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만한 부엌 벽에 붙어 있는 검은 생명체가 눈에 띄었다. 갈색 빛깔의 곤충 두 마리가 엉덩이를 붙이고 있는 현장을 보니 짝짓기가 분명하다. 아~가까이 가서 들여다 보니 쌀벌레 두 마리가 다정하게 붙어 있는 상황이었다. 휴지를 가지고 가만히 눌러서 저항도 하지 않는 둘을 함께 저 세상으로 보내드렸다. 눈을 돌려 살펴보니 약간 떨어진 다른 곳에도 한쌍이 사랑을 나누는 중이었다. 이 분들도 조용히 저승으로 보내드렸다.
아~이 삼복 더위에 부엌 한 켠에 둔 쌀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혼자 있다보니 쌀을 조금씩 산다. 1킬로에서 많아야 4킬로 정도까지. 마트에 가서 한번에 들고 올 수 있을 수 있는 만큼만 사고 있었다. 여름이 되어 밥 하기도 뜸해지고 이 쌀을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거기서 쌀벌레가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쌀 비닐봉지 안을 들여다 보니 동글동글하게 뭉쳐진 쌀들이 보이는 것이 자손들을 충실하게도 낳아놓으셨다.
어린 시절에도 쌀 벌레를 본 적이 있다. 이 맘 때 더운 여름이면 방안에 짙은 갈색의 느릿느릿 날아다니는 벌레가 등장하기 시작하고 엄미와 쌀을 하얀 달력 종이 위에 모두 쏟아놓고 놀이를 하듯 벌레를 골라낸다. 뭉쳐진 쌀알을 눌러서 해체해 보면 안에는 꼬물거리는 하얀 애벌레가 있다. 엄지 손톱 끝의 반만하고 통통한 그럭저럭 귀염성이 있는 모양새. 이 녀석들을 색출하여 하나씩 꾸욱 눌러 무지개 다리를 건너가게 해서 쌀을 구출해야 하는 것이다. 먹고 사는 데 소중한 쌀을 허락도 없이 점령해 나가는 무험한 침입자들을. 풀을 드시지 않고 쌀을 먹는 곤충이라니 참 독특한 식성이시네.
쌀을 고르기도 귀찮은 의욕이 바닥 끝까지 상실되는 무더운 여름날. 우선 쌀봉지를 반짝 들어서 냉장고에 우겨 넣었다. 냉장고도 작은 용량이어서 남은 쌀이 몇 킬로밖에 안 되어서 다행이다.
그리고 인간의 욕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본다. 날씨가 더운 데 쌀을 미리 냉장고에 챙겨넣지 않은 무심함도 문제지만 결국 벌레가 생길 만큼 많은 양의 쌀을 사둔 것이 잘못이다. 이제 여름이 지나기 까지는 집밥을 하기도 어려울 것 같으니 장 보기도 자제해야겠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더운 데 이글거리는 가스불 앞에서 요리를 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진이 빠지는 일이므로.
쌀벌레를 보면서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 대한 자각이 생기게 되었다. 어떤 것도 필요 이상으로 모아놓고 쌓아놓지 말아야 겠다는 다짐과 함께. 벌들도 벌통에 언제 먹을지도 모르는 꿀을 죽자 사자 모아 놓으니 인간들이 옳다구나 좋아라하며 쏙 빼먹지 않는가? 그나저나 애벌레들은 냉장고 안 늦가을처럼 추운 기온에서 죽었을까 살았을까? 궁금해진다.
인류의 미래 식량은 벌레라고 하던데 단백질이라 여기고 밥을 해서 그냥 먹어볼까나. 인간이 벌레를 주식량으로 먹을 때까지는 살기 싫도다. 맛나는 게 천지인데 왜 배도 안부를 것 같은 벌레를 먹으려 계획하는지. 그래서 영화 '설국 열차'에서도 바퀴벌레를 마치 양갱같이 생긴 단백질바로 만들어서 먹었던 걸까?
환경 보호를 위해 고기는 줄여도 벌레를 먹느니 생선, 과일, 채소를 먹으면 된다. 건조한 귀뚜라미는 먹어 보니 오징어 같은 짭짤한 해산물 맛이 나고 괜찮긴 하였다. 브랜드명도 무려 귀요미. 어디 한번 쌀벌레도 시식을 해볼까!
벌레는 안 먹겠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