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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Aug 20. 2019

수영 못하는 친구 딸이 풀장에 빠졌다

도대체 누가 밀었어?


뜨거운 여름 한 낮, 어김없이 오후 3시쯤엔 아이들이 수영을 하는 시간이다. 멍키 두 마리, 바로 나의 사랑하는 아들 첫째 J와 둘째 S가 말이. 한국에 들어온 지금은 오후 시간 수영하며 놀던 그 시간이 또 그리워진다.


오늘 아침, 같은 컴파운드에 살던 지인과 카톡을 주고받았다. '잘 지내요?'로 시작된 안부 묻기부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지인이 그런다. "언니, 저 11월에 한국 가니까 그때까지는 백수여야 해요." 하하 뭣이라, "백수라고? 이 작가님한테.."라고 힘없는 실언을 뱉어주었다. "쨌든, 나 요즘 글 소재가 떨어졌어."라고 하니, 언니 이거에 대해 쓰면 어때요 라고 이야기한 것 중에 하나가 바로, 그녀의  'Y가 물에 빠진 사건'이었다.


그녀에게 글감을 제공받아 이제 그 짧은 이야기를 한 번 해보고자 한다. 아이의 사건 이후 이어진, 훈육 비매너 엄마에 대한 이야기.




그 날은 왜 그랬는지 나와 아이들은 수영하러 나가지 않았다. 아마 다른 친구와 플레이 데이트를 했거나 마트에 장을 보러 갔거나 중 하나였을 거다. 아니면, 일찍이 수영을 끝내고 들어왔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사건 당시 우리 가족은 자리에 없었다. 그날 저녁, 지인의 남편 늦게 퇴근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녁을 하는 김에 같이 먹자고 연락을 했고 지인딸 Y와 함께 우리 집으로 왔다. 그러면서 그 날 후 풀장에서 일어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잘 놀고 있었다는 Y. 장 깊은 곳 옆, 바깥쪽에서 아이는 놀고 있었다. 그리고 여러 명의 아이들은 수영을 하고 있었다. 중국인 친구 링민도 그녀의 아들 오스틴의 수영을 보느라 장 바깥 벤치에서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등장한 파키스탄 국적의 아이 2명. 그들의 엄마 G는 무슬림이면서도 늘 화려한 운동화와 히잡으로 포인트를 준 나름 무슬림계 패셔니스타. 그렇게 입고 늘 해가 지기 전 컴파드를 산책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날은 본인의 아이들이 수영을 하는 날이기에 컴파운드 산책 대신 장의 가장 긴 직진 거리를 왔다 갔다 고 있었다. 아이들을 주시하지 않고 앞을 보고 걷기만 하면 그 아이의 놀이가 어떤지에 대한 확인은 그곳에 있는 다른 부모의 것이 된다. 아이들 중 큰 딸아이는 바로 로 들어갔는데, 둘째 아들이 으로 오면서 입구 쪽(방금 말한 지인의 딸 Y 양이 놀고 있던 곳)을 지나가 길에, 놀고 있던 무방비 상태의 Y를 물 쪽으로 밀어버렸다. 그리고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유유히 가던 길을 걸어갔다. 경악 그 자체다.


아이는 무방비 상태였다. 튜브나 자켓을 입었으면 다행이었겠지만 그렇다고 민 아이의 행동을 눈감아 줄 수는 없다.

 

Y는 예상치 못한 순간을 만나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고, Y의 엄마는 하얗게 질려 옷을 입은 상태로 입수했다. 아이를 건져 올린 지인은 아이가 괜찮은지 상태를 확인하고 놀라 우는 아이를 달래고 수건으로 물을 닦아 주었다.


