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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미셸 Michelle Aug 03. 2019

나찾글6. 그 여름의 밤

190711 [6주 차-의미 있었던 경험]

* 새로 들어온 회사에 적응하며, 종종 야근도 불사르느라 일주일에 한 번 겨우 글을 쓰며 업로드는 못했었는데, 이제 다시 중심을 잡고 글을 올리려 한다! 그리고 그 첫 번째 글은 그간 '일과 삶'님 덕분에 네이버 카페에 연재했던 8주간의 글들 중 6주 차.






    우리는 10명이었고, 10명 중 5명은 기차에서 난생처음 만난 사이였다. 중국 여행이라고는 가족들과 패키지여행으로 관광지 두어 군데 가본 것이 전부였기에, 나를 뺀 9명 전부 다 외국인 친구들인 그룹에 끼어서, 그것도 '티베트' 여행을 가게 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게다가 여행에 초대를 받게 될 때까지 티베트에 대해 거의 아는 바가 없었다. 그런데 내가 모르는 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일본인 친구가 처음으로 '미셸, 우리 티베트에 가지 않을래?'라고 말할 때까지만 해도 내가 정말 에베레스트에 가까운 베이스캠프 중 하나에까지 가게 될 줄 몰랐다. 몸을 옴짝달싹 할 수 없는 평침대 위, 침낭 안에서 호기심과 기대, 그리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불편함에 잠을 설치게 될 줄 몰랐다. 또 잠을 설쳤음에도 다음 날이 그렇게 개운할 줄, 세상에서 가장 맛없는 수제비를 먹으며 그렇게 행복해할 줄 몰랐다. 밤 기차 안에서 그렇게나 많은 별들이 수 놓인 하늘을 만나게 될 줄도 몰랐고, 친구들과 중국에서 가장 높은 호수 근처를 자전거를 타고 거닐게 될 줄은 더더욱 몰랐다.



    그리고 그 수많은 '몰랐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꼽자면, 달라이 라마가 들렸다는 황금빛 사원에 들어서게 된 순간도, 에베레스트 베이스캠프에서 산 봉우리의 구름이 걷히기 만을 기다리던 순간도,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들 속에서 한없이 겸허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던 순간도 아니었다. 대신, 그러기 위해 51시간을 열차를 타고 달려가는 일이, 지루함보다 설렘과 기대로 그렇게나 가득할 줄 몰랐던 것이 가장 값졌다. 서로 다른 문화를 바탕으로 자라온 친구들과 함께 웃으며 게임을 하고, 영화를 보고, 사진을 찍으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행복과 즐거움이 퍼지는 속도는 국경도, 언어도, 피부색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등이 된 후 잠잠한 어둠을 뚫는 한 줄기 손전등 빛 속에서, 차근차근 각자 나라의 이야기가 이어지는 밤의 분위기가 좋았다. 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의 영원들이 켜켜이 쌓이는 속삭임이 좋았다. 그 순간에는 전쟁도, 기아도, 전염병도, 살인도 모두 눈을 감았다. 뉴스로 눈만 돌리면 '이 지구는 재앙의 한 복판이고, 너는 그 재앙 속에 죽지 못해 살이 있는 가장 처참한 세대야'라는 메시지가 24시간 세계 각지에서 뉴스라는 이름으로 방송될 때, 우리는 절대 그 누구도 헤치지 못할 우리만의 투명 보호막 안에서 최고의 안정과 평화를 누리는 것 같았다. 또 어둠 속의 웃음소리는 평온했다. 적당히 높았고, 경박하지 않았으며, 잠들어 있는 다른 승객들을 배려한 예의도 배어있어, 무엇보다 따뜻했다. 그리고 나는 따뜻한 유리 보호막 안에 싸여 있던 것과 같은 이 날 밤을 잊지 못한다.


    한참 게임을 하다가 점점 힘들어질 때가 되자, 우리 옆에서 줄곧 우리가 게임을 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수줍게 웃던 여인 분과 눈이 마주쳤다. 우리는 그 예쁘장한 중국 분께 함께 게임을 하자고 했고, 그렇게 칸 안에는 한 명 분의 웃음소리가 더해졌다. 그분이 수놓던 천 위의 바느질은 게임을 하는 동안 제자리걸음이었지만, 먹고사는 일도 즐겁게 인생 살자고 하는 짓인데, 생계가 우리들의 기쁨에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었다. 단아한 바느질 솜씨와 긴 생머리, 작은 눈이지만, 눈웃음이 귀여웠던 그분은, 알고 보니 우리보다 3살이나 어린 18살이었고, 상해에서 10시간이나 떨어진 도시 출신이었다. 상해에서 오빠와 가게를 하러 나와 있어서, 고향에 자주 못 들리는데, 자수 거리를 들고 고향에 내려가는 길이라고 했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성숙해 보이는 자태와, 어린 나이부터 생면부지 도시에서 돈을 벌며 단단해졌을 속 때문인지, 전혀 18살 같지 않았다. 또 우리는 왁자 왁자 웃는데, 웃을 때 조차도 큰 감정 기복을 보이지 않고, 잔잔히 웃는 정도가 다인 것 같은 모습은, 아마 제 나이로 보기 힘들 게 한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게 열차 안의 밤은 깊었고, 높아졌다 낮아지는 웃음소리도 점점 옅어졌다.


