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화가 나시나요?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by 사각사각

화가 많지 않은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화가 많은 편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끔 다른 사람들이 화를 낼 때 왜 화가 나는지 이해가 안 갈 때가 많다.


지인과 나는 패키지 여행을 하고 있었다. 2월의 제주 날씨는 상당히 추웠다. 낮에는 따뜻하기도 했지만 우리에게 산행을 하라고 해서 산 위에 두 번이나 데려다 놓았을 때는 무척 추웠다. 매서운 날씨에 눈까지 곳곳에 얼어붙어 있는 데 산에 올라가라니 다들 포기하고 내려올 정도였다.

어느 오후 숨가뿐 여행의 쉼표처럼 우리는 비로소 카페에 들렀다. 단체로 사면이 유리창인 넓디 넓은 카페에 들렀고 우리는 봄을 맞은 듯이 기뻤다. 딱 뜨거운 커피 한잔으로 피곤한 오후의 여독을 풀고 몸과 마음을 노곤하게 만들 순간이었으므로. 모두 한마음으로 커피와 아이스크림 등 음료를 신나게 주문했다. 그런데 이 카페에는 두 명의 직원이 있었는데 마치 그날 처음으로 일하러 나와서 커피를 내려보는 사람들 같았다.

대목의 순간에 이들은 우왕좌왕하면서 시간을 하염없이 끌었다. 답답하기 이를 데 없게. 내가 주인이라면 커피를 열 잔 아니 스무 잔이라도 팔아야 할 시점에서 정말 눈물이 앞을 가릴 광경이었다. 다음 스케줄은 이 카페의 한 장소에서 족욕을 하기로 되어 있어서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기 때문에 초조해졌다.


지인은 화를 참지 않고 내기 시작했고 나는 마음이 괴로워졌다. 커피는 나오든 안 나오든 상관이 없다. 내 옆에 있는 분이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는 것이 더 힘들었다. 열정적인 중재자라더니 불편한 분위기를 참지 못하나 보다.


나중에 밤에 이 일화를 우연히 꺼내놓게 되었다. “왜 커피가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닌데 화를 내시냐?” 는 질문에 아무 말 않고 기다리는 내 모습이 “무기력해 보인다” 고 반박하였다. 억울한 마음이 들었지만 나는 늘 내 마음의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 이러니 사람이 한 상황에 대해서 각자의 가치관과 성향에 따라서 얼마나 다른 생각과 판단을 하는지 알 수 있다.


화를 내지 않는 이유를 분석해보자.


첫째, 화를 낸다고 해서 그 상황이 바뀔 것 같지 않았다. 십여 명의 사람들이 커피를 주문하였는데 두 명의 직원은 안절 부절하고 있었다. 도무지 한잔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사람들은 저마다 동동거리고 화를 내며 주문을 취소했다. 그 장면을 묵묵하게 관찰하고 있었는데 대신 커피를 내려줄 수 없다면 개선될 수가 없었다. 과감히 포기하든지 조용히 기다리든지 선택은 둘 중 하나뿐이다. 결국 커피는 다른 먼저 주문한 사람들이 줄줄이 취소를 한 덕분에 가까스로 마지막 타이밍에 받아냈다. 하지만 커피콩이 잠시 빠졌다 나온 듯 너무 밍밍하여 족욕이 끝난 후 버렸다. 허무하게도.


둘째, 커피가 빨리 나오지 않는 것이 화를 낼 만큼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커피는 기호 식품이므로 그 순간 나오지 않는다고 해서 크게 문제 될 일이 없었다. 커피를 무척 사랑하는 일인으로서는 딱 적당한 그 순간에 커피의 황홀한 향을 맡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커피는 날마다 언제나 원하면 하루 한잔은 마실 수 있다. 그러니 주문한 커피가 안 나오는 상황이 대단히 화가 날 만한 일이 아니었다. 실없이 웃으며 그 자리를 미련 없이 뜨면 된다.


셋째, 누구라도 할 수 있는 한 다른 사람의 마음을 건드리고 싶지 않다. 이 장면을 곰곰이 보고 있으면 이 두 직원이 일부러 커피를 늦게 내리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둘은 끊임없이 여기저기 움직이면서 일을 하고 있는데, 기계가 잘못 되었는지, 재료에 문제가 있는지,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묵묵하게 주문 취소까지 받으면서 부단히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사람들에게 화를 낸다고 해서 그들이 더 빨리 움직여 줄 것 같지 않았다. 이미 그들은 혼이 반쯤은 빠져나간 것 같았고 드센 가이드와 손님들의 화를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다.


우리가 다른 이의 마음을 의도적으로 건드리지 않는 건 서로의 정신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 역지사지로 내가 그 입장에서 상대에게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을 경험하고 싶지 않다면 다른 이에게도 그 일을 해서는 안 되지 않는가.

넷째, 무엇보다도 내 마음의 평화는 중요하다. 화를 내는 순간 내 몸은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면서 심지어 화를 낼 때마다 생명이 오분씩 단축된다는 글도 읽었다. 언제 죽을지는 모르겠으나 굳이 스스로 단축할 필요는 없으니 내 몸과 마음을 위해서 화를 적절하게 자제하여 표현해야겠다.


이렇게 글을 쓴다고 해서 화가 전혀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리고 화를 표현해야 할 순간도 분명히 있기 마련이고. 하지만 가능한 화를 내야 할 때도 잔잔하게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차분하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따박따박 격양되지 않은 어투로 이성적으로 화를 내는 것이다. 이런 사람이 더 무섭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이성이고 뭐고 자제력을 잃고 버럭 화를 내게 되는 경우도 많지만.

하지만 늘 기억하자. 화를 내는 것은 내 몸에 가장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사안이 중차대한 일인가 아닌가를 곰곰이 따져보고 화를 내자.


(이 글을 쓰고 나서 화를 낼 일이 발생하였다. 이제 봄 햇살을 가득 받고 산책을 하면서 마음을 다스려야 할 시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