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이라는 행복

Couldn't be better 더 이상 좋을 수 없소.

by 사각사각

토요일 아침 수업을 다녀왔다. 이 수업도 오늘로 종결이 되었다.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수업의 전면 개편시기인 가 보다. 아~ 시원섭섭하다는 것은 바로 이런 감정이다. 이 아이는 실용음악을 전공으로 선택하여 진학할 것이고 영어공부에는 수개월간 관심이 없는 상태였다. 어머니의 고집으로 아이는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영어 수업을 받고 있었지만 공부에 의지도 없고 입시에도 관련이 없어서 진도는 지지부진하기만 했다. 기말고사도 엉망. 결국은 마지막 수업이 되었다.


이상하게도 금요일 밤마다 잠을 설치곤 했다. 매일 언제 잠이 들었는지도 모르고 쓰려져 자다가 금요일만 되면 눈이 말똥말똥 떠지고 쓸데없이 sns를 여기저기 기웃거리다가, 겨우 잠에 들었다가 새벽에 또 반짝 깨고 만다. 몸이 불금을 기억하고 잠을 거부하는 것인가? 아~ 이러하니 토요일 아침 아홉시 반에 정신을 차리고 발딱 일어나 수업을 가는 것은 무리수였다. 여차 저차하여 몇 달을 지속하기는 했으나 이 수업이 빠지는 것은 마음속으로 심히 다행스럽기까지 하다. 마치 오랫동안 만난 연인과 이별을 고하고 싶은 데 미안하여 말을 못 꺼내고 망설이고 있는 찰나에 상대방이 먼저 이별이라는 단어를 꺼내서 남몰래 안도의 숨을 쉬는 것과 같다고나 할까? 아이는 오로지 드럼에 푹 빠져 매진하고 있고 그 일을 무척 좋아하는 것 같으니 잘 된 일이라 생각한다. 아이와 악수를 하며 다시 연락을 하라 하였고 웃으며 헤어졌다. 다시 만날지는 기약할 수 없으나 뒤에 남겨진 찜찜함이 없는 가뿐한 이별이었다.


집에 와서 다시 잠을 청하려 하였으나 청개구리처럼 정신이 맑아진다. 아침에는 몽롱하였으나 몸도 충분히 쉬었고 이제 정신이 깨어나고자 하나 보다. 그렇다면 어제 잔뜩 사다 냉장고를 채워놓았으니 치킨에 샐러드에 치즈 토스트를 먹으며 나의 작은 방에서 원없이 딩굴거리면 된다. 오늘도 별다른 계획은 없다. 일주일동안 손가락 하나 대지 않은 방 청소를 하고 오후 다섯 시에 줌으로 한국어를 공부 하는 인도네시아 학생들을 만나면 된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좋은 점은 무엇일까? 더 이상 무언가를 열망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이다. 손에 잡히지 않아 안타깝고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 없는 홀가분하고도 단순한 삶. 어제 아이와 수업을 하다가 여행에 대한 글이 나와서 물어봤다. “너는 어느 나라에 가보고 싶니?” 아이는 하와이(괜히 신혼 여행 가냐고 타박)라고 했고 아이가 다시 내게 물었는데 이탈리아 혹은 스페인이라고 대답했지만 전혀 관심이 없는 건 아니라도 딱히 마음에 간절히 와 닿는 소망은 아니었다. 무언가 흥미를 줄만한 그럴싸한 답을 하기 위함이었을 뿐.


유럽은 한 번 가보았고 캐나다도 두 번, 그 외에도 동남아의 여러 나라 베트남, 태국, 필리핀 등등의 나라에 여행을 다녀보았다. 이제 더 이상 미지의 나라에 대한 동경으로 마음이 간질간질 설레고 ‘언젠가는 꼭 그 나라 땅을 밟으리.’ 하는 뜨거운 바람이 사라졌다. 기회가 된다면 동남아의 한 나라에 여행이라기 보다는 주민처럼 몇 달 동안 체류를 해보고 싶기는 하다.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고 일도 하고 근처 해변에서 산책도 하고 특별한 여행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 그 나라 사람들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

물론 시국이 시국인지라, 코로나 확진자가 1,300여명이 넘고, 거리두기는 4단계로 격상을 한다고 하고 외국 여행은 꿈도 꾸지 않는 시절이라, 현재는 해외 여행이란 것을 지레 포기하여 그럴 수도 있다. 혹은 이미 가 본 자의 여유랄까?


이제야 나의 삶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었다. 아무 일 없이 일어나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카페에 가고 산책을 하는 누구도 딱히 부러워하지 않을, 새로울 것이 없는, 지루할 수도 있으나 평화롭기만 한 삶을. 오늘도 아침 수업을 마치고 집에 들어오며 단지 낮잠을 늘어지게 잘 궁리에, 마음에 스며드는 안도감과 평안함의 공기를 느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이 좋도다.

아마 이, 삼십대에게 이러한 루저 같은 소리를 하면 공감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늘 계획하고 희망하고 떠나고 싶어 하는 아직 에너지가 활화산처럼 폭발하는 때. 이제는 몇 십년에나 한번 잔잔하게 폭발하는 휴화산에 가깝다.


인간관계의 지속성에 대한 미련도 버리고 있다. 오래된 한 사랑을 떠나보냈고 또 다른 사랑이 올 수도 있지만 애써 찾아다니거나 애가 타게 바라지는 않는다. 마음은 오락가락 하지만 인간에게서 얻을 수 있는 사랑의 한계에 한편으로는 회의를 느끼고 있다. 무엇을 위해 그토록 긴 시간을 모든 것을 믿고 쏟아부었던가? 그 또한 내 의지로 선택을 하였고 그만의 의미가 있는 시간이었겠지만 지나 온 시간이 아깝고 허무하달까? 다른 보통의 인간관계에서도 예전보다는 냉정을 유지하고 그 인연이 다할 때 돌아서는 법을 배운 것 같다.


지금은 늙음까지도 서서히 받아들여하는 때이다. 아무리 마음이 청춘이라지만 몸의 곳곳이 멀쩡하지 않다고 아우성을 친다. 자연스레 건강식을 선택하고 운동을 하고 셀카는 더 이상 안 찍고, 몇 년째 프로필 사진은 바꾸지 않는 나이이다. 발버둥을 쳐서 노화의 끝모를 늪에서 벗어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것도 염연한계가 있는 일임을 인정해야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해도 노화는 피할 수 없는 현실.


그러하여 결국 나의 작은 방에서 그토록 찾아다니고 염원하던 파랑새 같은 행복을 찾았다. 글을 쓰면서 잉여로운 시간을 채우고 나와 이웃을 찬찬히 돌아보고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제 잠시 오후의 카페 나들이로, 비가 오기 전 세상의 신선한 바람 한 자락을 느낄 수 있다면 오늘도 만족이요!

홀로 피어도 예쁜 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