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수업을 마쳤다. 다음 수업은 오후 세시에 있으니 아직도 새 떼같은 세 시간이 남아 있다. 오래 간만에 아침에 일하러 나오니 피곤에 쩔었지만 집에 들어갔다 나오기도 애매한 시간이다. 마침 바로 옆 탄천에는 벚꽃이 화알~짝 피었다. 하루 밤새 마치 거짓말처럼.
수업을 마치고 아이와 다정하게 김밥과 만두를 나눠 먹은 후 홀로 근처 탄천으로 나왔다. '보라~사비를 털어 김밥도 사고 얼마나 마음이 따뜻한 샘인가 훗~'
집에 들어가려던 마음을 접고 오늘의 산책을 하기로 했다. 운전을 하고 지나가면서 슬쩍 보았을 뿐 아직 개나리, 벚꽃의 얼굴을 가까이서 마주 보지 못했다. 하루 한 시간의 산책 시간은 지킨다!
이곳은 탄천이라기엔 강처럼 제법 깨끗하고 넓은 물이 흐르고 있다. 산책하기가 여간 좋지 않다. 벌써 오후 햇살이 뜨거워지고 있으니 한낮의 산책 시간도 아쉽고 아까울 뿐이다. 흐드러지게 핀 개나리, 벚꽃 구경을 나온 직장인들이 간간히 보인다.
유난히 파란 하늘과 어우러지는 하이얀 벚꽃. 또 감탄을 아니할 수 없다. 이만하면 프로 감탄러이다. 개나리도 혹시나 제게 눈길을 주지 않을 새라 와글와글 피었다. 유치원 아이같이 샛노란 빛깔로.
한 시간의 산책을 마쳐도 또 한 시간이 남아 돈다니 기분이 좋아진다. 시간 부자인가? 바쁜 일상에도 잠시 휴식이라는 쉼표를 찍어주니 밤까지 일하는게 하나도 억울하지가 않다. 역시 삶에는 일과 휴식이 적절하게 짜맞추어 들어가야 한다. 어느 쪽에도 치우침 없게 적당한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시간은 커피 타임이다. 아~누구도 방해할 수 없는 자유의 시간을 마주하니 완전한 만족감이 밀려온다. 커피는 아침에 너무 피곤하여 두 잔이나 때려 마셨으니 달달한 플레인 요거트로 대신해야 겠다.
인생의 매 순간이 행복해지면 자연스레 행복한 미래로 가고 있는 것이다. 찬란한 미래가 오지 않는다 해도 오늘, 지금 행복하면 됐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유행어인가?
며칠 간 머리를 맴돌던 조금은 불쾌했던 에피소드도 떨쳐 내려 한다.
가는 일은 가고 오는 일은 온다. 별 다를 것 없이 늘 똑같은 나인데 누구는 못 붙잡아서 안달이고 어떤 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훌쩍 떠나간다. 뭐 어찌하랴? 소신대로 내 갈 길을 가고 내 할 일을 하면 된다. 미련없이 가는 일은 나와는 인연이 아닐 뿐이다. 이제는 이 세상의 모든 집착과 고민도 오래 담아두지 않고 훌훌 다 날려버릴 수 있을 것만 같다. 쓰레기 봉투를 버리듯이 무심하게. 죽기 전에는 쉽게 안 끝나겠지만.
어떤 아이가 나에게 자살하고 싶은 적이 없었냐고 물어봤다. 마침 설탕이 솔솔 뿌려지고 감자가 송송 박힌 맛난 치즈 핫도그를 먹고 있었다. 오랫만에 먹었더니 꿀맛이었다. 핫도그는 맛.있.다 라는 글을 쓸 뻔 했다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핫도그가 있는데 어떻게 죽냐?"고 대답했다. (핫도그를 못 먹고 죽을 수는 없다!)
핫도그 하나를 먹으며 이리 감동하는데 평생 죽을 생각 따위는 1도 없었다는 걸 눈치 챘을 거다. 아이는 어이가 없는 듯 살짝 웃더니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얘야. 서른도 금방이고 마흔도 금방이다. 아주 먼 미래 같지? 시간이 이렇게 빠르게 흐르는데 왜 미리 앞당겨 일찍 죽어야 하냐?가만히 있어도 곧 죽을텐데." 이런 말도 했는데 아직 세상을 1의 반도 모르는 십대의 아이가 제대로 알아먹었을지 모르겠다.
"나이가 들면 시간이 더 빨리 간다. 아니?"
"저도 알아요. 수업 시간은 엄청 늦게 가고 게임하는 시간은 빨리 가요." (잉? 알아먹은 거 맞나?)
나도 돌아 보면 십대에는 서른이 되면 어른이 되고 모든 것이 완벽하며 아주 늙은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십대에는 서른이라는 나이가 까마득했던 것이다. 꿈에 그리던 완벽한 이상형을 만나고 지극히 평범하게 아무 일 없이 잘 살 줄 알았다. (개ㅇ이나) 그 먼 미래인 것만 같았던 서른이 되어도 아직 세상은 힘들고 꿈은 이루어지지 않고 마음은 갈팡질팡 흔들리기만 하던데.
'십대의 아이야. 인생은 살다보면 살 만한 날도 있단다. 생각보다 그리 막막하게 길지도 않으니 핫도그처럼 달달하고 고소한 너의 삶을 즐기렴.' 이렇게 나에게 혼잣말을 한다. 살다보니 살아지더라.
다시 오지 않을 봄이 왔고 또 떠나갈 것이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