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골목을 걸어서 공원으로 갔다. 어제 오후에는 소나기를 몰고 오는 듯한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와서 마음이 다 날아갈 것 같았다. "대박~너무 시원해."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올 수 밖에 없는 기분 좋은 바람. 오늘은 바람이 간간이 불어오나 여전히 여름 햇살이 뜨거웠다. 여름은 무엇이 그리 아쉬워서 우리 곁에 계속 머무르려 하는가.
동네에는 몇 십년은 된 것 같은 오래된 주택들이 있다. 낡고 칠이 벗겨지고 바랜 벽, 녹이 슨 철제 다리, 창문이라기엔 너무도 작은 구멍 같은 창이 있는 옛날 집들을 보면 그리움이 몰려온다. 새 건물이 주는 신선함도 있지만 오래된 집은 그곳에 오래 살아온 사람처럼 말을 걸어온다. 어제도 동네 주택의 돌로 만든 베란다를 보고 문득 한 장면이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에 그 비슷하게 생긴 베란다에 앉아서 다리를 까닥거리면서 노을이 내려 앉는 걸 보았다. 마음이 주홍빛 햇살로 물들었던 기억.
그 베란다 밑에는 진돗개의 사촌쯤 되는 누렁이가 한마리 묶여 있었다. 그 당시에는 반려견이라는 인식보다는 개를 집을 지키는 가축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그 누렁이를 무서워해서 몇 미터 위에 베란다에 앉아서 고구마를 먹으며 껍질을 던져주거나 할 뿐 가까이 가지는 않았다. 착하게도 넙죽 넙죽 받아먹는 게 재미있어서. 끼니때가 되면 사료를 주는 게 아니고 집에서 먹던 국에 밥을 말아서 양은 그릇에 주고 어슬렁거리며 다가오는 개를 보면 소리를 지르며 도망오곤 했다. 그 개는 이사오기 전에 어느 날 아버지의 개소주로 만들었다고 하여 어린 마음에도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아슴푸레 난다. 집에서 키우던 개를 드신 아버지라니.
공원에는 풀벌레 소리가 요란하나 그 소란함도 점점 잦아드는 것 같다. 여름이 서서히 물러가고 가을이 오는 시점이다. 맹렬하던 여름도 가을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인간도 때가 되면 자리를 내주고 후배가 그 자리를 채우도록 물러가야 하는 것처럼. 미련 없이 돌아서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답다고 했던가. 지난한 여름이 우리 곁을 떠나가고 있다. 여름을 벗고 떨쳐 일어나 새로운 계절을 맞이해야 하는 때.
서울 숲은 매우 푸르렀다. 이 서울 숲이 처음 생겼을 무렵에는 앙상한 어린 나무 몇 그루만 있었는데 지금은 온갖 키 큰 나무가 무성하였다.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인간도 자연도 세월을 따라 계속 변해간다. 은행 나무 숲에서 매미의 허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걸 발견하였다. '아쉽지만 매미야~ 너도 내년을 기약해야 겠다. 너의 자손들이 네 자리를 대신할 테니 뒤돌아보지 말고 네 길을 가렴.' 매미도 한철이라고 이제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왔다. 마지막까지 혼신을 다해 울어대는 매미가 인간처럼 느껴져서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자~여름이 가고 있으니 순순히 안녕. 이 여름은 몇 십년 후에 어떤 순간으로 기억이 될까? 풀벌레 소리와 평온이 가득했던 시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