'이라는 명언을 하셨다. 실제로 미국에 이민가서 캐쉬어로 일도 해보았고 이혼을 하고 아이들을 기르며 생계를 위해 버티며 일을 해오다 보니 나이가 들어 아카데미에서 상 후보에 오르도 자연스럽게 더 빛나게 되었다는 말씀. 그래서인지 영어도 자연스럽게 생존 영어 구사하신다. 생계형 배우이자 존버 인생!
지금 다소 힘들게 버티며 살아가고 있는 모든 분들에게 힘이 되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 강렬한 메세지는 없어도 마음에 잔상과 여운이 남으며 상당히 현실적이고 따뜻한 영화였다.
지극히 한국인다운 영화라서 그 한국적인 특별함 때문에 외국인들에게 더 호평을 받는 것 같다. ‘어~ 우리와 뭔가 다른 듯 비슷하고 공감이 가면서 참신한데.’하면서. 마지막 부분에 온 가족이 힘든 일을 겪고 지쳐서 함께 거실에서 뒤엉켜 잠을 자는 모습이 가장 인상적으로 남는다. 아침이 되면 다시 벌떡 일어나 언제 싸웠는 지 기억이 안 나는 것처럼 하늘이 무너지는 시련도 없었던 것처럼 열심히 각자 하던 일을 하고 살아갈 것 같다. 우리도 더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 때마다 가족이 주는 무조건적인 힘으로 인생을 살아가지 않는가? 타인과는 비교 할 수가 없는 가족이 주는 끓을래야 끊을 수 없는 원초적인 에너지가 있다!끈질기게 뿌리를 뻗어 내리고 잎을 피워내는 미나리 같은 질긴 생존력.
드라마다운 과장이 전혀 없이 실제 가족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고. 그래서 때때로 지루하기도 한. 하지만 결국 아웅다웅하면서도 서로 지지해주고 하루하루 버텨가며 살아가는 삶. 가만히 응원을 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