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전부터 계속 미용실에 갈 틈을 엿보았다. 여자들에게 미용실이란 기본 두 세시간이 걸리는 만만치 않은 장소이기 때문에 한번 갈라치면 마음의 준비가 단단히 필요하다. 꼼짝 않고 미용실 의자에 꼿꼿하게 앉아서 어깨죽지가 묵직해질때까지 머리를 할 체력도 남아 있는 날이어야 하고.
수업이 일찍 끝나는 날이라 벼르고 벼르던 미용실을 찾아 나섰다. 가기 전에 갑자기 배고픔이 몰려와 저녁을 든든히 먹었다. 지글지글 가스 불에 끓이며 먹는 돼지불백. 처음에는 홀로 다소 게걸스럽게 쌈을 싸야 하는 것에 당황했지만 이성을 잃은 식욕에 이끌려 매콤한 고기를 싱그러운 상추에 싸서 연신 먹어대는 혼밥의 경지에 올랐다. 곧 철판에 고기 이 인분도 굽는 혼밥의 신이 되려나. 이른 저녁 시간이어서 식당이 한산했고 허기가 몰려와서 주변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우걱우걱.
식당을 나와 동네의 고만고만하고 아담한 규모의 미용실 탐색에 나섰다. 몇 달전 들른 미용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서 새로운 미용실을 매서운 눈으로 검색했다. 코로나 때문인지 일찍 문을 닫은 곳도 있고 정기 휴무일인 곳도 있었다. 몇 군데를 거쳐 마침내 만만하고 적당해 보이는 장소를 찾았다. 미용실 주인분의 머리 모양이 세련되고 관상이 온화한 곳. 손님이 두 세명 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일 것.
두 분의 나이 지긋하신 아주머니가 계셨고 간간히 남자 손님들도 들러서 빠르게 머리를 자르고 나갔다. 이만하면 동네 미용실로는 장사가 잘 되는 편인 것 같아서 안심이 된다. 하릴 없이 한참 신나게 수다 삼매경에 들어가신 아주머니와 원장님의 대화를 엿들었다. 내 옆 자리에 조금 모자라 보이는 청년이 앉아 있었는데 그 분이 아들인 듯 함께 유럽 등 해외 여행을 다니셨다고 한다. 아들이 외국음식을 먹지 않아서 항상 라면과 한국음식을 싸들고 다니신다고. 아~대단하시다. 그런 날이 다시 곧 오시길.
드디어 내 차례가 되어 긴 머리도 지겹고 하여 싹뚝 자르고 염색을 해 달라고 주문을 하였다. 원장님이 뜬금없이 긴 머리가 아깝다고 하셨으나 내 머리는 왕성하게 잘 자라니 걱정 말라 하고 감당이 안 되는 흰머리 때문에 짜증이 솟구쳐 언젠가는 아예 숏 컷으로 자를까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아직 어려보인다고 하여 나이까지 당당하게 밝히고 은근히 속으로 만족스러워하였다. (케케~) 미용실은 아무말이나 하지 않고 입을 닫고 있기에는 너무도 지루한 장소.
원장님은 내 주문대로 머리를 과감하게 단발로 자르고 븕은 빛이 도는 옅은 색으로 염색을 시작하셨다. 염색약을 전체적으로 바르고 다시 이차로 원장님이 따님이 두피에까지 꼼꼼하게 바르기 시작했다. 마치 아톰같이 온 머리가 까맣게 염색약으로 뒤덮였는 데 두피가 심하게 차갑고 따가운 느낌이 들었다. 혹시나 잘못될까 우려되어 원래 따가운가 물어보니 괜찮다고 하시며 생뚱맞게도 비듬균까지 제거된다고 한다. 얼마나 독한 염색약이면. 순간 어이가 없었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두피는 얼마 지나니 다행히 진정되었다.
결과물은 언제나처럼 어색하고 단번에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기대했던 것만큼 세련되고 날렵한 컷이 아니었고 어딘지 전형적인 마음씨 좋은 보험 아주머니 같았다. 머리 색도 다소 옅은 붉은 빛이어서 조금 더 채도가 짙은 것이었더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머리 모양보다는 얼굴이 문제겠지만.
하지만 원장님은 퇴근을 서두르고 계셨고 점심도 제대로 못 드셨다며 저녁 생각으로 머리 속이 가득해보이셨다. 나의 인내심도 이미 바닥이 났고. 뜬금없이 내 저녁 메뉴를 묻기도 하셨다. 주책없이 수다를 이어가며 식당 이름과 메뉴를 읇고 다른 식당까지 추천해 드렸다.
일단은 치렁치렁 길고 엉키는, 때로는 퍼머머리 덥수룩한 해리포터의 헤그리드를 연상케 하는 머리가 반은 잘려나가서 몸도 마음도 가뿐한 것에 만족한다. 항상 느끼는 바지만 새로운 머리의 적응기가 필요하다. 장담은 못하겠지만 내일 보면 더 마음에 들 수도 있다. 아침마다 머리 감기가 한결 수월해진 것만으로도 이 푹푹 찌는 여름을 조금은 시원하게 버텨낼 수 있으리.
시원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