    그 여자 아이는 역에서 아쉬운 미소를 띠며 열차에서 내려서도, 어둠에 묻혀 어리어리한 창 밖에서 다시 한번 창을 두드려 인사해 주었다. 나중에 발견했지만, 바느질하던 자수는 간이 식탁에 남겨져 있었다. 두고 내린 것이다. 다행히 우리 중 대만 친구 한 명이 위챗 번호를 받아 놓아서 그 친구가 여자아이와 연락 해 본 후, 대만으로 돌아가서 자수를 택배로 보내주기로 했다. 아차 했을 여자 아이에게 다시 연락할 길이 있다는 걸 깨닫고 나자 마음이 놓이다 못해 다시 따뜻해졌다.


    그렇게 게임을 하다 하다 우린 곧 피곤해졌고, 원래 누워있던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나는 세 칸으로 이루어진 침대 중 중간 칸 침대로 올라갔고, 한 친구가 상해에서 들고 온 형광 주황 3m 귀마개를 나누어주었다. 옆 칸에서 어떤 아저씨가 코를 먹으며 컹컹 고는 소리는 귀마개 때문에 더 먼발치의 소리처럼 아득했다. 딱딱하고 좁디좁은 침대 칸이 그렇게 아늑할 줄 몰랐다. 침대에 드러누워 켠 핸드폰 화면에는 3g표시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했다. 창 밖에는 칠흑 같은 어둠과 별들 뿐이었다. 물론 우리는 그 어둠과 별들 끝에 무엇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줄 몰랐다. 장엄한 에베레스트가,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는 티베트 사람들이, 끝도 없이 펼쳐질 황톳빛 대지와 투명한 호수 옆을 거니는 고산 지대의 물소들이 우리의 여정에 함께 하게 될 줄 몰랐다. 다만 한 가지, 그 어떤 어려움이건 앞으로 9박 10일 간 펼쳐질 일들은 엄청난 추억으로 남을 것만큼은 분명했다. 그렇게 우리 열차는 더 짙은 어둠으로, 더 황량한 들판으로 내달리고 내달렸다.


        우리는 삶의 몇몇 순간들을 마음속 깊은 금고에 보관해 둔다. 그리고 일상 속에서 외로움이 갑작스레 물 밀듯이 찾아올 때, 때로 누구에게도 이해받고 있다고 느껴지지 않을 때, 금고를 빼꼼히 열어 보며 찬란했던 순간들을 되돌아본다. 앞으로도 펼쳐질 기나긴 인생에서 가만가만 계산해 보았을 때, 티베트 여행은 9박 10일에 불과한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하지만 설렘으로 가득했던 그 밤을 비롯해, 9박 10일 간 친구들과 나누었던 따스함은 아직까지도 내 마음속 깊은 금고 속 아주 커다란 부피를 차지하고 있다. 물론 맨 처음 그 순간들에서 멀어져 나온 첫가을엔, 다시는 그 순간들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슬펐다. 하지만 2년, 3년이 지나 무려 5년이 지난 지금, 이제는 웃을 수 있다. 그 여행 때 친해진 친구들은 5년에 걸쳐 차례대로 우리나라에 찾아오기도 했고, 나도 그 아이들을 찾아가기도 했다. 그렇게 그 여름밤에는 세계의 지붕을 향해 가며 지구본 위에서 멀기만 했던 세계가 그토록 가까워질 수 있음을 피부로 겪었다. 하루가 24시간인 건 매일매일이 똑같지만, 어떤 하루들은 다른 날들과 달리 많이 묵직하다는 것 역시 그 여름에 처음 느꼈다. 그래서 나에게는 5년이 지난 지금도 그 여름이 참 아릿아릿하다. 








이렇게 나의 과거를 돌아보며, 소중했던 순간을 떠올리고,

앞으로 나아가는 원동력을 얻고 싶다면?


문우들과 함께하며 따뜻함과 에너지 뿜 뿜인 '일과삶'님의 글쓰기 수업을 신청해 보셔요 :)


저는 1기 중간부터 예약을 걸어 놨었고, 운이 좋아 2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3기는 8/2까지 마감이었지만,

무한 발전하는 수업이니, 지금부터도 4기 예약을 걸어두어

다가오는 가을겨울을 따뜻하고 기쁘게 보내실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https://brunch.co.kr/@worknlife/230#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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