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604
1. 오랜만에 고등학교 때 일년 반이나 함께 룸메를 했던 절친과 만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나의 퇴사 스토리를, 친구는 친구 회사에서의 힘겨움과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리고 그 외에도 시시콜콜, 무슨 말을 그렇게 나눴는지도 모르겠는데 웃다보니 세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나는 나대로 항상 변화무쌍하게 지내고, 친구는 친구대로 안정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다가 삶의 골목골목에서 다시 마주칠 것이라 생각하니 불안한 미래에도 마음 한 켠이 따뜻했다.
2. 새벽부터 창가에서 비춰들어오는 햇빛도, 늦게 일어나는 것에 행복해하며 보송한 이불 속에서 알람을 설정하지 않고 잠 들어 있는 주말도, 가보지 않은 길이기에 나와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두려움보다는 기대와 즐거움으로 바라보는 잡 디스크립션이라는 글자들도, 면접을 통해 만나는 새로운 세상들도 요즘은 참 좋다.
예전에는 급한 마음에 떠밀리듯이, 그리고 내가 이미 해온 것들에 맞춰서 내 다음 방향을 정하느라 여유 없이, 좁은 시야로 접근했던 것이 있다면, 요즘은 5년 후의 내 모습, 10년 후의 내 모습을 그려 보며 방향을 정하고자 하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그리고 그 불확실한 미래 보다도,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지금의 나 자신이라는 것. 지금의 내가 진정으로 뭘 원하고, 경험해보고 싶고, 뭘 좋아하는지 마음의 소리를 들어줄 용기를 낼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전에는 그걸 말로 표현할 줄도, 느낄 줄도 몰랐는데 이제는 느낄 줄도, 표현할 줄도 알게 된 것이 참 감사한 요즘이다.
3. 마음의 여유가 생기니 주변도 돌아보고, 사람들도 만나고, 가족들과 지내고 하는 데에도 좀더 여유가 생겼다. 내가 무엇보다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건, 가족들과 가까운 친구들, 나에게 소중한 관계들을 들여다 보고 보듬을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면서도 나를 돌볼 수 있는 여유도, 사랑해줄 수 있는 시간도 생겼다는 것.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되든-일단 지금은 원하던 곳에서 오퍼를 받게 되어 그 곳에 가는 것을 중심으로 생각해보려 하지만-꼭 이 일이 아니더라도 내가 지금 겪고 있는 모든 것은 삶이라는 거대한 지도 위에서 나만의 발자국을 찍어가고 있다는 것을 늘 기억해야 겠다. 지금 겪고 있는 게 성공이든 실패든, 다 내가 의식적으로 노력하는 한, 나를 한뼘씩 더 성장하게 해줄 고마운 경험들일 것이다. 앞으로 배워나갈 것들이, 겪게 될 시간들이 좋든 싫든 기대가 된다.
4. 누구보다 더 나은 길, 못난 길이라는 건 없다. 정말 어제보다 나은 내 삶을 살면 되는 거고, 어제보다 나아진 내 모습으로 실천하고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고 나만의 원칙과 심지를 굳게 지키면서 나아갈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존중받을 만한 삶 아닌가 싶다. 또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에 감사하는 일, 가지지 못한 것들은 남과 비교하며 아쉬워하기 보다는 가지기 위해 노력하는 일 등이 더 의미있는 것이라는 것을 차근차근 느끼고 있다.
5. 그래, 요즘 나는 현재에 푹 머물고 있다. 때로 과거를 돌아보며 어떨 때 내가 가장 행복했고 즐거웠는지 기억하기도 하고, 때로 미래를 상상하며 어떻게 늙어갈까 고민하기도 하지만. 나는 내가 오늘에 살고 있고, 이 오늘을 맞기까지 열심히 살아왔다는 사실 자체가 참 좋고 감사하다.
박막례 할머니의 말씀처럼, 북치고 장구치고 내 장단을 만들어 가면서, 오늘도 나는 나아가야지.
결국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엄청나게 커다란 무언가가 아니다.
많이 웃고, 많이 사랑하고, 오늘 좀더 선하게,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 한발짝들이 모여서 결국 또 새로운 나 자신을 이룰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