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인을 줄여야 겠다. 어제 커피를 총 세 잔 정도 마셨는 데 새벽 세 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어쩌면 저녁 수업이 하나 취소되어서 덜 피곤하여 잠이 안 온 걸지도 모르겠다. 코로나 확진자가 직장에 있으시다는 부모님에게 연락이 왔다.
아침형 인간으로서는 밤에 말갛게 깨어 있는 것은 힘든 일이다. 정신만 멀쩡할 뿐 몸이 가라앉기 때문이다. 게다가 마음도 밤에는 한층 울적해지는 편이다. 가벼운 우울이 친구처럼 방문하여 한동안 머문다. 글을 써 보았으나 결말을 짓지 못하였고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람은 아침형과 저녁형의 특성을 태어날 때부터 타고 난다고 들었다. 그러니 자신의 성향을 파악하여 가장 생산적인 시간에 깨어 있고 다른 시간에는 충분한 휴식을 취하는 것이 좋겠다. 낮잠을 자고 났더라면 기분이 몸과 함께 상승될 수도 있었겠지만 피곤한데 잠은 오지 않고 아픈 기억의 편린이 마음을 간간히 괴롭힐 뿐이었다.
그리하여 대낮에 산책을 나왔다. 호수 주변의 난간에 고추 잠자리가 한마리 가만히 앉아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가까이 다가가도 미동도 없다. 혹시 사진을 찍는 데 날아갈까 숨을 죽이고 다가갔는데 아마도 이 잠자리도 간밤에 잠을 설쳤을 수도 있다. 귀찮은 인간이 다가오던 말던 잠시 쉬고 싶은 휴식 시간이었는지도.
잠자리야~ 안녕.어린 시절에 개천가에서 고추 잠자리를 잡으러 다니던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에도 채집망을 들고 나무의 매미를 잡으러 다니는 아이들을 종종 보았지만 핸드폰이 없던 시절에는 동네에서 친구들과 소꿉놀이나 고무줄놀이 등을 하면서 몰려다니고 뛰어 노는 것 외에는 놀거리가 없었다.
풀잎에 내려앉은 잠자리에게 다가가서 손가락 두개를 젓가락처럼 펴서 날개를 홱 나꿔챈다. 그리고 잠자리의 꼬리에 실을 묶어서 날리면서 놀곤 했다. 불쌍한 잠자리가 자유를 찾아서 힘차게 날아오르면 다시 실을 잡아 채면서 노는 것이 무엇이 그리 재미있었을까. 한참 놀다보면 날개가 떨어지는 잠자리도 있었고 구사일생으로 실이 끊어져서 도망가기도 하고 그대로 한많은 최후를 맞이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 자리를 빌어서 잠자리야 미안하다. 지금보다도 더 철 없던 인간이었던 시절이니 용서해다오.'
날씨가 약간은 흐려서인지 산책을 하기 좋은 날이었다. 햇살의 온도가 여름 한창 때만큼 뜨겁지는 않고 달콤한 바람마저 솔솔 불어와 달아오르는 늦여름의 공기를 식혀준다. 한낮에 산책이 가능하다니 새삼 감사한 일이다.
어제 쓰려던 글도 삶의 순간에 피어오르는 감사에 대한 것이었다. 수강생분이 세 시간을 열중하여 다소 피곤한 수업도, 안 가면 안되냐고 발걸음을 잡는 어린이도, 걱정스럽게 이 주나 연속으로 취소되는 수업도, 복잡한 생각을 접고 모두 그대로 받아들이니 마음에 감사가 차올랐다. 문득 우울이 슬며시 다가올 때도 있으나 삶이 이만하면 충분히 안정적이고 다정하고 괜찮다 싶다.
슬프게도 지인 중 한 분이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오늘은 어제 죽어간 사람들이 그토록 살고 싶어했던 내일이다.'라는 지나치게 비장하긴 하지만 극명한 진실인 문구가 떠오른다.
하늘을 보면 검은 구름과 흰구름이 겹쳐서 함께 어깨를 마주하고 떠 있다. 동남아의 스콜처럼 검은 구름에서 가끔씩 부분적으로 비가 세차게 뿌린다. 이 비는 지겨운 여름을 물러가게 하고 청명한 가을을 불러오는 비이니 고맙기만 하다. 이제 인간이 느끼기에 최상의 날씨가 다가온다.
각자의 인생에도 검은 구름과 흰구름이 있을 것이나 어느 구름을 바라보며 살아가느냐는 선택의 문제이다. 한 조각 검은 구름에서 내리는 비는 가혹하여도 곧 그칠 것이다. 구름 뒤의 밝은 햇살과 흰구름을 보며 웃어보자.
검은 구름과 흰구름이 함께 그토록 여름 내내 애정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대신 수박 주스를 주문해 보았다. 여름도 다 끝나가는 무렵, 고운 빛깔을 뽐내는 반가운 수박 주스 한잔. 올 여름에는 수박을 한번도 사보지 않은 것 같으니 처음이자 마지막 수박이다. 은은한 단맛이 감도는 청량한 수박 주스도 만족스럽다.
이제 내년에나 다시 여름처럼 타오르는 붉고 달달한 과육을 만나게 될까. 주말의 쉼이 다가오는 행복한 오후.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감사의 빛나는 조각들을 발견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