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아이와 수업을 하고 있었다. 크리스마스가 며칠 남지 않은 날이다.
"티쳐, 크리스마스 때 무슨 선물 주실 거예요?"
아이가 천연덕스럽게 물었다.
(아~선물이라니 1도 생각이 없었는데. 헐헐~
크리스마스가 다 무에냐?)
마침 여차저차하여 구입을 하였으나 서랍 한구석에 모셔두고 사용하지 않던 단어 카드를 가지고 왔었다. 이 어린이가 하도 공부를 멀리하고 단어도 읽을 생각이 없어서, 큼지막하고 알록달록한 카드를 보여 주면 어떨까해서. 앞으로 더 쓸 일도 없을 것 같은데 아예 이 어린이에게 기증을 할까?
카드를 꺼내며
"자~이게 선물이야."
"에이~이건 단어카드잖아요." 아이는 늘 짓는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어림없다는 듯 말했다.
"뭘 받고 싶은데?"
"다음 시간에 킨더 조이 초컬릿 여자용 세개랑, 오레오 쿠키 사오세요. 제가 좋아하는 거니까요. " 아이는 아주 구체적으로 받고 싶은 것을 읇었다. 어렴풋이 본 계란 모양의 이상스럽게 생긴 초컬릿에 여성용과 남성용이 있었구나. 휴우~그나저나 소원이 이리도 소박하다니 천만다행이다.
그래도 명색이 크리스마스 선물인데 박스는 하나 준비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 날씨도 싸늘하고 하여 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칩거 중에, 귀찮음을 떨쳐내고 마트로 달렸다. '박스를 샀으니 꾸미기도 하고 안을 채워넣어야 겠네.'
그럼 카드도 하나. 간신히 두 줄 썼으나 애달픈 사랑의 마음을 담아 보았다. 남발하는 I love you!
며칠 전에는 다른 어린이에 가까우나 청소년인 학생에게 진지하게 훈계를 하고 있었다. "이렇게 공부를 하지 않으려면 이제 그만두라. 이건 진심이다. 이렇게 해서야 아무 의미가 없지 않느냐. 새해를 맞이하여 학생들을 다시 리셋하겠다.(내가 리셋을 당하는 중이건만 호기롭게 외쳐본다)" 화로 시작하여 훈계를 지나서 협박내지는 최후 통첩에 가까웠다. 이 학생은 듣는 둥 마는 둥하며 계속 고개를 젓더니, 뜬금없이 커다랗고 탐스러운 홍시를 두 개 가지고 왔다. '먹을 걸로 잔소리와 함께 내 입을 막으려는 건가.'
"드세요. 홍시가 잘 익었다고요."
"그게 뭐?"
이 학생은 늘 혼날 때 잽싸게 말꼬리를 돌려버린다.
그래도 정성이 있으니 싸달라고 하니(홍시는 못참지)
까만 비닐봉투에 넣어서 굳이 리본까지 묶어주었다. 한참 엄숙하게 화를 내다가 갑자기 홍시를 보고 싸달라고 하다니 코믹 반전 드라마네. (단순하기 짝이 없는 인간이다)
아~한동안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정, 마음을 잊고 있었구나. 차디찬 찬 겨울 온도에, 움추러든 마음에, 봄날 한 줄기 훈풍이 스쳐갔다.
오늘도 이 어린이의 해맑고 보송보송한 얼굴에 미소가 피어오르는 걸 보니, 다소 수고스러웠지만 보람차다. 영하의 날씨를 덥혀주었던 성탄절의 따뜻했던 시절들을 잊고 있었다. 만원 짜리 선물 교환을 하면서도 희희낙락하면서 즐겁기만 했던 때가 있었는데, 그 시간들은 어디로 가버린 걸까. 선물보다는 그 시절의 훈훈하고도 꾸밈없었던 만남과 사람들이 그리운 것 같다.
추운 날씨를 이겨낼 마음의 온도를 더 높여야 하는 계절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