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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May 19. 2021

새 학기 준비, 혼자 힘으로는 불가했다

도움을 받기도 돕기도 하는 우리네 살이

둘째 2014년생, 올해 만 6세다. 3월, 초등학생 1학년으로 등교를 시작했다. 작년에 코로나 팬데믹으로 학교는 개학을 미루고 또 미루었다. 올해에는 부모들의 여론을 수렴해서 1학년 입학생들에게는 선택적으로 매일 등교를 할 수 있게 지침이 마련됐다. 매일 등교의 유익보다 코로나가 조심스러운 분들은 매일 등교 대신 가정학습을 자유로이 선택할 수도 있게 했다. 맞벌이 부부인 우리는 매일 등교가 반가웠다.


사실, 둘째보다 초등학교 4학년에 올라갈 첫째 아이 걱정이 더 컸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는 돌봄교실이 사라지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니(학교마다 다른 것으로 안다. 어떤 학교는 3학년부터 돌봄교실이 없다) 큰 긴장이 된 것. 그중 혼자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 원격수업을 혼자 들어야 된다는 것, 홀로 점심을 해결해야 된다는 것 등이었다. 남편과 나는 정 여의치 않으면, 육아휴직을 하려는 마음도 먹고 있었다.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 부모의 긴장감과 걱정을 따라올 더한 이슈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많은 시간 홀로 남겨질 첫째가 더 큰 일이었다. 매일 오전 도서관을 갔다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학원시간까지 혼자 시간을 조금 보내다 학원을 가는 루트를 생각하고 있었다.


학교에 전화를 걸어, 학교 도서관은 코로나 정부 지침 몇 단계까지 오픈을 하는 것인지를 물었다. '2.5단계가 되면 여러모로 긴장이 되겠구나', '재택이나 연가를 쓰면서 그 상황을 넘겨야겠구나' 머릿속이 복잡했다.




학교에서 내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새 학기 시작 전 2월 중에 학교에서 여론 조사 설문지가 날아왔다. 고학년 중에도 돌봄 공백으로 원격수업지원교실 및 돌봄교실이 필요한 인원이 있는지 파악하는 수요 조사였다. 이 알림을 놓치지 않은 게 정말 다행(가끔 학교 알람을 놓칠 때가 있다)이라고 생각하며 얼 회신했다


학교 수요 조사에서 인원이 좀 나와준 덕분에 원격지원교실 및 돌봄교실에 고학년 반도 신설됐다. 학교의 이 서비스 덕분에 이는 돌봄 공백 및 학습 공백으로부터 어느 정도 만회하고 있고 학교 급식실에서 점심도 먹고 있다. 얼마나 감사한 일지 모른다. 


그 후 약 한 달 여가 지났을 때 또 다른 설문 조사가 왔다. 혹시 집이나 학원에서 홀로 학습을 하는 아이에게 점심을 제공할 수 있으니 수요 조사를 한다는 거였다. 학교 안에 들어오지 못하고 여러 가지 사정으로 밖에서 공부를 홀로 감당하는 경우 몇몇 아이들은 식사 해결을 스스로 해야 해서 난감할 텐데, 학교에서 그런 부류의 학생까지 챙긴다고 조사를 하니 감사할 따름이었다.




가슴을 쓸어내리며 부부의 꿈과 현실의 갭 사이에서 허둥지둥 좌충우돌했던 2월과 3월은 그렇게 지나가고, 새 학기가 시간 된 지 3개월 여가 채워져 간다. 돌아보면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없고 결국 상황이나 사람들이 도와줘야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다시 확인했다. 도움 요청에 나도 반갑게 응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어 길거리에서 조사하는 설문지에 응하다 후원으로 이어지기도 하고, 길을 헤매는 할머니가 엉뚱한 도움으로 헷갈려할 때 기꺼이 개입해서 찾는 곳의 위치를 알려드리기도 한다.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쓸지를 몰라 당황하고 있는 할머니에게도 할 수 있는 만큼의 호의를 베푸려고 노력하고 말이다.



새 학기 루틴 중에 첫째가 꽤 먼 거리를 혼자 버스를 타고 이동하게 됐는데 어느 날, 첫째 아이가 아빠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큰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다. 아이가 꽤 피곤했는지 체했는지 버스에서 내려 보행 신호등을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저녁에 먹은 모든 것을 거리에 다 쏟고 말았다. 어찌할 바를 몰라 당황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한 생이 본인이 가진 화장지와 A4 용지를 주며 일단 해결해보시라고 한 뒤, 카페 같은 곳에 가서 화장지를 많이 갖다 줬다고 했다. 지나가던 다른 아주머니도 본인이 가진 것을 나눠주며 쓰라고 해서 남편은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그걸 다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을 남편을 생각하니 더욱 그분들이 고마웠다.


얼마 전에 한 미담이 소개되며 네티즌들이 각자 본인의 어릴 적 도움받은 경험에 대해서 꽤 많은 댓글이 달린 것을 본 적이 있다. 길을 잃어버렸는데 도움을 준 택시기사 아저씨, 돈이 모자라 당황하고 있는데 기꺼이 천 원(적지만 큰 돈)을 준 아주머니 등 한결같이 그 어릴 때 기억을 따뜻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누군가의 결핍을 조금이나마 채워줄 수 있는 삶이라면 기꺼이 그 삶을 받아들이고 싶다. 의무가 아니라고, 곁가지 일이라고 신경 쓰지 않는 학교도 많이 있을 텐데, 아이들의 학교가 학생들의 상황과 결핍에 대해 귀를 열고 있고 불편과 노력을 감수하고서라도 그 일을 기꺼이 하는 모습이 귀감이 다.


'다행이다, 너희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고 엄마 아빠가 안심하고 직장 생활을 할 수 있어서.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으로 살자!'




* 이미지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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