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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미셸 Michelle Feb 09. 2020

에세이 | 엄마도 엄마가 필요해

200206 엄마는 말을 하실 수 없는 엄마의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가 나를 낳은 날.


평소와 다름 없는 아침의 시작이었다.

오히려 전날 회식에 볼링 치러까지 다녀와서 

몸은 더 무거웠다.


응원을 하도 많이 하기도 했고, 

그 시끄러운 볼링장에서 목청 높여 방방 뛰느라 

목소리가 아주 나갔었을 줄 알았는데 

목소리는 괜찮은데 어찌나 몸을 일으키기가 힘이 들던지..!


근데 세상에 아빠가 출근하시면서 '미역국 끓여놨다~'시며 나가셨다. 

어제 저녁에 다 미역국을 끓여놔 주셨던 것이었다.. 

(요즘 은퇴를 앞두신 아빠는 부쩍 집안일을 잘 돌봐주신다. 

그것만으로도 참 감사한데..) 


암튼 어제 저녁에 잠 못 이루셔서 

뒤척이셨다던 엄마를 위해 한 그릇, 

요새 운동한다고 식이 조절하고 있는 나를 위해서도 

한 그릇을 담아 상에 놓았다. 


밥상에 앉아 밥을 나눠 먹는 게 엄청 오랜만 같았다. 

(주중엔 거의 얼굴 볼 일이 없으니..)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ㅋㅋㅋㅋ

“남자 친구 소식은 없니~?”


ㅋㅋㅋㅋ다 알아서 잘 하고 있다며, 

벌써 나를 떠나보내고 싶으신 겐가 

살짝 아쉬울 뻔 했다가 


“엄마 근데 나 낳았을 때 어땠어?”

라고 물었을 때 엄마는 잠시 생각해 보시는 듯 하더니,

그보다는 더 하고 싶으신 말씀을 줄줄 하셨다.


요즘 영어 공부를 부쩍 더 하고 싶으시다면서

어떻게 더 빨리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 되신다고,

시간이 부족한 것 같다며 조급해 하셨다.


나는 거기에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되지 않겠냐며 

여러 제안도 드리고, 

이것저것 추천의 말씀도 드렸는데

별로 마음에 들지 않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질문에 답도 안 해주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업무 관계자로부터 온 전화를 받으면서 방으로 가셨다. 


갑자기 엄마에게 서운했다.

'그래도 생일인데..'


그러다가 결국 출근 직전에 어쩜 나한테 그럴 수 있냐며ㅋㅋㅋㅋ


'엄마, 나 서운하다고.

물은 거에 답도 안 해주고! 

힝,, 괜히 태어났나봐!' 

농담처럼 이야기 했는데,

에이 그럴리가 있냐며~ 

엄마가 내 엉덩이를 통통 쳐주는 것만으로 나는 또 풀려 버렸다. ㅋㅋ

(아직 이럴 때는 다 큰 아기 같은 면이 있다..)


암튼 그렇게 출근하려고 문을 나서려는데,

외할머니한테서 걸려온 전화 통화를 받으며

화장실로 들어가는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응~ 엄마. 

어제 전화 한다 했는데 기다렸지~? 

미안.. 내가 어제 바빠서..

엄마 오늘 무슨 일 있어~? "


외할머니와 전화 통화할 때마다 늘 밝게, 

하지만 혼잣말을 정말정말 많이 하는 우리 엄마 목소리다.


"아~ 오늘 미셸 생일이야~ 

벌써 얘가 태어난지 26년이나 되었더라?

언제 이렇게 컸나 싶지~? 

남자 친구 빨리 생겨야 할 텐데.."


엄마는 셋째인 남동생을 낳고 

20년 째 외할머니랑 통화할 땐 혼잣말을 하고 계신다.

외할머니가 뇌졸증으로 쓰러지신 후에 

오른 쪽을 모두 못 쓰게 되셨을 뿐만 아니라

언어 능력까지도 잃으셨기 때문이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엄마도 엄마가 있었다.

내가 엄마한테 늘 하고 싶은 말이 많듯,

엄마도 엄마의 엄마한테 얼마나 하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


그리고 내가 엄마한테 늘 듣고 싶은 말이 많았듯,

엄마도 엄마의 엄마에게 얼마나 듣고 싶은 말이 많았을까.


20년 동안 한 번도,

단 한 번도, 

나는 우리 엄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구나..


딸이었어도, 

맨날 칭얼거리면서 왜 안받아주냐고 

투덜댈 줄만 알았지,

엄마도 딸이고 칭얼거리고 싶을 거라는 걸,

그러면서도 외할머니로부터 

'잘 하고 있다, 괜찮다, 이미 충분하다'는 말을 

너무너무 듣고 싶으셨을 거라는 걸 그 동안 몰랐다.


20년 간 엄마는 우리 셋 뿐만 아니라,

엄마의 엄마조차도 늘 엄마처럼 챙겨야 했고,

그랬기에 딸처럼 칭얼거릴 수도 없었고,

힘들고, 어렵다고 한숨 쉴 수도 없었다.


그제서야 내가 늘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었던 엄마가,

엄마도 그냥 외할머니의 딸이었는데..

문득 서글퍼졌다가 미안해졌다가 

많은 생각이 들면서 회사에 갔다.


그리고 바쁜 업무 시간 틈새로

전화를 해서 동네에 좋은 전신 마사지샵을 예약했다.

스파인 줄 알았는데 마사지샵이었지만 아무려면 어때.


9시에 2명은 안 된대서 

(어차피 나는 별로 받을 생각이 없었기에)

1명으로 예약했고, 

엄마는 보내 드려놓고 나는 옆에 앉아 글을 쓸 계획이었지만

결국 우린 못 갔다.


어제 잠을 못 주무신 덕에 엄마는 몸이 안 좋아서

쉬는 게 낫겠다고.. 

다른 날로 다시 해달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런 걸 다 준비하셨냐며 해주시는 엄마의 목소리에 옅게 기분이 좋았다.

하루가 길었다.


..


그렇게 오늘 나는 26년 인생 가장 큰 선물을 받은 것 같다.


나를 낳아주신 엄마를 좀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걸로.


앞으로 이렇게 함께 지낼 날이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하루하루, 일분 일초가 더 아쉽고 애틋하지만.


오늘 나는 다른 누구의 어떤 선물보다도, 그게 가장 큰 선물이었다.


AI가 하루 빨리 발전해서 

외할머니가 하고 싶으신 말, 

엄마한테 들려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때까지 나머지 가족들도 모두 건강하고.


초 쓰레기 나온다고 하셔서 초가 없는 케익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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