Y를 밀어버린 A라는 친구는 평소 고립되어 노는 것을 좋아하고 영어권 나라에 왔는데도 영어가 늘지 않아 엄마나 누나가 늘 파키스탄어로 이야기하는 것을 봐왔다. 나는 그 아이의 조금은 무서운 면을 보았는데, 그 아이의 눈빛이 달라지면서(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욕구의 눈빛) 주변의 어른들을 살펴보다 나와 눈을 마주쳤을 때, 하려고 했던 계획을 접는 듯한 인상을 몇 번이나 받은 터였고 이 사건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도 '그렇게 잘 노는 아이가 왜 그랬을까'의 반응이 아닌, '나, 그 아이, 이런 사고 칠 줄 알았어'의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 이후의 상황이었다


친구 링민은 아주 놀랬다. 처음에는 그 아이의 행동에 대해, '도대체 어떻게 아이가 다른 아이를 물속에 밀어 넣을 수 있느냐'는 생각이 들지만, 더 큰 문제는 그 뒤에 있었다. 문제 행동을 한 A의 엄마는 자기 아들이 Y를 물속으로 밀어 넣는 것을 목격하지 못했다. 옷을 입은 채로 입수를 한 지인이 아이를 건져 올있었고, A의 엄마는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 상황에 화가 난 친구 링민은 A에게 가서 "친구를 어떻게 밀 수 있냐"며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라고 노발대발 좀 난리가 났다. 난리가 난 통에 자기 아들에게 뭐라고 하고 있는 상황을 본 그 파키스탄 화려한 패셔니스타 G는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나 보다 감지했을 터. 그 뒤는 더 가관이었다. 그런 위험 행동을 했으면 당장 놀이를 중단하고 아이를 붙들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못하도록 제대로 훈육을 했어야 했다. 하지만 그 엄마는 대충 아들에게 그러지 마라고 이야기하고 지인에게 와서 Y 괜찮냐고 물어본 뒤, 쏘리라고 했다. 그리고는 A가 수영을 하며 놀 수 있도록 그대로 내버려 둔 것.  대목이 정말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었고 우리 엄마들은 이제 이 일이 내 아이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자, 아이들이 마음 놓고 노는 컴파운드가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라며 다들 좀 예민해졌.


아이에게 이것은 뭔가 잘못되었으니 다시 해서는 안될 행동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놀이 중단, 즉각 훈육이 필요하다.


머리가 하얗게 질려버린 지인은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맞는 건지 아무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쏘리라는 G의 사과에 지인은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 대답을 한참 동안 후회했을 터. A와 그 엄마의 행동이 그날 그 순간 이후 지인을 괴롭 밤잠을 설쳤으리라. 저녁을 먹는 내내 물에 빠진 Y가 특이하거나 이상 행동을 하지는 않는지 살펴보았지만 괜찮은 듯 보였다. (다음 날 들은 이야기. Y는 그날 자다 일어나서 저녁으로 먹은 것을 토하고, "엄마 나 오늘 물에 빠졌지?"라고 물었다고 한다.)




와, 저녁을 먹으며 이 이야기를 듣는데 내 피가 또 거꾸로 는다. 왜냐하면 그전에 나도 그 엄마에게 화가 난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도 함께 수영을 한 날이었다. 미국인 스텔라의 생일파티에 초대된 많은 아이들. G5 정도 되는 아이이기에 초대받은 학교 친구들도 좀 큰 편이었고 우리는 동네 친구 자격으로 초대를 받아 그 날 수영을 하고 놀았다. 파키스탄 아이 2명도 함께 왔는데 그들은 드레스업을 하고 왔고 그들의 엄마가 수영을 금지했기에 수영장 바깥에서만 놀고 있었다. 남자아이 A는 다른 놀거리를 찾고 있었는데 첫 번째 놀이는 쓰레기 풀장에 던지기였다. 그 놀이에 마음이 불편해진 한 여자아이가 A에게 그만하라고 쓰레기를 다시 풀장 밖으로 꺼냈지만 A는 쓰레기 던지기 놀이를 서너 차례 더 했다. 그의 엄마는 거의 그러거나 말거나의 분위기로 아무런 훈육도 하지 않았다. A는 이내 다른 놀이로 갈아탔다. 그는 수영 누들을 가지고 놀고 싶어 했는데 누들 주인 엄마가 가지고 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내 그 엄마가 잠시 자리를 뜨자, 누들을 들고 장 물 표면을 찰싹찰싹 때리기 시작했고 물을 잔뜩 머금고 들어 올려진 누들은 공기 중으로 아오르며 주위에 물을 막무가내로 뿌려댔다. 아이의 행동도 행동이지만 훈육을 하지 않는 그의 엄마 때문에 몇몇이 불편해하는 찰나, 누들이 내 배 한 복판을 강타했다. 업셋 된 내 얼굴을 본 그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반대쪽으로 가더니 아이에게 뭐라고 다. 내가 너무 센 표정을 짓고 있었던 걸까. 뭐라고 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와서 미안하다거나의 인사는 전혀 없었다. 그 뒤로 그 엄마에게 인사를 먼저 하지 않았다. 사를 먼저 해도 소극적로 받았을 뿐. 그건 아이의 잘못이 아닌 부모의 잘못이었다.


