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나이가 들어간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다. 내가 느끼는 나이듦은 정신은 아직도 철부지 어린 아이 같은 데 겉모습만 자꾸 의지에 반하여 퇴락하고 노쇠해지는 것이다. 그래서 몸과 마음이 따로 놀게 되고 가끔씩 지나가다가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게 되는 일. '저 거울에 비친 낯선 듯 익숙한 모습의 영락없는 아주머니는 누구인가?' 이러한 괴리감에 휘청이며 흔들리는 자아.
몸의 여러 곳이 착실하게 늙어가지만 요즘 내가 새로이 집착하게 되는 것은 손이다. 손이란 다른 사람에게 감추기가 어려운 신체 부위이다. 언제나 밖으로 나와 있으며 바로 눈에 띄는 신체 부위. 어떤 사람의 나이를 가늠해 보려면 목이나 손을 보면 알 수 있다고 한다. 얼굴의 주름은 미용성형에 쓰이는 실로 당기고 편다지만 유일하게 손이나 목은 첨단을 달리는 성형외과 시술을 받는다 해도 젊음을 가장하기가 어려운 부위이기 때문이다.
어릴 적 내 손은 백옥같이 희고 통통했더랬다. 이러했던 손이 몇 년 전부터 눈에 띄게 말라가고 힘줄이 보이며 지방이 빠져 나갔다. 빠지라는 뱃살은 죽어라 안 빠지고 어린 아기 같이 귀엽고 포동포동함을 자랑하던 손의 지방만 줄어가다니. 내~참 더러운 세상~
그것만이라면 또 봐줄 만 하지만 손등 곳곳에 두드러진 갈색 반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은 기미인가 저승점인가? 저승점이라니 아무리 저승에서 손짓하며 부르는 나이에 이른다 해도 참으로 기분 나쁜 단어이지 않은가? 게다가 이 점들은 가끔씩 간지럽거나 따갑기도 했다. 아마도 햇살이 뜨거운 대낮 시간에 운전을 자주하고 자외선을 많이 받아서 잡티가 생기기 시작한 것 같았다.
그 이후로는 자외선 차단 크림을 아주 듬뿍 바르기 시작했다. 얼굴과 목과 손, 손목을 지나 팔까지 거무스름하고 희끗희끗하게 햇볕에 탄 자국이 있는 곳에는 정성스럽게 많이. 처덕처덕.
그래도 부족한 것 같아서 운전을 할 때 장갑을 끼기로 결심했다. 초보 운전 시작하시는 김 여사님들이 하얀 면장갑을 끼는 이유는 무엇일까? 때로는 택시 운전 하시는 분들도 착용하시던데. 다한증으로 손바닥에 땀이나지 않는다면 면장갑을 착용하면 오히려 운전대를 잡을 때 미끄러지지 않는가? 마음대로 분석을 하자면 아마도 손에 잡티가 생기는 것을 방지하려고 하는 것일 게다.
다ㅇㅇ에 가서 장갑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차마 결혼식장도 아니고 하얀 면장갑을 끼는 건 우스운 것 같아서 나름의 패션을 지켜줄만한 장갑을 찾았다. 어떤 모양이든 몇 천원 밖에 하지 않으니 마음껏 고르면 된다. 그 중 자전거 라이더용 장갑이 하얀 손가락에 까만 바탕이 조화를 이룬 것이 힙하다고 생각되었다. 게다가 손가락 중간 아랫 부분이 잘려 있어서 손가락의 움직임도 자유롭고 이 더운 여름에 답답하지 않고 한결 시원해 보인다. '그래 바로 이 것이지.'
이 장갑을 끼니 어디 가서 권투나 격투기라도 한판 해야 할 것 같은 눈에 띄는 비주얼이다. 혼자 부산스럽게 괜히 과장하는 것이겠지만 나름 외모는 조신하여 '부잣집 맏며느리감이다.' 라는 소리를 듣는 자로서는 꽤나 파격적인 톰보이나 운동선수 같은 모습이었다. 그래서 왠지 비실비실하던 몸에 수퍼 파워가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마치 공상과학영화에서 평범한(?) 갑부인 인간이 번쩍거리는 빨강과 금색의 멋지고도 화려한 수트를 입으면 하늘을 나는 막강의 아이언 맨이 되는 것처럼. 덕분에 운전할 때도 주변 운전자분들이 성깔 있어보여서 함부로 경적을 울리거나 끼어 들지 않고 슬슬 피하고 무서워 해줬으면 좋겠다. 행여나 그럴까마는.
그나저나 어두컴컴한 주차장에서 1.5돋보기를 쓰고 글을 쓰니 새삼스럽게 돋보기의 위대함을 실감할 수 있었다. 정말 잘 보인다. 어벤저스는 개뿔. 할머니 비주얼에 더 가까워지고 있구나.
바로 이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