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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각사각 Jun 11. 2021

매일 산책

감사 감사

새벽녁에 빗소리에 잠이 깼다. 하루 종일 더위에 지친 나머지 그나마 존재하는 조그만 창문들을 모두 활짝  열고 잤더니 빗소리가 더 세차게 으로 울려왔다. 방안 기온이 거의 삼십 도에 이르고 있었다. 여름 장대비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밤새 내리는 빗소리는 지붕을 때리는 드럼 소리 같았다.


어제 밤에 하나의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어제는 201호 남자가 이사를 간다는 기쁜 날이었다. 이 남자와 두 번의 불쾌한 전화 통화 후 현관에서 멀리서 마주쳐 서로 외면을 한 후 이 이사날을 은근히 기다리고 있었다. 드디어 내 주차 자리를 하나 완전하게 얻어낼 얕고도 얕은 심산으로. 어제가 집주인이 알려준 이 남자의 이삿날이었기 때문에  밤 열시 삼십 분경에 수업이 끝나서 들어와 텅 빈 주택 앞에 속으로 노래를 부르며 막 주차를 했다.

그 때 바로 이층 남자의 어머니 정도로 보이는 낯선 아주머니가 나와서 내일 이사를 나가니 차를 빼라 하였다. "하아~아직 안 가셨나요?"이런 냉정한 문장을 내뱉었다. 내가 생각해도 참.

내가 화가 나는 점은 차를 다른 곳에 주차하라는 것보다는 이 아주머니의 말하는 태도이다. 이삿짐 트럭이 들어와야 한다고 설명을 차분히 하고 미안한 마음으로 부탁을 해야 할 처지에 밤 늦게 들어온 사람에게 왜 화가 난 투로 왜 무작정 차를 빼달라고 쏘아붙이냔 말이다. 무식하기 그지없도다. 이래서 사람은 말 한마디에 천냥 빚을 갚는다는 것이다. 이층 남자는 일면식도 없는 나에게 따박따박 하고 싶을 때마다 전화를 하더니 왜 이 주차장을 비워달라는 부탁은 미리 하지 않았는지. 나아~참~요지경 세상에 요지경 인간들.


아침에 일어나니 일곱시부터 날카롭게 짖는 개소리와 이삿짐을 옮기는 소리가 웅성거리며 계속 들려왔다. 대체 이 집은 겨우 팔 평 정도 밖에 안 되고 붙박이 가구와 가전제품이 다 있어서 난 이사올 때 달랑 책상 하나와  티비와 옷가지만 가지고 왔는데 이 분들은 세 시간동안 이사짐을 옮기고 있었다. 세 시간을 옮기다니 도대체 이 좁은 집에 가구나 물건을 얼마나 구겨넣은 것인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아서 일어나지 않으려는 몸과 환히 깨어난 정신으로 이사하는 소리를 열 시경까지 자다 깨다하며 듣고 있었다.


그리고 소음이 가라앉고 이층 남자가 이사를 나간 상쾌한 공간에서 가뿐한 마음으로 알차게 아점을 챙겨먹고 산책을 나왔다. 어제의 가열찬 비로 기온이 딱 알맞게 내려가 있었다. 이러니 요즘에는 비 소식도 반갑기만 하다. 산책하기 좋은 적정한 온도. 아마 25~27도 전후라고 보여진다. 몸에 자체 온도계가 달려있는 것처럼 추위도 더위도 많이 타고 기온을 잘 맞추는 편이다. 이러니 난 예민한 인간임을 인정하겠다. 하지만 또 감사하게도 건망증도 있고 때로는 매우 적극적인 행동과 다양한 활동을 하며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느라 뾰족한 예민함을 내려놓고 잊어버릴 때도 많다. 나이 들어가면 몸도 내 마음대로 조절이 안되며 서서히 날이 서고 비판적인 정신의 예민함도 무뎌진다. 얼마나 복잡한 세상 속에서 편하고 살기 좋은가?


구름이 잔뜩 낀 하늘에 감사하며 산책을 신나게 마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한잔 하였다. 이제 마트에서 금요일의 장을 보고 돌아갈 시간이다. 비오는 날도 좋고 흐린 날도 좋고 쨍쨍한 날도 좋다. 문득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시가 떠오른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매일 네가 좋다.' 이런 뉘앙스인데. 건망증 때문에 다시 찾아봐야겠다이런 긍정이 넘치는 정신상태이면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으리라. (ㅎ)

산책을 할 수 있게 해 준 흐린 하늘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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