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를 고치러 왔다. 지난 번 타이어가 터졌을 때 얼라인먼트를 손보아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타이어가 터지는 것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어서 '얼라인먼트 얼라인먼트'를 되뇌이며 생소한 단어를 외웠다. 타이어 가게에 가야 한다고 했는 데 게으르고 시간이 없어서 두달 정도 미뤄왔다. 동네 차 수리점에 갔는데 이건 타이어 가게에 가야 빨리 수리된다고 했다. 역시 타이어 가게에 가라고 한 이유가 있었는데 귀담아 듣지 않고 마음대로 수리점에 갔구만.
음~ 이 차는 이미 2006식 이어서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벌써 15년차가 되어 가니 중년의 한 인간처럼 곳곳이 멀쩡하지 않은 느낌이다. 가끔씩 운행을 할 때 차가 이리저리 심하게 덜컹거리면 간절하게 '조금만 더 버텨다오.'하고 위로의 말을 건네게 된다. 차만 불쌍한 것이 아니라 이 몸도 함께 건재하게 살아야 겠으니. 이미 군데군데 녹이 슬고 있고 볼썽사나와서 흰색 스프레이를 사서 살짝 덮을까 하는 데 이 또한 미루고 있다. 어쩌면 조만간 이 차와 영영 이별을 고해야 할 수도 있다. 여기저기 수리를 해도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은퇴를 선언하고 딱 멈춰버리겠다면 영면을 하도록 보내줄 수 밖에 없다.
소형차를 살까 궁리는 하고 있다. 지긋지긋한 주차 논쟁을 겪고 나니 어디든 쏙 들어가고 유지비도 적게 들어가는 소형차가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는 거의 항상 혼자 타니 내 몸만 적당히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 게다가 거의 하루에 40~60 킬로 이상 운전을 하니 기름값도 만만치 않다. 돈 벌어 잘 살아보자고 돌아다니나 일은 최소로 하고자 꿈꾸니 최대한 유지비를 줄이는 게 좋겠다.
이번 주는 초반에 우울감에 잠깐 빠졌으나 다시 정상으로 돌아와서 열심히 살았다. 인간의 마음이란 종 잡을 수가 없다. 일요일부터 월요일까지 하나의 감정에 사로잡혀서 마음이 바다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운전을 하면서도 주책없게 폭풍 같은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고 가출했던 이성이 다시 제자리에 돌아와 보니 결국 현실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더 이상은 뒤를 돌아볼 필요조차 없는 일이고. 그런데 그 일로 눈물바다에 빠져서 수장될 뻔했다. 인간이 항상 이성적이거나 항상 감성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둘이 적절하게 버무려져야 이상적인 인간인 것. 일요일 오전, 카페에서 글을 쓰면서 눈물, 콧물을 끊없이 흘렸다. 손님이 한명 밖에 없어서 다행이었고 주인분도 좀 어이가 없었겠지만, 혹은 눈치를 못 챘을수도 있고, 마음껏 홀로 감정의 바다에서 팔다리를 허우적거렸다.
마음은 다시 평온으로 돌아왔다. 자가 진단을 해보기에 우울증이란 이 주정도 지속되어야 한다고 들었다. 게다가 우울증에 걸리면 무력감에 시달리고 방에서 잘 나오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울면서도 꿋꿋하게 운전을 하고 멀쩡하게 수업을 하고 돌아다녔으니 우울증이 아니라 판단되고 그러니 아직 괜찮다. '불굴의 정신력. 칭찬해!' 이틀 정도 하나의 상상에 사로잡혀 운 것은 정상적으로 여겨지니 다시 원래대로 일상을 잘 살면 된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맞는 결정이었더라도 마음은 때때로 아플 수 있다. 가끔씩 지나치게 감정적인 인간임을 인지하면 된다.
요즘 글을 자주 쓰지 않는 것은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개학이 시작되었고 학생들이 한명씩 늘고 있다. 이 수상한 시절에 돈을 벌어 월세도 꼬박꼬박 내고 독립하여 살고 있다니 너무나 고무적이지 않은가.
내 자신이 만족스럽다. 희안하게 자존감이 높은 인간이나
이 거친 사회에서 살아가려면 스스로 자신을 긍적적으로 평가하고 자존감을 높이지 않을 수 없다.
뭐~ 나 자신과 삶이 마음에 흡족하다는 데 딴지를 걸 일은 없지 않은가. 결국 우울증에 걸리기에는 자기효능감 내지는 자기애가 드높다.
비 오는 주말. 세상이 끌어내리는 자존감을 높이며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시길 빈다.
얼그레이 티 만족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