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기 불편

그저 그런 날

by 사각사각

아침부터 배탈 증상이 있었다. 그래도 습관대로 아침을 먹고 산책을 나갔다. 몸이 무거웠으나 산책을 하면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운동을 했다는 자부심도 생기고 나름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는 잔잔한 기쁨.


우리 귀여운 초등학생 어린이는 심통이 잔뜩 나 있었다. ㅇㅇ 수학이 하기 싫어서였다. '얘야, 나도 수학은 젬병이야.' 고백도 못하고 수학문제를 풀기 싫어서 눈물을 글썽거리는 아이를 위해 끝없이 이어지는 두 자리수 덧셈의 암산을 해서 답을 내줬다. 다행이었다. 내가 암산으로도 할 정도의 문제이니. ㅇㅇ국어, ㅇㅇ한자도 해야 하고 아이는 참 바쁘다.

초2의 생활이 왜 이리 힘든지. 공부를 하면서 화를 버럭 내고 눈물까지 흘려야 한다니. 수학을 간단히 해결해 줘서 아이는 한결 마음이 풀렸다. 스스로 풀게 해야 하지만 기분이 심히 안 좋으시니 살살 달래주어야지.


마음이 누그러졌는지 영어를 매일 하고 싶단다. 갈대같은 인간의 마음이여. 언젠가는 "영어는 보통 좋다."고 몇번이나 강조해서 은근히 마음이 상했는데. 이 아이는 가끔씩 나에게 뜬금없는 문자를 보낸다. '선생님, 알러뷰.' 나도 꼬박꼬박 답을 보낸다. 알러뷰, 투" 아주 정이 많은 아이로 때때로 자기 집에서 자고 가면 좋겠다고도 한다. 하아, '얘야, 내가 에너지가 딸려서 그건 좀 힘들지싶다.' (라고 하고 싶으나 그저 빙그레 웃었다)


화가 나서 소리를 몇번 질렀고 터치펜을 부러뜨리려고 했으나 꾹 참고 숙제를 마치는 조막만한 머리도 손도 귀엽기만 하다. "쓰담쓰담. 벌써 다했네. 아이 착하지." (ㅇㅇ수학쌤 고맙죠?요즘 제가 뒤늦게 수학 많이 풉니다)


다음 수업에 갔는데 갑자기 머리가 아프다며 사춘기 아이가 수업을 취소한다. 저녁을 미리 먹을 요량으로 삼십분 전에 도착하여 동네 시장 구경까지 마치고 놀이터에 앉아서 아이스 아메리카노에 파인애플 소스 탕수육을 여유롭게 먹고 있는데 말이다. 벌써 두번째라 짜증이 살짝 일었다.

어머니께서 미안하다고는 하셨지만 변명인지 "아픈 걸 미리 알 수는 없어서요."라고 덧붙인다. 이 와중에 할 소린가.

결국 그 집에 가고 오는 데 한 시간 소요. 기름 값도 날로 올라가는 이 시국에 짜증이 아니날 수 없다. 어쩌랴. 에헤야디야.


심기가 불편해졌지만 다른 사람들의 말을 크게 받아들이지 않으려 한다. 지나치게 예민하게 받아들여서 감정이 상하는 일이 잦은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이다. 결국은 내 안위에 손상이 오고 분위기만 싸해진다. 사람들은 자기 입장에 서서 하고 싶은 말들을 마음껏 하니 무심하게 들어주고 머리 속 지우개로 싹 지우면 된다. 이주 만에 벌써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버린 벚꽃잎처럼 잊어주리. 그럴 수 있지.


건망증이 점점 심해지는지 지난 과거의 일들이 잘 기억이 안난다. 요지경 세상에서 어떻게든 즐겁게 살아보려는 무의식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나이듦의 즐거움이랄까. 심해지는 건망증+ 망각의 축복+감정이 무덤덤함+나날이 늙어가는 내 몸이 제일 중함= 망각을 선택함.


뭐, 다시 돌아보니 그닥 나쁘지 않은 하루다. 새소리가 한가롭게 들려오고 다음 수업이 곧 끝나니까. 집에 일찍 가서 여유자적하며 발 뻗고 누워자련다.

꽃들은 계속 피아나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