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점을 받아야 할 이유?

무엇일까? 난 모르겠소

by 사각사각

한 학생의 수업 상담에 갔다. 마침 까페에서 만나기로 해서 얼마 전 받은 커피 쿠폰을 사용하여 음료와 케익을 두고 학생과 마주 앉았다. 이 학생은 고등학생 인데도 외모도 성숙하고 무엇보다 태도가 너무 근엄하고 어른 같았다. 섣불리 반말이 나오지 않는 아우라가 있는 학생이랄까? 웃음기를 싹 뺀 딱딱한 분위기에 눌려 공손한 존댓말로 대화를 시작하지 아니할 수가 없었다.


학생은 미국 대학 진학을 앞두고 있어서 우리나라 수능에 해당되는 SAT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SAT는 일년에 네 번 시험을 보기 때문에 올해 응시를 하려면 8월과 10월, 이제 두 번의 기회가 남아 있는 셈이었다. 일년 조기 졸업을 한 남다른 학생의 포스를 느끼며 조심스레 물어보니 학교에서는 전교 일등을 한다고 했다. "정말 훌륭하다."라는 상당히 바보스러운 연발의 감탄사 외에는 할말이 없을 정도였다.


SAT시험은 이미 보았다고 하는 데 800점 만점에 거의 700에 가까운 점수였다. 이 정도라면 대학에 가기에 충분한 점수가 아닐까? 지금도 충분한 것 같아서 의아해서 질문을 했다. 점이 목표라 하였다. 지대한 목표 때문에 힘들 것 같아 마음 한편에서는 걱정이 되기도 했다.

"만점을 받으려면 스트레스가 너무 크지 않니?"

"아니오, 제 목표니까요." 학생은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밀랍 인형 같은 표정으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세상 진지한 학생에게 어리바리한 질문을 던진 내가 다 무색해지는 순간.


하지만 이 학생은 시종일관 무표정했고 한시간 반동안 감정이 거의 드러나지 않는 말이나 태도를 보이고 있었다. 유독 학업 성적이 뛰어난 학생이긴 했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원만할까 의심스럽기도 하고 자기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때 크게 실망하지 않을까 우려가 됐다. 한번밖에 만나지 못한 학생에게 괜한 노파심으로 걱정을 하는 지도 모르지만 얼마 전 학업 스트레스 때문에 자살한 학생이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이 내내 마음을 떠나지 않고 남아 있었다.


어제 다른 학생과도 최근 자살한 고3 학생에 대한 대화를 나눴는데 그 학생이 냉소적인 얼굴로 대뜸 말했다.

"그건 사실 부모님이 아이를 죽인 거죠."

그 말에 상당히 동의를 하지만 아이의 입에서 냉랭한 어조의 문장이 내뱉어지는 것이 머리 속에 경종을 울렸다. 이 아이의 학교도 내노라 하는 과학고, 외고 등의 학교에서 아슬아슬하게 떨어진 학교의 모범생들이 대거 모여 있어서 높은 내신 등급을 받기가 하늘에 별 따기 수준이었다.


이러하여 이 학교의 배정을 기피할 정도라고. 과목별로 80점대 중반 이상을 받아도 3등급에 턱걸이를 하는 수준이었다. 이 학교에서도 작년에 성적 비관으로 자살한 학생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우리는 매년 이런 비극적인 뉴스들을 주기적으로 접하면서도 어째서 이 심각한 문제에 해서 깊이 다루지 않는지 의문이다. 이 문제가 진정 심각하며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 진로를 정하도록 지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과 토론이 이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가 자살률 세계 1위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이 수년동안 계속되고 있는 것도 마음 아픈 현실이다. 이미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 있다고 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중 우리가 미처 돌아보지 못하는 일부는 왜 자신의 삶을 저버리는 불행한 선택을 하는 것인가?


언제나 어디서나 일등이 될 수는 없다. 사람이 살다보면 일등도 이등이나 삼등이 될 수 있다. 선거에 나오는 내노라 하는 세상을 쥐락펴락 하는 사람도 일등이 되지 못하고 선거에서 패배하고 고배를 마시는 것과 같다. 모든 면에서 완벽하고 뛰어난 사람들도 재도전을 하더라도 이 실패를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기를 바란다. 어제 수업을 한 다른 상위권에 있는 한 아이도 "저는 돈도 많이 벌고 싶지 않아요. 그 돈을 쓸 시간이 없는 것 같더라고요. 내 일을 하고 인생을 즐기면서 아주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라는 어른스럽고도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득도한 아이 한 명 더 추가.


결국 SAT를 준비하는 학생에게는 한번의 수업 이후에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는 연인처럼 단호하게 차였다. 어쩌면 나는 최상위권, 일등이라는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의 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의 지고지순한 절대 과제를 논할 자격이 없는, 지극히 보통으로 살아온 인간일수도 있다. 어찌 되었든 이 학생의 정신 건강과 앞날의 행복을 간절히 빈다. 할많하않.

일등이 아니어도 잘만 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