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친구에게서 카톡이 왔다. 마침 수업을 기다리며 잠시 차에서 쉬고 있는 참이었다. 곧 수업을 하러 가야 하니 잠시라도 안부를 주고 받으려고 얼른 답을 하였다. 수 개월만이건만 몇 마디 나누고 끊어야 하는 대화.
나의 친구는 중국으로 유학을 가서 대학을 마치고 남편을 만나 결혼해서, 그 이후로 쭉 중국에서 살고 있다. 내 친구들은 기본적으로 몸 한구석에 역마살의 기운을 장착한 이들인것 같다. 얼마간 한국에서 지내다가 외국으로 훌쩍 가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 좋은 나라를 버리고 왜들 다 떠나느냐? 과거에 혈기왕성하고 꿈이 클 때는 이런 야심찬 계획을 했더랬다. '언젠가는 마음을 잡고 여행 삼아 이들을 한 명씩 만나러 가봐야겠다. 사방팔방으로 다니느라 바쁘겠군." 상상만으로도 남몰래 웃음이 씨익 나고 풍선처럼 부풀어 날아오르는 마음.
요즘 정신없이 엄동설한처럼 몰아치는 일들이 많았다. 대체적으로 부정적인 일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나중에 돌아봐야 알 수도 있지만 싸늘한 공기만큼이나 마음의 온도를 내리고 중간문처럼 걸어 닫게 만드는 일들이었다.
이 친구와의 일화들을 떠올리면 얼어붙은 마음도 어느새 녹아내려 말랑말랑해진다. 이 친구를 만난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우리는 5,6학년을 같은 반에서 보내며, 집 마저도 코 앞에 붙어 있어서, 하루라도 거를새라 등교와 하교를 나란히 함께 하는 사이였다. 학교로 가는 길에는 야트막한 돌산이 하나 있었는데 이 길을 걸으며 재잘재잘 하루의 일들을 모두 꺼내놓았다. 이렇게 연인처럼 날마다 붙어 지냈는데 어쩐일인지 편지도 자주 썼다. 우리만의 부끄러운 비밀을 적어 넣고 꽁냥꽁냥. 까르르까르르.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장면이 있다. 오늘처럼 추운 겨울이었고 조개탄을 넣는 난로가 켜진 육학년 교실에서 한 분단을 건너서 앉아 있었다. X세대들이여, 기억나시는가. 그 당시에 주번은 석탄 창고에서 반별로 분배되는 조개탄을 양철통에 받아서 힘겹게 이고 지고 오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임무였다.
그건 그렇고 수업 시간이었는 데 그 새를 못참고 할 이야기가 많았나보다. 우리는 꽁꽁 싸매듯 각자 두르고 갔던 목도리를 하나로 묶어서 쥐고, 수업 시간 중간중간에 한번씩 당기면서 좋아라 하였다. 내쪽으로 한번 잡아당기고 큭큭, 장난기 넘치는 눈빛 교환, 분단 사이를 활발히 오가시는 선생님의 눈치를 부지런히 보면서도 그 밀당이 얼마나 재미지던지. 아마 엄중한 수업 시간 동안에도 끈 하나로 연결되고 싶은 마음이었을까.
이제 막 불타오르는 달달하고 애틋한 연인이 따로 없었다.
우리쪽 통로로 오시던 선생님도 잠시 분단사이에 걸쳐진 목도리 때문에 길이 막혀서, 잠시 의아하게 쳐다보다가, 곧 포기하고 다른 쪽으로 돌아가셨다. '수업 시간에 무험하게도 딴짓을 하고 있네. 그래도 귀여운 녀석들이네.' 라고 생각하셨을까?
그 때의 우리는 삶이 항상 재미있을 줄로만 알았다. 바라는 대로 이상적으로만 펼쳐지리라 순진무구한 기대를 했다. 이제 열 두세살이던 우리가 앞으로 펼쳐질 질풍노도의 삶에 대해서 무엇을 알수 있었을까? 몰랐으니 다행이다.
친구와 나눈 카톡 대화를 열어서 다시 찬찬히 읽어보았다. 한국으로 오는 항공편이 두배로 비싸지고 중국으로 돌아가면 격리는 자그만치 한달을 해야 한다고 한다. 삼 주는 호텔에서 일주일은 집에서. 호텔비용도 자비 부담하라니 참으로 자비가 없는 나라이다. 게다가 북경에는 확진자가 없다? 돌을 던져야 하나. 이러하여 일년에 한 두번 견우와 직녀처럼 만날까말까 하던 우리의 만남에 기약이 없어졌다. 까치들이 집단으로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오작교가 유료화되었다고나 할까.
다시 만나게 되면 육학년 때 교실에서 쪽지를 던지며 나누던 밀담이 기억나는 지 물어봐야 겠다. "그 때 칠판 한번 보는 척, 쪽지를 건넬 틈을 간간히 보면서, 하늘색 목도리를 서로 당기면서 좋아라 했잖아."
D는 열 두살 무렵처럼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여 줄 것 같다.
삶이 동화같다면 얼마나 좋으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