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5시에 눈을 떴다. 아침잠이 많은 나지만 시차를 완벽하게 적응하지 못한 둘째가 배가 고프다며 눈을 말똥말똥 뜨고 있었기 때문이다. 자식의 배고픔 앞에서 잠을 자는 배포 큰 부모는 몇 안되리라. 눈을 번쩍 뜨고 거실에 나가니, 나를 자식으로 둔 친정엄마는 더 일찍 일어나 생선을 굽고 국을 끓이고 각종 반찬을 내고 계셨다. 대를 잇는 아래 사랑으로 아침부터 온 집이 북적인다.
엄마와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는 동생은 조카를 데리고 비슷한 시각(아이들의 시차 적응 수준은 비슷하다.)에 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E 왔니?안녕." 아침 인사를 건넸다.
어제부터 같은 유치원에 등원 중인 둘째 S와 조카 E는 어제 그리도 손을 잡고 싱글벙글 유치원 버스에 올랐다. 오늘도 같았으리라는 짐작은 거두시길 바란다. 오늘 둘은 새벽부터 지지고 볶느라 아침이 씨그러웠다. 거기다 첫째 J까지 가세해, 한 녀석이 책을 보겠다고 하면 모두 그 책에 달려들어 서로 보겠다고들 난리를 폈다.
사실 나는 몇 해 전부터 세 살 터울인 아들 둘이 함께 놀기 시작하며 매일 아침마다 벌어지는 형제의 난에 지쳐가고 있었다. 스트레스.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고를 매번 판가름하자니 그것도 스트레스였고 패자를 늘 생산하는 방식은 누구도 행복하게 하지 못했다. 도대체 눈만 뜨면 싸우는 저들, 내 귀는 수목원의 고요한 아침을 간절히 원하고 있었다.
그날도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있었는데 어김없이 뒤통수에 닿는 싸우는 목소리. 신경전 하느라 날카로운 설전들이 오고 갔다. 아침부터 아주 전쟁터구나 싶었고 그 소음들은 나를 또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차에 생각하나가 번뜩 스쳐 지나갔으니 그것은 바로
싸우는 것이 정상이다
라는 생각이었다. 한 놈이 아프거나 정상적인 발달을 하고 있지 않다면 싸움도 없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미숙아로 태어나 1년 간 조마조마하며 둘째 아이를 돌봤던 일이 생각났다. 둘째 아이는 크기는 아직 또래에 비해 작지만 발달상태는 양호하다. 형이 하는 행동과 말에 자극을 주고받으며 몸으로 하는 아슬아슬한 레슬링 놀이까지(체구가 큰 아이가 약하고 작은 아이를 눌러댈때의 조마조마함이란!) 그모든 것이 둘째에겐 자극이었고 성장과 발달의 동기이기도 했다. 유독 형의 목소리를 반가워하고 반응했던 갓난아기의 시절도 기억났다. "그랬지, 형아 목소리로 태교 했지."
왼편 - 형아의 매너 손은 찍고 나서야 발견했다. 둘째 생후 6개월차 즈음.
그러니 괜찮다 괜찮다
모든 것이 정상이었다. 싸움은 꽤 괜찮은 것이었다. 욕구의 표출이었고 관계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기 위한 도구였다.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니 싸우는 모습이 스트레스가 아니라 그냥 일상이고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왔다.
그러는 너는 안 싸웠니?
오늘 아침 지지고 볶느라 정신이 팔린 내 욕구 우위에 두기 게임 중인 세아이. 그중 조카 E는 형제나 자매가 없는 외둥이다. 그래서 그런지 동생 부부는 이전부터 E가 양보나 함께 노는 것이 서툴다고걱정이 좀 있었다. 아이의 성향은 고유한 것인데 비교대상의 성향들을 일반화하고 당연시해서 아이의 고유한 성향을 문제라고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감에 멘탈이 흔들리는 부모다. 유독 내 자식의 일에는 이성적인 사고가 불가능해지고 남의 자식 일은 한 걸음 멀리서 보는 것이기에 문제 해결이 더 쉽거나 빠른 경우도 있더라.
내가 보기에 조카는 참 예쁘게 크고 있다. 아이는 무한한 잠재력을 가졌다. 문제가 아닌 과정으로 보고 아이가 고유한 성향을 더 특별하고 좋은 쪽으로 발달할 수 있게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일 것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다짐을 하였건만, 일상은 일상이다. 아침은 그렇게 지나갔고 오후는 하원 하자마자 욕구를 입체적으로 대발산하며 어른 셋의 멘탈을 털었다. 저녁 식사를 하러 간 곳에서 셋의 즐거움은 곧 우리의 스트레스이자 불행이었다. 즐거우려면 계속 즐거울 것이지 싸우기는 왜 또 싸우니라고 우매한 질문을 던져본다. 혼자 큰 듯 잘난 우리도 싸우면서 크지 않았던가.
그래도 작은 피곤함의 일상이 너희들의 위대한 존재를 축소시키거나 부인하게 만들 수는 없단다. 오늘 하루 너희들도 수고 많았다. 마음과 몸이 한 뼘씩 자라느라 그렇게들 싸웠는지도 모르겠다. 맘껏 크고 세상을 누리렴. 있는 그대로를 사랑할게. 더욱 믿을게. 끝까지 응원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