Y가 풀장에 빠져 허우적댄 사건 이후, 링민은 파키스탄 화려 G에게 인사를 안 하겠다고 했다. '아,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한 명 늘었구나.'싶었다. 고립되어 살 수는 없기에 국제 사회에서 국제인으로 성장하는데 필요한 매너가 있게 마련이다. 녀에게 조금의 애정이라도 있었다면, '파키스탄의 문화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극히 국내적인 매너로 다양한 국적의 사람이 모여사는 곳에서 이렇게 행동한다면 더 이상 너에게 정답게 눈웃음치며 인사할 사람은 1도 없을 거란다.'라고 말해주고 싶.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에게 가장 중요한 이슈는 안전에 대한 것이다. 나의 아이가 안전에 위협을 받을 때, 아이의 사적 공간을 침해당했을 때, 부모들은 예민해진다. 다른 아이를 아프게 하는 행동은 삼가야 하고, 혹은 그런 일이 발생했을 때는 부모가 나서서 아이를 제대로 훈육해야 한다. 피해 아이와 아이 엄마가 충분히 마음이 풀릴 때까지 미안하다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가르치는 일이 부모의 역할이다. 이 즈음에서 '아이들이 다 그렇지 뭐'라는 식의 발언은 금기다. 아이들이 그럴 수 있지만, 두 번째 다시 반복되는 일은 모두 부모의 책임이다. 로 과격하거나 실수하는 아이들을 보지만 그런 행동에 대해 지적하고 훈육하는 부모가 있는 것을 보면 일단 안심이다.


아이야, 앞에 사람이 있단다. 발로 의자를 차면 앞 사람은 어떨까 한 번 생각해봐.


매너와 비매너 사이, 어디쯤에 계십니까?


부득이 비매너 가족의 국적이 파키스탄이었지만, 우리나라 사람이라고 다 매너 있는 것은 아니다. 해외 생활이 나에게 남긴 것 중 하나는, 이런 매너에 익숙해진 것이다. 가끔 한국에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하는 비매너 행동들을 볼 때, '어떻게 저렇게 행동할 수 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올 때가 있다.


어제 목격하게 된 일이다. 아이 셋을 데리고 있는 어른 세 명의 무리(두 명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한 명은 아이들의 어머니로 보였다)가 한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느라 길을 잠시 막게 되었는데, 20대로 보이는 젊은 여자가 뒤에서 3초 정도 기다리다 아무 말없이 옆에 있는 의자를 제기차기하듯  차 버리고 그 뒤 생긴 공간으로 윽 지나가더라. 어디서 배운 걸까 그런 태도. 아무리 기다린다고 하기로서니, 어르신이 잠든 아가를 안고 서 있는데 그 옆을 지나가려고 의자를 그렇게 차 버리고 가나. 저렇게 불쾌지수와 짜증지수가 순식간에 급등하고 그걸 제대로 해결하는 방법을 모르는 이와 같이 일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내가 면접관이라면 저런 사람을 과연 가려낼 수 있을까, 면접관에게 잘 보이려고 갖가지 사탕발린 말을 뱉을 텐데..'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내가 있는 공간에 그런 비매너의 사람은 절대 두고 싶지가 않다. 


Please stop there. Don't walk into my life.


옆에 있는 이를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은 타인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몰라서일까, 아니면 스스로도 어찌할 수 없는 아픈 사람인 걸까. 본인을 사랑할 줄 안다면 타인도 자연스레 배려할 수 있을 텐데. 품위 있는 매너는 가치를 고민하는 건강한 내면에서 나온다. 비매너의 무리 속에 있다면 그곳을 얼른 빠져나오자. 비매너 집단이야말로 지독한 독재 정치만큼 무서운 것이니까! 오늘 나는 매너와 비매너 어디쯤에 있을까.



사진 출처: gettyimag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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