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다란 세탁기가 집 옆에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집주인분이 이제 세탁기를 구해서 설치를 해주시려나 보다. 수업을 하는 중에 집주인 아주머니에게 전화가 와서 비밀번호를 열고 들어가시라고 했다. 냉장고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으니 그때까지는 마음껏 들어오시라. TT
사생활을 무척이나 중시하는 자이다. 집에 손님을 자주 초대하지고 않고 누군가 찾아오는 걸 그다지 즐기지 않는다. 게다가 혼자 사는 데 타인이 들락거리는 건 요즘 세상에 좀 위험하지 않나.
아침을 먹고 모자란 잠을 보충하기 위해 비몽사몽 하며 누워 있었다. 심의 기준이 있을지도 모르니 옷을 거의 걸치지 않았다고 써야겠다. 왜냐? 간밤에 쌀쌀하기에 난방을 25도까지 올려놓으니 바닥이 찜질방처럼 뜨근 뜨끈했다. 아침을 먹고 들어오니 너무 더워서 옷을 다 걸쳐 입을 수가 없었노라. 더위도 추위도 많이 타는 까탈스러운 인간이어서.
갑자기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서 소스라치게 놀랐다. 문을 열려고 하는 것 같아서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평소 음량의 세 배는 되게 소리를 질렀다. 문을 여는 순간 처음 보는 사람과 헐벗은 채로 만나게 될 테니.
찾아오신 분은 집주인 아저씨인 듯했다. 어제 저녁에 들여다 놓은 세탁기에 호스를 연결하러 오셨단다. 하, 그럼요. 어서 하셔야지요. (그냥 돈 주고 전문가를 부르시는 게 어떠신지요)
자꾸만 내게 선생님이라 부르며 출근을 해서 집에 없는 줄 알았단다. '저는 더 이상 출근을 하지 않으며 학교가 아니고 과외 선생님입니다. 오후까지 빈둥거리다가 점심때가 지나야 겨우 기어 나갑니다요.' 전에 사시던 분이 학교 선생님이라고 비슷한 급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글쎄, 가르치는 현장에서야 선생님으로 불리는 게 당연하나 평상시에 일반인이 극존칭을 하면서 선생님이라고 부르면 마음 한 구석에 부담이 된다. 이미지가 항상 고상하고 타의 모범이 돼야만 할 것 같지 않나.
자려다 말고 일어나 어색한 분위기에서 책상에 앉아 글을 썼다. 잠시 뚝딱뚝딱하시던 아저씨는 부속이 하나 없다며 외출했을 때 다시 오시겠단다. '암요 암요. 그러셔야지요.' 바람직한 첫인상을 주기 위해 얌전하게 감사하다 고생이 많으시다며 고개를 숙였다. 대체 제가 이사 오기 전에 왜 이 모든 상황을 종료하지 않으셨는지 묻고 싶었으나 이왕지사 이리된 거 꾹 참았다.
그 여파로 인해 수업을 하면서도 살짝 졸았다. 차에 누워서 잠깐 자고 일어났다. 오늘부터는 집안에서도 옷을 잘 챙겨 입어야겠다. 조만간 비밀번호 바꿀 준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