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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eagarden May 19. 2019

키즈카페에서 생긴 일

#육아전쟁 #어른들의얼굴붉히기

재작년, 여름방학을 맞아 아이들과 한국으로 날아갔다. 약 한 달 여간, 건강검진도 하고 쇼핑도 하고 가족들과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 왔다.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왔는데 잊을 수 없는 한 가지 사건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시댁 근처 백화점 키즈카페에서 일어난 일이다. 다들 설마 설마 하시면서 보시겠지만, 맞아요. 둘째 아이가 다른 친구 팔을 꽉 깨물어버린 거예요. ㅠ


마미는 손들고 있어! 얘, 너도 손들어! (괜히 왔어 여기 오는 게 아니었는데 ㅠ)




일반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버리면, 미안해서 어디 가서 숨고 싶을 정도의 감정상태가 되어버리고 만다. 하지만 그날은 정말 멘탈을 붙들고 있기 힘들 정도였다. 이유인즉슨 (사건의 전말을 있는 그대로 써보자면) 다음과 같다.




첫째와 둘째 아이를 키즈카페에 맡겼다. 둘째가 5세였기 때문에 형도 있고 잘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누군가 건드리지 않으면 혼자서도 잘 노는 아이였기에 더욱 그랬다. 그리고 시부모님과 우리 부부, 그리고 아가씨는 위층 카페 옮겨 커피를 시키고 대화를 나누고 있던 차에, 낯선 번호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키즈카페였다. 내려갔더니, 직원의 다소 흔들리는 듯한 동공을 보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났구나 직감했다.




어떤 아이의 아빠.로 보이는 사람이 잔뜩 흥분해서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말했다.


"아니, 그쪽 아이가 우리 아이를 물었어요. 세상에, 우리 아이뿐만 아니고 여기, 저기, 다니면서 문제가 있는 행동을 하네요. 아이가 폭력적이고 문제가 있어요."라고 쏘아대듯 말했다.


일단, 그 상황이 당황스러웠지만, 아이의 아빠를 충분히 이해했다.


'아, 정말 속상하겠다. 나도 내 아이가 누군가에게 물렸다면 얼마나 속상할까. 이해된다 저분..' 이게 나의 첫 마음이었다.


내가, "네, 그래요. 죄송해요." 하고 피해자가 된 그 아이를 찾아서 팔을 확인했다.




선명한 이 자국.

다행히 멍이 들거나 피부가 까지거나 한 것은 아니라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이에게 말했다.

"얘야, 많이 아팠겠다. 괜찮니? 미안해."


그리고 나니 아이가 말했다. "네, 괜찮아요."


"그래? 다행이다.. 그런데 왜 친구가 물게 된 거야? 너무 속상했겠다."


그랬더니, "제가 먼저 발로 찼어요."라고 하는 게 아닌가. 그때 그 아빠의 표정을 좀 더 정확하게 오랫동안 응시하지 못한 게 아쉽지만, 그 아빠 역시 당황했던 것 같다.  뒤로는 자기 아이가 물린 건 괜찮다고 말이 바뀌었거든.




그 아빠는 그래도 자기 뜻을 굽히지 않았으니, 본인의 중심 생각으로 말하자면 이거였다. "너네 아이가 상당히 폭력적이다." 슬슬 기분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네, 일단 알겠습니다."라고 차분히 대응을 하면서 입 이 바짝 말라왔다. 그때, 직원들의 어이없어하는 표정도 잊을 수가 없다. 그들의 안타까워하는 얼굴이 당시에 은근히 힘이 됐다. 이 아저씨 좀 많이 나가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도 폭력적 폭력적해서, 굳이 따지자면 당신네 아이가 먼저 폭력을 썼네요 라고 쏘아붙이고 싶었지만 내 아이도 잘한 게 없어서 참았다.




그때, 그 아이의 고백으로 약간의 안도감은 들었지만, 문 행동은 나쁜 행동이었으므로 아이를 훈육하기 위해 한쪽으로 아이를 데리고 왔다. 그리고 둘째의 행동에 대해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S야, 발로 차여서 속상했겠다 그지? 그런데 그렇다고 친구를 물어버리는 건 안 돼. 절대 안돼. "라고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그 아저씨 그곳까지 쫓아우리의 대화를 방해하는 것 아닌가.

 

정말 정신 줄 놓을 뻔 했다.



"저기요, 아주머니. 당신네 아이가 문제가 있다니까요. 내가 우리 아이가 물렸다고 그러는 게 절대 아니에요. 저 쪽에 있는 아이들한테도 문제 있는 행동을 했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아, 정말 이 아저씨 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본인 아이가 다친 것 때문에 제일 속상한 문제일텐데 정작 그것은 괜찮다고 하며, 오히려 다른 피해자(?)들을 걱정하고 있는 정의로운 사람인 척한 것. 본인이 왜 지금 화가 났는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에둘러 정의심을 내세운 말이었다. 인을 잘못 파악하고 헤매게 되면, 자기 감정조차 알아차리지 못하고, 주변의 것이나 타인의 의견이 다 그렇다라는 것으로 두루뭉실 자기 의견에 힘을 실으려고 한다. 찝찝한 접근이다.




그래서 내가 이야기했다. "네, 아저씨가 무슨 말씀하시는지 잘 알겠어요. 그 부분은 제가 직접 저 쪽에 있는 엄마들에게 가서 한번 알아보고 이야기해 볼게요." 당시 그 아저씨의 어이없어하는 표정. 내가 멘탈이 무너져내리기를 바랐을까, 자기한테 죽을 죄를 졌다며 읍소하길 바랬을까, 진짜 우리 아이가 폭력적이네요 라고 인정하길 바랬을까, 아니면 같이 싸워보자고 덤비기를 바란 걸까(아시는 분?!). 머리가 핑 돌았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 앞에서 침착하기란 참 힘들구나 하면서.. 정말 쏘아대고 싶었지만 아이들도 시댁 어른들도 가까운 곳에 계셨기에 최대한 문제를 키우지 않고 해결하려 애썼다.




막상, 아저씨가 가리킨 곳으로 가서 이야기를 해보니, 그곳에 있는 엄마들이 문제 아니라는 듯 괜찮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직원들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니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니요, S가 친구들을 건드린 게 아니고요 정말 잘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일이 생겼어요. (직원의 미안해하는 표정 어쩔..)" 때로는 아이 문제로 어른들이 얼굴을 붉히곤 한다. 상대방 아이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그 부모의 입장에서 한 번 더 생각한다면 얼굴을 쉬이 붉히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다. 아저씨에게 찾아가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싶지 않았던 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람과 두 번 다시 말을 섞고 싶지 않았고 설득시켜서 이해시키고 싶지도 않아서였다. 씁쓸하게도, 아저씨여, 그냥 우리 마주치지 맙시다.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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