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분과 갑자기 진지한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 분을 십년 가까이 알고는 있고 여행도 함께 많이 다녔으나 자세한 경제 상황이라든지는 나누어 보지 못했다. 이 분의 남편분이 의사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으나 본인이 이야기하지 않는 데 개인의 경제 상태에 대해서 굳이 물어볼 기회나 이유는 없었다.
이 분은 최근에 겪은 자녀의 진로문제로 스트레스가 심하셨던 것 같다. 요지는 미국에 자녀를 유학 보내어 컴퓨터 학과를 전공하고 있었는데 의대로 다시 편입을 하였다. 그런데 미국의 영주권 신청이 거부되면서 의대까지 그만두어야 했고 자녀는 다시 원래 컴퓨터 관련학과로 돌아갔다. 이 과정을 수 개월동안 겪으며 엄청난 고민과 번민을 하셨던 것 같다. 꿈꾸던 자녀의 미래가 바람대로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현재 보유하고 있는 집이 30억에 이른다는 것을 고백하셨다. 이 때 우리는 함께 여행 중이었고 다음날 6시에 기상하여 8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야 해서 무척 피곤했다. 도착 후에는 몇 시간 후에 수업을 해야했다. 하루 종일 패키지 여행에 끌려다니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달달 볶여서 눈만 감아도 잠이 올 상황이었다. 순간순간 미지의 여행지에서 즐겁기는 했으나 몸은 녹초가 된 상태로.
지인분이 하고 싶은 말이 많으신 것 같아서 불은 이미 껐으나 계속 들으며 나도 답변을 하긴 했다. “30억에 이르는 집을 소유해도 마음이 공허하다.” 하, 이 부분에서 참 공감이 되지 않았다.
30억이 있다면 마음이 공허하지 않을 것 같다. 일단 하고 있는 일을 살포시 접고, 혹은 대폭 줄이고,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면서 남은 인생을 꽉꽉 채울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이 분이 공허하다는 것은 자녀의 문제가 원하는 방향으로 해결되지 않아서인 것이 주된 이유인 듯 했다. 피곤하여 잠에 빠져들려고 하는 상태여서 나도 생각하는 바를 필터없이 마구 뱉어놓았다. 나름의 교육관이랄까?
일단 개인적으로는 의사라는 직업을 그리 좋은 직업이라 여기지 않는다. 장시간 일을 너무 많이 해야 하고 고객님들도 어디가 아프고 힘드신 분들이어서 서비스를 해드리기가 상당히 힘들 것 같아서이다.
반대로 프로그래머라던지 개발자로 불리는 직군을 부러워한다. 단편적인 경험이지만 지인 중에 한 명이 디지털 노마드 생활을 무척이나 행복하게 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만 (세상 쉬운 일은 없다!) 이 분은 디지털 노마드로서 온라인으로 일하고 마음이 내키면 날씨도 최상인 태국의 치앙마이 같은 곳에 노트북을 하나 달랑 들고 가서 두 달씩 머물면서 일하곤 했다.
세계 어디서도 노트북 하나면 일도 하면서 여행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세상 부러운 직업이었다.
이 일례들을 이야기하며 컴퓨터를 전공하는 것이 다른 직업보다 더 나을 수 있다고 의견을 피력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자녀가 의사가 되려는 의지가 없는데 부모님이 그 꿈을 강요하는 것을 반대한다. 이것이 자녀에게 심한 스트레스를 줄 수 있고 나중에 원치 않으면 의사라도 그만둘 수 있기 때문이다.
물질 만능의 시대여서 요즘에는 주식, 비트코인 광풍이 불어서 중학생도 주식을 한다는 말을 듣곤 한다.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경제에 대해서 배울 수 있다면 주식이든 비트코인이든 경험을 해보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런 방법으로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 만연해지는 건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혹시라도 보통 사람들이 힘들여 일을 하는 지극히 평범한 가치가 폄하될까 걱정인 것이다. 주변에는 주식으로 돈을 번 사람들도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과도한 투자로 원금까지 잃는 경우도 꽤 많았다.
주식이나 비트코인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경우만 과장되게 홍보되고 그 정보를 제공하며 이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 이 사람들도 실제로는 처음에 이익을 얻었다가도 이후의 잘못된 투자로 크게 손해를 보는 경우가 있는데도 그 부분은 감추고 말이다.
최근에 돈에 대한 깨달음을 얻게 되려는지 주변에 경제적으로 성공한 분들을 종종 만나게 된다. 내가 느끼는 바는 이 분들이 모두 자신이 가진 부를 온전히 누리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몇십억이 되는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거나 사업체를 운영해도 누구보다도 검소하고 부지런히 일하시는 분들이었다. 어쩌면 남보다 한 수 위로 더 열심히 노력하고 일하지 않으면 이 ‘경제적인 부’ 자체를 얻을 수가 없는 게 아닐까 싶다.
또 한 가지 사실은 경제적으로 부유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풍요롭지는 않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끝없이 부를 쫓으려는 마음을 다시 한번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돈이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얻으려는 행복과 만족감을 주지 못한다면 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그 뒤를 쫓아야 하는 건가?
마지막에 행복을 얻고자 부유해지려 한다면 그 목표를 달성하고 나서 진정으로 마음에 만족감을 느끼게 될지 재고해봐야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어보았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바닥을 치는 경험을 했다. 그로 인해 깨닫게 되는 점도 많았고 전반적으로는 무소유에 가까운 삶을 지향하게 되었다. 날마다 일을 하고 그 일로 평범한 삶이 꾸려지는 것에 감사한다.
30억 부동산을 소유하지 않아도 8평짜리 원룸에서 보일러를 한껏 틀어놓고 만족하며 살고 있다. 뜨끈한 바닥을 찜찔방처럼 누리고 쉬면서 마음에 효능감과 안도감이 차오른다. ‘도시 가스비도 얼마 나오지 않으니 큰 집을 소유하지 않아 천만다행이다’ 이러면서.
이래서 INFP유형이 가장 돈을 못 번다는 속설이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인생의 소소한 순간들에서 가장 행복감을 느낀다니 돈이 다 필요 없는 유형이지 않을까. 현실을 떠난 이상주의자들이 사는 다른 세상으로 가야 할까.
돈이 많아도 행복하지만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